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낚으러 간다

나들이 계획하기

by 최명숙


물고기도 아닌 봄을 낚으러 간다. 괴산으로. 친정에서 가까운 괴산으로 가는 이유가 있다. 봄나들이 갈 사람이 89세인 어머니, 81세인 고모, 80세인 작은엄마, 70세인 사촌언니 그리고 나다. 대략만 따져도 평균 연령 77세다. 멀리 떠나고 싶었는데, 80대인 세 분들이 가까운 곳을 원하셔서 정한 곳이다. 괴산 산막이 옛길과 문광저수지 등을 드라이브하거나 조금 걷고, 펜션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다. 그걸 봄을 낚는다고 표현하는 게 과장이겠으나, 그렇게 쓰고 싶다.


어른들을 호텔로 모시고 싶었다. 모두 반대다. 나눠 자는 건 싫고 한방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하룻밤 묵고 싶단다. 나는 좀 불편할 것 같아서 몇 번이나 설득했지만 딱 잘라 거절이다. 식구끼리 어떠냐고 한방에서 지내자고 하신다. 분명한 것은 내가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다. 80대의 세 어른의 이야기 장단이 늘어질 게 뻔하다. 옛날 고릿적 이야기가 다 나올 테니까. 내 귀에 못이 박인 할아버지 술 마시던 이야기, 성격이 극명하게 다른 두 할머니 이야기까지. 할 수 없이 펜션을 며칠 전에 예약했다. 큰 방 하나를.


관광지를 물색하고 음식점을 알아보느라 며칠 동안 짬짬이 컴퓨터 검색을 했다. 모두 적어두었다. 식사를 대부분 외식으로 할 테지만 간식거리와 아침 한 끼 마련을 위해 장을 보았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날 것인지 구체적인 것도 정해서 알렸다. 이제 아침에 떠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고모와 함께 고향 친정집으로 가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 읍내에서 사촌언니와 작은엄마를 만난 후, 목적지로 가면 된다.


차를 바꾼 것은 잘했는데, 예전보다 작아 마음이 쓰인다. 예전 ‘소냐’ 같은 차면 좋겠지만 지금 차 ‘프린’은 그에 비해 작다. 다섯이 타기엔 비좁을 수 있다. 그렇다고 렌트하기는 싫다. 마음을 비우고, 이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하긴 어른들은 체격이 모두 작아서 크게 문제 되지 않을 수 있다. 어른들 말마따나 식구들인데 비좁은들 어떠랴. 모든 걸 총괄하는 나만 이런저런 생각을 할 뿐이다.


재밌는 이벤트가 없을까 싶어 궁리하다 펜션 주인에게 전화로 물었다. 혹시 그곳에서 냉이를 캘 수 있느냐고. 진정한 봄은 봄나물에서 느끼는 것 아닌가. 주인이 캘 수 있단다. 자기가 캐는 곳인데 그냥 둘 테니 그때 와서 체험해 보란다. 서울에 살고 있는 고모가 가장 기뻐할 것 같았다. 중소도시에 사는 사촌언니도. 물론 나도 좋다. 시골에 사는 어머니와 작은엄마는 별로일 듯하다. 하지만 무릎이 시원찮은 두 분을 위해 우리가 ‘산막이 옛길’을 걷지 못하고 드라이브나 할 것 같아, 양해하실 듯하다.


혹시 몰라 48폭짜리 그림책도 하나 준비했다. 동전도. 어른들은 이야기하다 심심하면 그림책을 보실 수도 있다. 고스톱은 우리 어머니가 가장 실력 있을 것 같다. 지금도 복지관에서 매일 고스톱을 하신다니까. 나는 나름의 작전이 있다. 그렇게 그림책 감상을 하실 때, 사촌언니와 함께 산막이 옛길을 걸을 작정이다. 거기까지 갔다가 그 예쁜 길을 걷지 못한다면 아쉬울 것 같아서다. 혹시 그럴 기회가 없다 해도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작전은 그렇다.


옛날 우리 고조할아버지와 그 윗대에서 살았던 곳이 괴산이란다. 괴산으로 우리가 봄나들이를 가는 건 그런 의미에서 좋은 선택이다. 만난 적 없는 어른들이지만 고조와 그 윗대 선조들이 살았던 곳이고, 그분들의 유전자가 내게 흐르고 있으므로 분명히 낯설지 않으리라. 어쩌면 고향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내가 백두산에 갔을 때 들었던 기시감을 그곳에서도 느낄 수 있을지도. 그런 곳에서 올봄을 낚아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런 구성으로 나들이는 처음이다. 모두 무던한 분들이니까 특별히 신경 쓸 게 없다고 해도 나는 신경이 쓰인다. 잘해드리고 싶고, 재밌는 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모두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다. 사실은 함께 만들어야 하는 것인데도. 말로는 언제 같이 모여 놀자고 벼르기만 했었다.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누가 서두르지 않는다면 노인들끼리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 오래전부터 어머니나 고모를 모시고 다닌 적은 자주 있었지만 작은엄마와 사촌언니까지 함께 다닌 적은 없었다. 의견이 들어왔을 때, 내가 선뜻 그러겠다고 했다. 평균 나이 77세의 봄나들이, 봄을 낚으러 간다. 이 구성, 나름대로 재밌는 구성이다.


살아가는 일은 후회가 느는 일인지도 모른다. 이럴 걸, 저럴 걸. 이제 그 후회를 줄이며 살아야 하리라. 지나간 다음에 후회한들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잘 아는 것이라 해서 쉽게 실천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게 더 어렵기도 하다. 앞으로 얼마나 이렇게 다닐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은 일인 걸 잘 알기 때문에, 이번 봄나들이가 기대된다. 이것이 마중물 되어 앞으로 자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리라.


이제 날이 밝으면 봄을 낚으러 간다. 평균 나이, 77세들이. 꽃다지가 피었을까. 냉이를 캐며 살펴보련다. 땅이 토해내는 생기를 맡으며 새로운 희망을 잔뜩 안아보고 싶다. 어머니와 작은엄마 그리고 고모와 사촌언니, 일박이일 함께 지내며 못 나눈 가족의 정을 실컷 나누며 봄을 낚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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