성과
오늘로 브런치 입문 첫돌이 되었다. 수십 년 몸담았던 학교에서 퇴직한 후, 무엇이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우연히 접속한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 몇 편의 글을 읽으며 놀라웠다. 글쓰기에 열정과 능력 있는 작가가 이다지도 많다는 것에. 이곳에서 함께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아주 단순한 마음 하나, 이제 본격적으로 써야겠다는 것뿐.
처음에는 쓰고 싶을 때 한 편씩 쓰겠다고 생각했는데, 차츰 욕심이 생겼다. 매일 써보자는 쪽으로. 살펴보니 몇 년째 매일 쓰는 작가들도 여럿 있었다. 대단했다. 어떻게 몇 년째 매일 쓸 수 있단 말인가. 그 저력이 놀라웠다. 저력의 바탕에 있는 창작에 대한 열정이 감동적이었다.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연구자로 교육자로 사느라 창작할 시간이 없다고 엄살을 부렸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건 말 그대로 순전히 엄살이었고 게으름이었다. 그래서 나도 매일 써보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365일 동안 356편을 썼다. 9편이 적다. 시작할 때 하루씩 걸러서 썼고, 매일 쓰기로 작정하고는 거의 실행했는데, 부득이한 경우 한 번씩 빠졌다. 그걸 벌충할 생각도 했지만 하루에 한 편으로 작정했기 때문에, 그 계획에 충실하고자 억지 부리지 않았다. 빠지면 그대로 두기로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A+ 점수다. 글을 발행한 빈도수로만 본다면. 글의 완성도 면에서는 썩 그렇지 않을 테지만. 매일 아침에 써서 발행한 게 보통이므로, 아무래도 익지 않았다.
글을 쓰는 게 즐거웠다. 내 속에 앙금처럼 남아 있던 것들을 솔직하게 토해 놓는 것이 때론 낯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수필이 가진 특성에 충실하고 싶어서 감수하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졌다. 괜찮았다. 정히 적나라하게 밝히기 힘든 것들은 소설로 썼고 시로 썼다. 시나 소설은 그런 면에서 수필보다 자유롭다. 무엇보다 나를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는 게 의미 있다.
물론 힘들 때도 있었다. 그건 글을 쓰는 행위가 힘든 게 아니라, 여건이 그랬다. 잠깐 여행을 갈 때라든지, 의도치 않게 컴퓨터가 없는 환경에 있을 때였다. 여행 갈 때는 새벽에 써서 발행한 후 출발했고, 다녀와서 쓰기도 했다. 컴퓨터가 없는 환경에 처했을 때는 휴대전화를 이용하여 글을 쓰고 발행했다. 글자가 작아 실눈을 뜨고 입력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진즉 이렇게 성실히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싶어서.
익지 않아 날 것인 글을 발행했을 때, 처음엔 내릴까 고민하기도 했다. 실제로 썼다가 내린 글도 몇 편 있다. 그러나 그렇게 쓴 글도 읽는 독자가 있었고, 공감해 주고, 댓글로 적극 다가와주는 작가들도 있었다. 책을 여러 권 발간했으나 직접 이렇게 독자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얼마나 되었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불특정다수가 읽는 책에서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간혹 작가와의 만남에서 독자들과 소통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독자이면서 작가인 이곳의 작가들은 다양한 글을 생산해 냈다.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는 재미 또한 놓칠 수 없는 곳이 브런치다.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글을 주로 읽고 써왔던 나로서는 다른 분야의 글을 읽는 기회를 갖는다는 게 새로웠다. 1년 동안 많은 글을 읽었고, 다양한 정보와 지식의 맛도 보았다. 그것이 마중물이 되어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을 찾아 읽기도 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플랫폼이 가지고 있는 순기능이었다.
1년 이렇게 쓰는 동안, 퇴직으로 인해 우울할 수 있는 시간을 즐겁게 보냈다. 바빴다. 글감을 찾느라 모든 걸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눈을 뜨면 컴퓨터를 열고 글을 쓰는 습관이 생겼다. 매일 한 편씩 쓰지 않으면 과제를 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쓰고 또 썼다.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그만큼 습관이 되었다는 것이리라. 무슨 이야기라도 쓰고 나면, 글의 완성도와 상관없이 마음이 후련했다. 갈수록 얼굴이 두꺼워진 것 같기도 하다. 완성도에 저촉받지 않고 글을 발행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계획하지 않으리라.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으되, 자유로울 것 같긴 하다. 2023년 9월 4일, 첫 글을 발행한 지 꼭 1년. 내 속에 이리도 많은 이야기가 있는 줄 몰랐다. 그렇게 쏟아놓고도 이제 시작인 것 같으니 말이다. 계획이나 다짐을 하지 않더라도 나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이다. 나를 성찰하는 게 글쓰기니까. 나를 성장시키는 데에 글쓰기만 한 것도 드물 테니까 말이다.
브런치 입문 첫돌을 맞이하여 내 글을 읽어준 모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일 년 365일 중에 356편의 글을 쓴 나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잊었던 ‘자뻑’이 되살아난다. 오랜만에 취해본다. 이렇게 이 글감으로 오늘 또 한 편의 글을 썼다. 오늘 과제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