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사람

by 최명숙


달 밝은 밤이었다. 달빛이 여닫이문 창호지를 뚫고 은은하게 들어오는. 잠이 오지 않아 방문에 달린 아기 손바닥만 한 유리에 한쪽 눈을 갖다 댔다. 달빛이 안마당 가득 내리고 있었다. 헛간에 세워둔 삽과 호미가 다 보일 정도로 밝다. 벽에 걸린 망태기 안에 꼭 누군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슬며시 무섬증이 일었다. 나지막한 담장 위 햇짚으로 인 지붕이 달빛에 노랗게 빛나고, 굵은 싸리나무 가지로 엮은 사립문은 낡아서 거무스름하게 보였다.


그때 스르르 사립문이 열렸다. 무서워서 가슴이 벌렁거렸다. 방에는 잠든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두 동생들의 숨소리만 새근새근 들렸다. 누구를 깨워야 하나. 생각과 달리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무섬증만 더 커져서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래도 유리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립문이 더 열리고 집채만 한 나뭇짐이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나뭇짐만 보일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삐그덕 부엌문 소리가 났다. 조심스레 걷는 사람 발자국 소리도. 나가지 못했다. 무서움이 극에 달했으므로. 그러면서도 호기심이 일어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빈 지게를 진 남자가 마당을 지나 사립문을 닫고 나갔다. 마당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교교한 달빛만 내리고 있었다. 사립문도 지그려 놓은 채 그대로였다. 벙거지를 썼지만 건넛집 아저씨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삼촌의 친구였다.


가만히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갔다. 텅 비었던 나뭇간에 커다란 나뭇짐이 놓여 있었다. 짊어졌던 자리는 움푹 들어갔다. 손을 대보니, 미지근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꿈인 듯 환상인 듯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 실체를 보니 꿈도 환상도 아닌 게 분명했다. 남자 어른이 없는 우리는 양식만큼 아낀 게 나무였다. 그만큼 땔감이 귀했다. 산에 널린 게 나무라지만 너도 나도 해 때던 시절이라, 우리 차지가 되기 힘들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건넛집 아저씨가 왜 우리 집 나뭇간에 나무를 갖다 놓았을까. 낮이 아닌 오밤중에. 어린 소견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기억나는 게 없고,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삼촌을 아버지처럼 의지했다. 하지만 삼촌도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자, 나는 심한 우울감과 상실감으로 어린 나이에도 숙면에 들지 못했다. 그런 밤이면 작은 유리를 통해 어둑한 마당을 하염없이 내다보곤 했다. 그날도 잠이 오지 않는 우울한 날이었다. 한 달 전에 돌아가신 삼촌의 부재는 열다섯 살 소녀의 감성을 휘젓고 할퀴었다.


내가 지난밤에 본 것을 말하지 않았지만 할머니는 알고 계셨다. 어머니가 아침 밥상에서 나뭇짐이 들어와 있더라고 하면, 할머니는 아무개가 그랬을 거라며 건넛집 아저씨 이름을 댔으니까. 그래도 나는 봤다는 소릴 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굳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 잠 안 자고 있었다고 꾸중들을 것 같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늘 잠을 많이 자야 얼른 쑥쑥 큰다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서 어른이 되기를 그렇게 바라셨을까, 할머니는.


건넛집 아저씨는 해마다 한두 번씩 우리 집 나뭇간에 나무를 갖다 놓으셨다. 달 밝은 겨울밤에 몰래. 그것도 아주 깊은 밤, 마실꾼들이 다 돌아가고 식구들이 깊은 잠에 빠졌을 때였다. 찬기만 겨우 가신 방에서 친구의 어머니와 형수 그리고 조카들이 자는 게 마음에 걸려서 그랬으리라. 그 따뜻한 마음이 상실감과 우울감에 빠져 잠 못 드는 어린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어렸다. 고맙다는 말도, 아저씨가 그랬죠? 하는 말도 못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어른이 되었다.


결혼을 하고 몇 년 지난 후, 친정에 갔더니 아저씨가 편찮으시다고 했다. 오렌지 주스 한 통을 사들고 방문했다. 아저씨는 누워 계셨다. 나를 보고 반기며 일어나려 했지만 내가 극구 말렸다. 그리고 어릴 적 달밤 나뭇짐 이야기를 했다. 내 눈에 자꾸 눈물이 흘렀다. 아저씨는 누워서 손만 내저었다. 마르고 주름진 거무튀튀한 손이었다. 별소릴 다한다고, 그걸 뭘 입에 담느냐고, 더 해다 주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다면서. 아저씨 눈에도 눈물이 지르르 흘렀다.


하나의 의문점이 오랫동안 있었다. 왜 건넛집 아저씨가 꼭 오밤중에 그것도 달빛 있을 때, 나뭇짐을 져다 놓았을까 하는 거였다. 불혹이 넘어서야 의문이 풀렸다. 몇 가구 살지 않은 작은 마을, 이웃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빤한 동네였다. 말 또한 많은 게 시골 마을의 특성이다. 누구에게라도 눈에 띄면 이런저런 소문이 날 수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더구나 어머니는 서른 중반밖에 안 된 젊은 여인이 아닌가. 조금이라도 불미스러운 소문이 날까 봐 조심스러워서 그랬을 거다. 달밤을 선택한 것은 돌부리에라도 채여 발자국 소리가 커지면 이웃집 개가 짖을까 봐, 그러면 누구라도 알게 될까 봐서다. 좋은 일을 하더라도, 그것이 작고 크든 간에,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한 진정한 배려였다.


오십 년도 더 지났고, 달빛처럼 어슴푸레해졌지만, 달밤이면 떠오르는 따뜻한 기억이다. 그런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명제를 가슴에 다시 새기면서 달을 본다. 그러나 여전히 그날이 그날 같은 삶을 이어가는 덜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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