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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Dec 25. 2023

나의 장점 몇 가지


글쓰기 모임에서 글감이 제시됐다. '나의 장점'이다. 어렵다. 글쎄, 딱히 이거다 말하기 힘들다. 장점은 좋은 점을 말하는 거니까. 낯 뜨겁게 난 이게 좋은 점이야,라고 하기 쉽지 않고. 아무리 지금이 자기 PR시대라 해도. 그게 익숙한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고, 그런 시대를 살지 않았기 때문일 것 같다. 모든 게 습관이니까. 생전 안 하던 짓을 어찌할 것인가. 남들이 당신은 이런 점이 좋은 점입니다,라고 한다면 또 모를까. 아무튼 스스로 밝히긴 낯 뜨겁고 낯간지러운 일이다. 


그래도 뭐 한 번 해보라면 해볼 수 있다. 얼굴에 철판 깔고. 그럼 철면피가 되는 건가. 아, 그건 내가 가장 경멸하는 짓인데. 아무튼 나의 장점을 묻는 사람이 있다면 몇 가지 말할 수 있다. 아니 수십 가지도 말할 수 있다. 앞에 말한 얼굴에 철판을 깐다면 못할 것도 없다.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되므로. 자기 장점을 아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존감이 강한 사람일 것 같다. 내가 자존감이 낮진 않은 사람인데, 못할 것도 없잖은가. 


얼굴의 철판이 아니라, 자존감이 높은 나라고 생각하고 몇 가지만 그럼 말해볼까. 그러자. 그래보자. 음, 음, 음. 아무리 이런저런 구실을 갖다 붙여도 나의 장점을 말하는 건 낯간지럽다. 먼저, 나를 객관화시켜 보자.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을 중심으로 내가 어떤 좋은 점을 가졌는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자는 거다. 쉽지 않다, 그것도.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므로 주관성이 개입하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망설임 끝에 몇 가지만 떠올려보기로 한다. 


나의 첫 번째 장점은 ‘성실’이다. 쓸데없이 성실한 편이다. 무엇이든 한 가지 하면 그만두는 일이 거의 없다. 아주 불가항력적이 되지 않는 한 그만두지 않는다. 내가 학위논문을 쓰고 났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독하다’는 말이었다. 당시 내 여건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해냈다. 그동안 변수가 많았는데, 꿈쩍하지 않았다. 논문을 심사했던 교수들이 모두 내게 독하다고 했다. 나는 그때 너스레를 떨었다. “제가 최가잖아요.”라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성실이 늘 좋은 건 아니다. 놓을 때 놓아야 하는데, 나는 놓지 않음으로써 성실하다는 평을 듣는 듯하다. 그 뒤에 꼭 따라오는 게, ‘독하다’ 아니면 ‘고지식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그게 꼭 장점이기만 한 걸까. 그 결과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는 것을 볼 때, 분명히 장점이긴 하다. 성실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내 신세가 고달프다. 힘들다 말하고,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면 그래도 좋은데, 나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일이고 가야 할 길이라고 할 때, 다른 생각 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하고 그 길을 간다. 


나의 두 번째 장점은 ‘끈기’다. 이건 성실과 일맥상통한다. 끈기가 있어야 성실할 수 있고, 성실한 사람은 끈기가 있다. 그러니 따로 이야기할 부분은 아닐 수 있다. 성실은 정성스럽고 참되다는 의미이고, 끈기의 의미는 쉽게 단념하지 않고 끈질기게 버텨나가는 힘이다. 성실과 끈기 중에 어느 쪽이 더 내게 있는 성향인가 본다면, ‘끈기’인 것 같다. 엉킨 실뭉치를 푸는 것도 끈기가 있어야 하고, 목표를 이루어 나가는 것도 끈기가 있어야 한다. 


어릴 적에 어머니와 밭을 매러 간 적 있다. 삼복더위 땡볕에서 밭을 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밭을 매며 나는, 못 하겠다 힘들다 집에 가자는 말을 절대로 하지 않았단다. 하도 안쓰러워 그만하고 가자고 해도, 어둡기 전에는 일어서지 않았다고. 어머니가 힘들다고 하면 엄마는 쉬라고 나는 그냥 하겠다고 했다니, 그게 끈기였는지 오기였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도중에 그만두는 일이 웬만해선 없었다. 


나의 세 번째 장점은 ‘도전’ 정신이다.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걸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흥미가 생긴다. 그게 무엇이든. 새로운 길, 새로운 방법, 새로운 일, 새로운 그 무엇, 다 좋다. 어설프고 두려움이 있지만 흥미도 있다. 새로운 것에 두려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그 두려움과 어설픔을 즐긴다. 도전은 고정관념과 대치된다. 나는 언제든 고정관념을 파괴시킬 각오가 돼 있다. 그걸 파괴하는 게 나에게 있는 장점 중 하나인 도전이라고 본다. 


도전은 익숙하지 않은 것과 맞닥뜨릴 때 빛을 발한다. 도전은 세상의 익숙하지 않은 것과 마주함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어떻게 반응할까. 겁내지 말아야 한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스펜서 존슨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두려움을 극복해야 새 치즈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깊이 공감한다. 맞다. 우리의 일생은 어쩌면 새 치즈를 얻는 여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것과 마주하며 익숙해지는 것, 그건  삶의 여정에서 꾸준히 일어나는 일이니까. 


마지막으로 나의 장점을 들라면, 역설적이게 ‘소심’하다는 거다. 난 소심하다. 무척. 나처럼 소심한 사람 흔치 않을 거다. 그 소심함을 발톱 숨기듯 깊이 숨기고 있다. 성실과 끈기 그리고 도전하는 용기가 있어 소심함이 드러나지 않는 건지 모른다. 나는 내가 잘 안다. 나는 확실히 소심하다. 그 소심함이 실수를 줄일 수 있게 한 것 같다. 여전히 실수는 있다. 말실수, 행동 실수, 판단 실수 등등. 실수가 잦은 나다. 그나마 이만큼 실수만 하는 건, 내가 소심한 덕분이다. 그러니 장점 아닌가. 


이쯤 해두자. 나의 장점을 더 나열하고 나름대로 이유를 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 이제 그만이다. 수필에서 자랑을 늘어놓는 건 썩 좋은 게 아니므로. 어쨌든 타고난 성실과 끈기 그리고 도전과 소심함으로 지금까지 큰 잘못 저지르지 않고 내 꿈을 이루며 살아왔다. 더 욕심부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만큼에서 만족한다. 나의 장점을 살리며 산 게 감사할 따름이다. 


어제 온이네 갔었다. 온이가 공연을 하겠단다. 율동과 함께 온이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온통 ‘감사’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래도 감사 저래도 감사였다. 나도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고 가져야겠다. 이렇게 나는 배우기를 좋아한다. 또 하나 나의 장점을 들라면, 그래 이것을 빼놓을 순 없다. ‘호학’이다. 내가 사숙하는 또 한 분의 스승 공자님을 닮아 나도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성실, 끈기, 도전, 소심, 호학(好學). 이 다섯 가지는 나의 장점이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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