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에 참여한 사람들과 탐방을 가기로 했다. 전날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는 예보가 떴다. 추워도 가을의 끝이 아닌가. 아직 본격적인 겨울로 들어가지 않았으니,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모두 같은 마음인 듯 단톡방에 올라오는 메시지엔 설렘마저 스민 듯했다. 탐방 장소는 성남시 금토동에 있는 조선 후기 여성 성리학자 강정일당의 사당과 묘소다.
강정일당의 한시와 서간문으로 몇 편의 소논문을 쓰면서 그의 학자적 면모와 삶에 매료되었다. 특강 주제를 정일당의 문학세계로 정한 건 그 이유에서다. 오래전부터 마음으로 흠모하며 배우고 있는 인물이 그다. 그야말로 나는 정일당에게 사숙하고 있다. 그의 남편마저 그를 스승으로 여겼다고 한다. 나도 스승으로 생각하고 삶과 정신을 배우는 중이다. 무엇보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학자의 모습을. 성품을 닮긴 힘들 것 같다. 내 성품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다섯 대 차에 나눠 타고 강정일당 사당 입구까지 갔다. 차에서 내렸다. 춥지 않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바람도 잔잔했다. 간헐적으로 산들 부는 산바람은 낙엽과 흙냄새를 싣고 왔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사당을 향해 삼삼오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훌륭한 역사적 인물의 정신을 배우고 본받는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사십 대부터 칠십 대, 다양한 연령대에 속한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탐방에 임하는 모습, 가히 감동적이었다. 더구나 금쪽같은 토요일 아닌가.
사당을 둘러보고 묘소로 향했다. 묘소로 가는 길은 험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약간 미끄러웠다. 45도 각도 비탈길이다. 밤송이가 즐비했다. 내년 가을에는 이곳으로 밤을 주우러 와야겠다는 이야기를, 같이 걷는 사람과 나눴다. 추위에 대비해 두꺼운 패딩점퍼를 입고 왔는데, 땀이 줄줄 흘러 점퍼를 벗었다. 오르면서 바라본 하늘은 여전히 쪽빛이다. 청정한 모습이 강정일당을 닮았다. 맑은 바람도. 어머니를 찾아가는 것처럼, 스승을 뵈러가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고 포근했다.
묘소에 이르렀다. 아직도 저 아래서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 젊은 사람들이 더 늦다. 연세 드신 분들은 벌써 도착했는데. 거기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주워 지팡이로 사용하고 있지 뭔가. 박장대소했다. 거꾸로 된 것 같아서. 어른들은 그냥 올라왔는데 말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운지 모두 웃었다. 다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묘소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더 푸르렀다. 양지바른 곳, 아래로 보이는 풍광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비석을 살펴보았다. 마침 강정일당의 탄신일 전날이다. 모두 놀랐다. 미리 알았다면 음식이라도 준비해 왔을 텐데. 아쉬워했다. 그때 한 사람이 가방에 있는 간식을 꺼내 상석에 올려놓자, 너도 나도 꺼내놓았다. 가지런히, 마음을 담아. 크래커, 견과, 귤, 차, 사탕. 선생께서 이런 현대적 음식을 맛보시지 못했을 테니,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마음이 중요하다며.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읍하고 섰다. 묵념을 했고, 정일당의 시를 함께 성독했다.
위에는 정일당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시를 써 주고받았던 시어머니 지일당의 묘소를 비롯하여 몇 분의 묘소가 있었다. 모두 돌아보며 정일당의 정신과 삶의 모습을 되새겼다. 고요하고 단정한 그 모습을 배워야 하리라.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이 제대로 되는 게 아니라, 더 품위를 잃고 허둥대는지라 자괴감 느낄 때 있다. 언제나 괜찮은 사람이 될까 고민스럽기도 하다. 훌륭한 인물의 삶을 돌아볼 적엔 긴장감을 갖는데, 조금 지나면 또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게 안타깝다.
정일당 묘소로 다시 와 우리는 성석에 올려놓은 간식을 나눠 먹었다. 속으로 인사를 드리고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은 낙엽으로 덮여 미끄러웠다. 이상했다. 가만히 보니 낙엽이 치워져 있지 뭔가. 앞서서 두 사람이 낙엽을 치우며 내려가고 있었다. 이웃과 친척에게 정을 베풀며 돌보아주던 정일당의 모습을 닮았다. 저들은 금세 공부가 되었단 말인가. 이번 특강 주제를 잘 정했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흐뭇했다.
나는 문학가의 모습은 박완서 작가에게 배우고, 학자로서 모습은 강정일당에게 사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배워도 크게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 걱정이지만. 마음에 두고 있으니 조금씩이라도 닮아가려나. 쉽지 않다. 내가 사숙하는 또 한 사람, 강정일당. 그분을 만나고 오는 길, 생각이 많았다. 누군가가 본받고 싶은 사람으로 살아야 할진대 요원한 것 같아서. 적어도 후손들에게라도 그리운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할 텐데. 정일당의 한시에 빈번하게 드러나는 주제 역시 ‘권학’과 ‘수양’인 것을 떠올리면 의미심장하다. 마음을 닦는 일은 누구나 어려운 일이리라.
탐방 후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카페에서 차를 마셨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오후 해가 기울어가고 있는데 하늘은 여전히 쪽빛이다. 한결같은 저 하늘, 정일당의 삶을 닮은 저 하늘, 나도 그의 삶을 닮으려 노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