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저 아들을 낳은 게 맞을까. 어쩐지 헷갈린다. 일천구백팔십일 년 사월 충무공 탄신일, 봄이 무르익던 그날 아침부터 배가 아프기 시작, 종일 아팠다 덜했다 반복하더니 저녁에 4kg짜리 과숙아로 태어난 아기가 저 아들 틀림없는데. 그 사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꿈에 낳은 것도 아닐 터인데. 아무튼 내가 뱉은 말을 떠올리면 헷갈린다. 어미라면 정녕 그럴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나는 어미가 아닐지 모른다. 아니, 아니다. 낳은 건 맞지만 어미 자질이 없다. 그게 맞을 것 같다.
몇 년 동안 아들 결혼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 내가 어쩌자고 그 말을 뱉은 것일까. 말의 속성이 아무리 즉흥적이라 해도, 심중에 있다가 나오는 것이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나오는 건 아닐 터다. 오죽하면 취중진담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술 취한 사람이 하는 말에도 진심이 실렸는데, 어쩌자고, 정녕 어쩌자고 나는 그 말을 한 걸까. 한 번 뱉어버린 말은 쓸어 담을 수 없다. 감정대로 말해버리다니. 내가 덜 된 사람이든지, 잠재의식 속에 있는 내면이 드러난 것이든지, 둘 중의 하나일 거다.
엊그제 일이다. 저녁에 퇴근한 우리 집 하숙생 아니 동거인이자 예술가인 아들이 말했다. 본인이 예술가인 것을 강조하니 ‘예술가’를 붙여준다. 세금 내는 것도 아닌데 원하는 대로 불러주는 것도 예의라면 예의다. 아무튼. 그 아들이 뜬금없는 소릴 했다. 그 말끝에 1초도 망설임 없이 내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말이, 바로 내가 뱉어버린 그 말이다. 아, 발화되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아들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 모습에 일말의 연민을 느끼긴 했다.
이유를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느냐고. 아들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고 일어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쓸어 담을 수 없는 말이란 걸 발화되는 순간 느꼈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아들을 불렀다. 대답을 했지만 거실로 나오지 않았다. 잠시 후 안 되겠다 싶어 아들 방으로 노크하고 들어갔다. 아들이 보이지 않았다. 욕실에서 음악소리와 함께 물소리가 났다. 예술가라서 그럴까. 샤워할 때 꼭 음악을 듣는 습관이 있는 그다. 다시 문을 닫고 거실로 나왔다.
즐겨보던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아닌 아들에게 말을 함부로 했다는 게 불편했다. 한 번만 더 생각하고 말했다면, 적어도 에둘러서 말했다면, 이런 마음까지 들진 않았을 텐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어미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말한 게 자책감마저 들었다. 내가 어미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왜 일말의 재고 없이, 1초의 망설임 없이, 그 말이 튀어나온 것일까. 내가 그렇게 즉흥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었던가. 제자들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로 상처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는데, 모든 게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텔레비전에서 가수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시선은 화면에 향했는데,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알 수 없다. 뱉은 말의 끝을 물고 또 물고 끊임없이 생각이 이어졌다. 그 진원지는 어딜까. 내 의식의 가장 아랫목이리라. 그 아랫목에 생각지도 못했던 의식이 웅크리고 있었다니. 나는 확실히 모자라는 어미다. 아들에게 긍정적이고 힘이 나는 말을 못 하고 왜 그랬을까. 아들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민망했다.
“엄마, 저 프로 재밌어요?”
씻고 나온 아들은 조금 전 표정과 달랐다. 밝았다. 샤워의 힘일까. 씻으면서 내가 한 말도 씻어버린 걸까. 먼 옛날 허유가 허탄한 말을 듣고 귀를 씻듯, 그렇게 말 안 되는 말을 듣고 씻어버린 것일까 말이다. 빤히 아들을 올려다보았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빙긋 웃으며.
“괜찮니? 내 말의 핵심은…….”
“아, 알아요. 마음 쓰지 마세요. 엄마가 그러란다고 그럴 저도 아니고, 제 마음대로 할 거니까요.”
아들은 낙관주의자다. 뭐든 낙관적으로 본다. 그게, 가끔 답답할 때 있고, 가끔 숨통이 트이게 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늘 싱글벙글하는지 모르겠다. 말장난도 잘하고. 그날은 그런 면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이쯤에서, 도대체 당신이 뱉은 그 말이 뭔데요? 왜 변죽만 울리고 핵심을 말하지 않나요? 답답해하거나 궁금해할 독자가 있을 거다. 아니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미 내가 한 말을 알고 있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선뜻 말하지 않고 의뭉스럽게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내 작전이다. 글쓰기에는 작전이 필요하니까.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해도 할 수 없다. 난 이렇게라도 하고 싶다. 그래야 내 글을 끝까지 읽을 테니까.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말인지, 아닌지, 적어도 그거라도 확인하고 싶어 여기까지 읽은 독자가 있다면, 성공이다.
이제 내가 아들에게 뱉은 그 말을 밝힐 차례다. 다시 그날, 엊그제로 돌아가자. 퇴근한 아들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내게 불쑥 말했다.
“엄마, 저 결혼하는 게 좋겠어요.”
“아니! 하지 마! 절대로 하지 마! 결혼, 꿈도 꾸지 말라고!”
1초도 망설임 없이 내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것도 아주 큰소리의 단호한 어조로.
아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나를 쳐다보았다.
“…….”
“왜? 갑자기 무슨 결혼! 넌 결혼하면 안 돼. 뉘 집 귀한 딸 속 터지게 하려고. 혼자 살아! 그게 답이야.”
쐐기를 박았다.
“온이들 보면 무척 예쁘잖아요. 저도 그런 아이들 키워보고 싶어요. 지금 당장 아니고 몇 년 후인데요.”
“응, 그래도 하지 마! 지금처럼 너 하는 일에 의미를 두고 살아.”
아들은 더 이상 말이 안 될 것 같은지 고개를 숙이고 방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왜 그렇게 독하게 말했을까. 내가 겉만 어미지 속은 아니라서 그런 건 아니다. 독자들은 눈치챘을지 모른다. 그래야만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이후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 이상 없다. 오늘 아침에도 사자대가리 같은 내 뽀글 머리를 보고 키득키득 웃다가, 밥 먹고, 도시락 두 개 가방에 넣고, 작업실로 나갔다. 두 번 나와 포옹하고. 독한 말을 해도 우리의 동거 전선에는 이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