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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Jan 03. 2024

그녀가 그와 헤어진 이유

    

그녀가 그와 헤어졌다. 그녀에게 그를 소개하며 무당벌레가 말했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왔을 즈음, 서로에 대해 알 거라고. 한 바퀴가 아니라 네 바퀴나 돌 때까지 만나고 네 번째 맞는 봄에 헤어졌다. 그 좋은 봄날에, 진부한 표현대로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고, 봄꽃은 서로 먼저 피려고 다투는 화사한 봄날에 말이다. 쨍하고 환한 낮 같은 봄볕, 푸르러지고 있는 산야, 꽃처럼 화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소녀들. 모두 봄을 만끽하는 날에, 그녀는 그와 헤어졌다. 


그녀가 그와 헤어진 이유를 무당벌레에게 말했다. 회사 옆 골목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캐러멜 마키아토 그 달달하다 못해 욕지기가 나올 것 같이 단 커피를 홀짝거리며. 무당벌레는 호강에 요강을 타다 엎은 격이라며 등을 한 대 후려졌다. 그녀가 낄낄거렸다. 우는 것 아니냐는 무당벌레 물음에 그녀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게 이유야? 겨우 그거냐고! 무당벌레는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말로 해! 왜 고개만 젓고 끄덕 거리냐고! 무당벌레는 화나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화가 났다. 그녀는 답변 대신, 그 무당벌레 브로치나 떼!라고, 소리쳤다. 에먼 무당벌레 브로치에,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여자에게 화를 내던 어떤 시의 시적 화자처럼, 그렇게 화를 냈다.      


둘은 침묵했다.      


그녀와 무당벌레가 만난 건 초등학교 때였다. 그녀의 반에 전학 온 무당벌레는 무당벌레 모양의 가방을 메고 있었다. 가지 잎사귀에 올망졸망 열매처럼 붙어 있던 무당벌레를 보고 싶을 즈음이었다. 시골에서 전학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는 무당벌레에게 금세 친밀감을 느꼈다. 무당벌레 때문인지 모른다. 도시는 분주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왔고, 그녀는 그런 환경이 낯설었다. 보고 싶은 무당벌레를 그렇게 만났다. 무당벌레는 이름보다 별명이 더 자주 불렸다. 그녀에게뿐 아니라 반 아이들에게.      


침묵을 깬 건 그녀였다.      


“그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넌 몰라. 조건 좋은 사람이란 걸 모르지 않아.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야.”


“사 년을 더 만나고도 이제 와서 그게 이유가 돼? 바람피운 것도 아니고, 폭행이나 폭언한 것도 아니고, 인색한 것도 아니고, 겨우 그거냐고. 사 년 세월이 아깝지 않니? 그동안 잘 만나왔으면서.”


“사 년,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앞으로 함께할 사오십 년이야.”


“교육시키면 되잖아. 너 그런 사람 앞으로 만나기 쉽지 않아.”


“아니, 안 돼. 그 사람은 안 될 사람이야.”


그녀는 완고했다. 무당벌레는 강요할 수 없었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인데. 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적령기라는 게 꼭 있는 건 아니지만 결혼이 늦은 건 사실이었다. 스물여덟 살에 결혼해 열네 살짜리 딸을 둔 무당벌레에 비하면. 무당벌레의 결혼생활을 볼 때마다 그녀도 결혼하는 게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평범했으나 무미하게 보이진 않았으니까. 특히 딸과 친구처럼 지내는 모습은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와 결혼까지 생각했던 건 그래서였다. 중학교 과학교사인 그는 크게 나무랄 데 없었다. 그의 시부모 역시 부부교사이고, 그는 외동아들이다. 조부모는 선조들이 물려준 땅에 건물을 지어 관리하며 살고 있다. 조부모의 경제력과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력으로 내로라하는 사범대학에 들어간 그는, 졸업 후 바로 사립대학에 교사로 취업했으니 어려움을 모르고 성장한 사람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어떤 이유 때문에.      


키오스크가 떡 버티고 서 있는 주문대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는 한 노인이 보였다. 그녀가 발딱 일어섰다. 성큼성큼 노인 앞으로 다가갔다. 도와주겠다는 그녀에게 노인은 커피라테 두 잔 주문을 부탁했다. 무당벌레가 그녀 쪽을 흘깃거리며 보았다. 손님이 못하면 직원이 도와줄 텐데,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가 도와줄 일인가 싶었다. 더구나 이야기 중이지 않은가. 


주문을 돕고 돌아와 의자를 당겨 앉는 그녀에게 무당벌레가 말했다.


“모두 너처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나쁘진 않지만 넌 오지라퍼야.”


“아니야. 공감의 표시야.”


“무슨 공감?”


“키오스크를 낯설어하시잖아. 도와드린 건 그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이야.”


“그와 헤어지는 것도 그 이유라는 게 웃겨. 남자는 성실하게 가정 잘 책임지고, 건강하면 돼.”


“틀리진 않지만 공감 못하는 사람은 안 돼. 그는 공감능력이 없어도 너무 없어. 빵점이야. 사 년 동안 힘들었어. 평생 살 수 없는 노릇이야.”


그랬다. 그녀가 그와 헤어진 이유는 그거였다. 평생 안 벌어도 먹고살 걱정 없을 정도로 부유하고, 직장 튼튼하고, 인물 좋은데, 공감능력 없는 그와 살 자신이 없었다. 공감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그녀는 몰랐다. 사 년 사귀는 동안 황당한 일을 자주 겪었다. 그는 그녀의 아픔과 슬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물론 기쁨에도. 기계처럼 정확했지만 쇠붙이처럼 차갑게 느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그와 헤어진 이유는 공감 때문이었다. 간 때문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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