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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허니문, 진정한 동거

by 최명숙


아들이 청소기를 돌린다. 내가 아침 준비를 하는 동안.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물론 며칠 전에 합의를 한 사항이다. 가사분담하기로. “요즘 가사분담 안 하면 쫓겨나기 십상이야. 그건 부부만의 일은 아니야. 함께 사는 동거인들도 다 그래야 해. 더구나 난 손목이 아프고 할 일도 너 못지않게 많으니 분담하자. 한계를 느껴.” 어렵게 말했다. 사실이니까. 어느 날 집으로 들어온 아들 덕분에 가사노동 시간이 현저히 늘었다. 특히 아침시간이 그렇게 분주할 수 없다. 식사준비 때문에. 그뿐인가. 빨래며 청소까지 하루가 모두 분주하다.


혼자 살다가 집으로 들어온 아들은 집이 천국이라고 했다. 너만 천국이지 나는 지옥 근처야,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물론 아들과 지내는 일은 괜찮다. 공감 능력이 탁월해 교감이 잘된다. 하지만 가사노동 시간이 의외로 많이 늘었다.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는 내게 버거울 정도로. 손목은 조금씩 나아지는 듯했다가 다시 또 아프기를 반복한다. 그건 충분히 휴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그건 가사분담이었다.


내 말에 아들은 흔쾌히 말했다. 분담하겠다고. 청소, 빨래를 맡겠단다. 가끔 설거지도. 가끔. 그래 가끔이라도 괜찮다고 했다. 식사준비와 빨래는 전적으로 내가 하기로 했다. 대신 화초 물 주기와 쓰레기 버리는 것을 하라고 했다. 좋단다. 집안일이라는 것이, 부수적인 게 또 얼마나 많은가.


처음 내 생각은 사람 하나 더 있다고, 그것도 자식인데, 뭐 그리 어려우랴 싶었다. 아니었다. 힘들었다. 하루이틀돌이로 하는 빨래와 식사준비가 만만치 않았다. 물론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만, 널고 개고 정리하는 게 일이다. 얼마나 빨랫감이 많이 나오는지 이해불가다. 한 번 씻을 때 수건 두세 장은 보통이다. 그걸 아침저녁으로 쓰니 하루에 수건이 대여섯 장이 나오는 게 보통. 하루는 말했다. “너, 결벽증 있냐!” 말귀를 금세 알아들은 아들은 너털웃음을 웃어댔다. 저, 웃음소리. 으악! 줘 패고 싶었다. 패봤자 내 손목만 더 아플 테니 눈만 하얗게 흘기고 말았지만.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저녁에 들어오면 꼭 묻는다. 때론 작업실에 있을 때 전화로 묻기도 한다. 내일 아침에 우리 뭐 먹느냐고. 그것도 웃으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염치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먹을 생각에 즐거운 것인지, 웃음소리를 꼭 낸다. 웃지 마! 뭘 먹든 쥐약은 아닐 테니까. 쥐어박듯 말해도 그 아들인지 하숙생인지 예술가인지 그 생명체는 웃기만 한다. 그의 입에 먹을 걸 넣도록 해주는 게 내 임무가 되어버린 듯하다. 식사준비, 그게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솔직히 십여 년 동안 하지 않던 쿡, 처음엔 재밌었는데 넉 달이 되어가니 슬슬 지겨워진다. 허니문은 이제 끝난 모양이다.


허니문, 그 기간은 달콤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질퍽거리고 지지고 볶는 일과 부딪치지 않는가 말이다. 이제 아들과 동거하기 시작한 지 넉 달이 며칠 남지 않았다. 아직 크게 의견충돌이 난 적 없다. 의견은 비교적 잘 맞는다. 크게 잔소리할만한 짓을 저지르지도 않는다. 마흔두 살이 되어서도 잔소리 듣게 된다면 그게 문제일 거다. 아무튼 지금으로선 달콤한 허니문까지는 아니라도, 계속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내 희생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고 느꼈으니까.


그게 바로 가사분담 제의였다. 동거하는 동안 좋은 어미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싶은 당치 않는 생각이 있었다. 아무 쓸데없는 그런 생각을 한 내가 지금으로선 용납되지 않는다. 동거 시작할 때 정했어야 한다. 동거 수칙, 그런 거 말이다. 그저 어미의 마음만 앞서서 밥 해줘, 빨래해 줘, 청소해 줘, 생활비 이야긴 꺼내지도 못해, 난 호구 잡힌 어미였다는 걸 깨닫는데 석 달이 더 걸렸다. 며칠 고민했다. 아들인데도 쉽지 않았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그저 어미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생각은 고루했다.


가사분담 제의, 협상이고 뭐고 없었다. 나는 힘들게 꺼냈는데, 아들은 그야말로 쿨했다. 먼저 말했다. 청소, 빨래, 쓰레기 처리를 하겠다고. 빨래 대신 화초에 물 주는 것을 하라고 한 것은 나였다. 아들에게 빨래까지 전담시키는 건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들은 좋단다. 가끔 설거지와 요리도 하겠다고 했다. 한 달에 두 번, 특별 요리를 부탁할 생각이다. 막상 말하니까 쉬운 일을 어려워했다. 사실, 자식도 머리가 커지면 어렵다는 게 맞는 말이다. 오죽하면 남편 밥은 앉아서 먹고 자식 밥은 서서 먹는다는 말도 있을까.


오늘 아침, 아들은 청소를 했다. 혼자 살아봐서 그럴까, 제법 꼼꼼하게 잘했다. 그동안 나는 아침식사와 아들이 갖고 나갈 도시락 두 개를 준비했다. 가사분담 제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숙생에서 이제 진정한 동거인이 되었다. 허니문은 끝났다. 살아야 할 현실이 우리를 기다린다. 슬기롭게, 슬기롭게 살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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