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지
여름휴가를 부산으로 다녀온 지인이 말했다. 말도 마! 찌는 듯이 더워서 돌아다니지도 못했어,라고. 그녀가 부산으로 가족들과 휴가를 간다고 했을 때, 나도 불쑥 그곳에 가고 싶었다. 해운대 앞 호텔에서 묵는다는 말에는, 해운대 앞 풍경이 촤르르르 펼쳐지듯 그려졌다. 그만큼 여러 번 갔던 곳이 부산이고 해운대였다. 엊그제 다녀온 지인은 여름에 어디든 가면 고생이라고 했다. 집이 제일 편하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요즘 집에만 있었다. 덥지 않았다. 덥다고 아우성치고 뉴스에서 그렇게 떠들어대도 체감하지 못했다. 가만히 책 읽고, 글 쓰고, 경전 성독 하고,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가끔 강원도 어디라도 가볼까 싶긴 했다. 하다못해 시골집에라도. 그러다 막히는 도로 사정과 태풍 올라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 마음이 슬며시 가라앉곤 했다. 그러면 사놓고 손대지 않은 책을 읽고, 대학이나 논어를 꺼내 읊조렸다. 그러다 저녁나절엔 산에 올랐다.
여름휴가지로야 강원도만 한 곳이 있을까. 언제 어느 때 가도 좋은 곳이지만. 그중에 내가 좋아하는 곳은 강릉이다. 강릉은 이제 거의 고향 같다. 하도 가봐서. 일 년에 서너 번은 족히 가는 곳이니. 숙박하는 곳은 ‘선교장’이나 몇몇 호텔이다. 선교장은 고향집 같은 느낌이 들고, 호텔은 편리하다. 그곳에 가면 볼거리도 풍부하다. 산책할 곳과 산행할 곳 모두 꿰고 있다. 음식점도 마찬가지. 더구나 친구 ‘순’이 있어 더욱 친근한 곳이다.
난설헌 생가, 낙산, 경포, 안목 카페거리는 기본이고, 강문해변과 명주거리, 안반데기까지. 웬만한 곳은 여러 번 가봐서 훤하다. 그래도 여전히 가고 싶은 곳 강릉. 솔향기와 바다가 어우러진 해송숲길은 또 얼마나 아름답던가. 걷다 보면 세상의 번뇌를 모두 날려버릴 것 같은 곳. 숱한 카페들 앞에 펼쳐진 바다. 돌아오는 길엔 연곡에 있는 현덕사에 들러 스님과 차담 나누는 시간 갖는 것도 좋으리라.
아니면, 한계령을 넘을 수도 있겠다. 양양까지 바닷길을 따라가다가 솔비치 해변에서 즐기고, 근처 유명한 맛 집에서 막국수를 먹고. 한계령을 넘어 인제를 지나며 박인환문학관에 들러도 좋으리라. 거기서 ‘세월이 가면’을 읽고 들으며, 인생의 즐거움뿐 아니라, 쓸쓸함도 느껴본다면 어떨까. 그러다 자작나무 숲까지 가보는 것은 또 어떤가. 걸으며 마음은 정화되고, 삶의 새로운 의지가 생길 수도 있으리라.
강릉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두 시간만 운전하면 되니까. 그래서 더 자주 갔던 곳이 아닌가 싶다. 근처에 양양과 속초 동해까지 있어, 선택이 더 자유로울 수 있다. 오래전에 그렇게 강릉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영덕 포항으로 해서 부산까지 갔던 적이 있다. 남편과. 강릉에 가면 자꾸 해안도로를 타고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싶은 충동이 일곤 한다. 그때도 휴가철이 막 기운 팔월 중순경이었다. 바다를 발갛게 물들이던 낙조, 공연히 흐르던 눈물, 그 행복했던 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서일까.
그렇게 부산까지 가고 싶다. 그러고 보면 가고 싶은 휴가지가 두 곳이다. 강릉과 부산. 강릉으로 해서 부산까지. 그래, 결심. 올해는 그렇게 해보고 싶다. 가는 도중 영덕이나 포항에서 하루 묵고. 삼척도 괜찮다. 그렇게 한다면 동해안 일주가 될 것 같은데, 가능할까. 그건 나중 생각하기로 하고.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아니니까.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음이 부푼다.
부산에 가서 해운대 앞에서 묵어야겠다. 무엇보다 달맞이고개 앞 추리문학관에 들러보리라. 차를 마시며 몇 단락이라도 추리 소설을 읽고, 달맞이고개에서 낙조를 감상하고 싶다. 용궁사와 잔잔한 송정바닷가, 야경이 멋진 광안리, 무엇보다 광복동과 자갈치 시장. 아마 부산에서만 사흘 밤 정도 묵어야 웬만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을숙도와 몰운대, 다대포, 요산문학관, 범어사까지. 셀 수 없다. 가볼 곳이 넘친다. 벌써 생각만으로 다 다녀온 느낌이 든다.
이만큼 써놓고 몸이 나른해 잠시 눕는다는 것이, 두 시간이나 잤다. 삼십 분, 한 시간이 아니라, 두 시간이라니. 그것도 낮잠을. 강릉으로 부산까지 5박 6일쯤 되는 일정을 계획하다 보니, 마치 다녀온 듯 고단했나 보다. 재밌지 않은가. 상상만으로도 여름휴가를 다녀온 듯하니. 솔직히 말해 안 가도 된다.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휴가지 두 곳, 강릉과 부산, 지금 막 다녀온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