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로에 나팔꽃이 피었다. 누가 심은 것은 아니고 자생이다. 새들이 물고 가다 떨어뜨려 싹을 틔운 걸까. 바람에 날려 와 둥지를 튼 걸까. 보랏빛 나팔꽃은 산책길을 곱게 꾸며주고 있다. 메꽃과 모양이 비슷하지만 더 요염해 보인다. 그건 아무래도 색깔 때문인 듯하다. 아침에 일찍 나가도 벌써 피어 있다. 부지런한 나팔꽃.
한 남자가 있었다. 나보다 훨씬 연하인 데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고 무엇보다 눈썹이 진한 잘생긴 남자였다. 키 또한 크고 몸집도 적당했다. 한동안 그 남자에게 끈질긴 구애를 받았다.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남자가 한둘이 아니던 시절의 이야기다.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하면, 속으로 웃을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정직'을 평생 지표로 살아온 나인데 거짓말할 리 없다. 오늘따라 그 남자가 생각나는 건 저 나팔꽃 때문이다.
남자는 내가 출근하기 전에 항상 먼저 와 있었다. 손에 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들어가면 그 꽃을 내민다. 처음엔 설마 나에게 주는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맞았다. 내가 받자 그 남자는 그제서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나에게 온종일 시선이 고정되다시피 했다. 불편했다. 설마 스토킹? 무섬증까지 일었다. 그러다 말겠지 했지만 오산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꽃 세례는 매일 아침 계속되었다. 동료들도 의아해했다. 출근이 부담스러워졌다. 하지만 안 할 수 없는 노릇. 그만한 일로 직장을 그만둘 수 없다. 생계가 달린 일인데. 한 달 정도 계속되었을 때, 진지하게 만류했다. 남자는 아무런 답도 없이 뚱한 표정으로 꽃을 주고 자리에 앉았다. 나를 향한 응시는 계속되었다. 남자는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내가 말했다. 왜 그러냐고. 그만하라고.
남자가 입을 열었다. 나와 결혼하고 싶다는 거였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린가. 나는 이미 기혼이었는데. 조용히 말했다. 나는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가 있다고. 그러니 마음 접으라고. 남자의 표정엔 놀라는 기색이 없다. 알았다며 그래도 결혼하고 싶단다. 동료들도 남자에게 마음을 돌리도록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동료들이 나를 부러워했다. 저렇게 잘생기고 어린 남자가 일편단심 민들레니 얼마나 좋으냐고. 자기들에게도 저렇게 순정을 바치는 남자, 아침마다 꽃을 바치는 남자가 있다면, 오늘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했다. 결혼 안 한 자기를 두고, 왜 나를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그거야 뭐, 보는 눈이 있으니 그러지 않을까요?라고 하자, 지 눈에 안경이니까 그렇겠죠, 라며 깔깔 웃었다. 그러면서도 부러워하는 빛이 역력했다.
하루는 남자의 엄마가 나를 만나러 왔다. 마마보이도 아니고, 이건 뭐지 싶었다. 이유는 내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밥을 잘 먹지 않다는 거다. 저러다 병이 나게 생겼으니, 조치를 취해 달란다. 가만 보면 모자가 똑같다. 조치는 무슨 조치! 아들을 설득해야 될 노릇 아닌가. 내가 이혼이라도 하고 남자와 결혼해주겠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나는 그 남자와 사귈 마음도 전혀 없다. 난 결혼한 사람 아닌가. 남편이 안다면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라고 할지도 모른다.
다음날 남자는 기운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왔다. 역시 꽃을 들고서. 내게 건네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묻지 않았다. 식사가 부실한 게 틀림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저녁에 남자의 엄마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사정했다. 어떻게 좀 안 되겠느냐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결혼하겠다는 말이라도 해달라고. 가당키나 한 말인가. 나는 절대 안 된다고,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지 않느냐며 남자의 엄마는 고집을 부렸다. 저러다 아들을 잡을 수도 있다며, 간곡히 말했다.
동료들도 문제다. 그러는 게 좋겠다는 거다. 남의 일이니까 맘대로 지르는 것 같았다. 본인이라면 그런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할 수 있을 건가. 동료들은 수시로 쑥덕댔다. 사랑을 받는 것, 그것처럼 가슴 설레는 게 있을까. 하지만 경우에 따라 다르다. 마음 착한 나는 남자가 상처받을까 봐 너무 걱정되었다. 동료들은 저러다 무슨 일 일어나면 어쩌냐고, 사람 잡을 수도 있다고, 일단 살려놓고 보란다. 그 말이 솔깃하기도 했지만 책임지지 못할 말이라 망설였다.
다음날 아침, 남자는 거의 실신 상태로 역시 꽃을 들고 서 있었다. 내가 남자를 꼬옥 안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지금은 결혼이 어렵지만 나중에, 아주 나중에, 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 제발 밥을 먹고 기운을 내라고.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볼에 뽀뽀했다. 아주 오래. 그리고 다짐하듯 말했다. 원장 선생님 정말이죠? 나중에 나랑 결혼할 거죠?라고.
그렇다. 남자는 우리 어린이집 원아였다. 일곱 살짜리 아이. 여름 끝자락부터 가을 중순까지 매일 아침 꽃을 들고 왔던 아이. 그 꽃은 나팔꽃 한 송이였다. 등원 길에 피어 있는 나팔꽃을 매일 한 송이씩 따온 거였다. 두 송이도 아닌 꼭 한 송이. 다른 교사들이 하나만 더 따다 달라고 해도 도리질하던 아이. 나팔꽃 한 송이를 들고 등원하는 모습이 사랑스럽던 아이. 그 아이의 사랑은 짧았다.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나팔꽃처럼. 5개월 후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사랑이 끝났다.
그 후 길에서 그 남자를 만난 적 있다. 내가 불렀더니 고개만 까딱하고 친구들과 막 뛰어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때 난 알았다. 사랑은 움직이는 거란 걸. 지금은 어떤 여자의 남자 친구 혹은 남편이 되어 예쁘게 그 사랑을 이어갈까. 내게는 가끔 생각나 미소 짓게 하는 멋진 연하의 '나팔꽃 신사' 그 남자, 그 아이.
우리 가족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채, 이십오 년이나 흘렀다. 지금은 진짜 ‘남자’가 되었을 나팔꽃 신사 잘 있겠지. 날 까맣게 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