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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r 16. 2024

아들이 작업실을 옮겼다

작업실

    

아들이 작업실을 옮겼다. 심사숙고한 끝에 결정한 듯했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작업실에 오가는 게 만만치 않았으리라. 오고 가고 네 시간 족히 걸리므로. 운동하는 셈 쳐라. 버스 타고 좀 걷다가 지하철 타고 또 걸어서 들어가야 하는 게 안쓰러워 한 말이다. 여름엔 땀나고 더울까 봐 걱정되었고, 겨울엔 찬바람 맞으며 걷고 버스 기다리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들은 묵묵히, 조금도 불편한 기색 보이지 않고, 집으로 들어온 지 반년이 넘도록 다녔다. 그러던 아들이 어느 날 불쑥 작업실을 옮겼다. 


매일 도시락 두 개를 싸주는 게 내가 할 일이었다. 아침 한 끼 겨우 집에서 먹는 아들에게 영양가 골고루 들어간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나도 노력했다. 그게 또 재미이기도 했다. 나의 손길이 아직 필요하다는 건, 내 존재성을 부각하는 일이기도 하니까. 별 탈 없이, 아주 가끔 울근불근 마음에 안 드는 게 있긴 해도, 그런대로 우리는 질서 있고 조화롭게 반년이 넘어 일곱 달이 다 되도록 살았다. 


아들에게 작업실은 꼭 필요하다. 작업 특성상. 나는 그냥 서재가 내 작업실이기도 한데, 넌 꼭 필요한 거야? 묻긴 하지만 물으나마나 한 질문인 걸 안다. 나야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얼마든지 글을 쓸 수 있지만 그림 그리는 아들은 그렇지 않으니까. 드로잉만 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때론 유화 작업도 해야 하는데. 내 물음에 아들은 그냥 한숨만 내쉬곤 했다. 답답하다는 표현일 거다. 


작업실을 마련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든다. 지금까지 아들은 선배작가의 작업실을 함께 사용했다. 일정 사용료를 내고. 보증금은 없었다. 할 수만 있으면 혼자 쓰는 게 가장 좋을 테지만 그럴 여력이 없으므로 감내한 듯하다. 흔쾌히 모든 걸 대줄 수 없는 어미라는 게 속 아프다. 그래도 큰소리 탕탕 친다. 작업실이 중요한 게 아니고 정신이 중요한 거라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못하겠느냐고. 


그 말 때문인지 아니면 현실을 인식해서인지, 과감히 작업실을 옮겼다. 며칠 동안 여행용 큰 가방에 물품을 실어 날랐다. 내가 차로 실어온다고 해도 마다했다. 마지막 날 한 번만 부탁한다며. 매일매일 퇴근할 때마다 물건들을 실어 날랐다. 새로 마련한 작업실로. 조명을 설치하고 캔버스 놓을 자리를 정했다. 물감과 연필 등 도구를 정리해 놓으니 화실 분위기가 났다. 아직 정리할 게 남았지만 그럭저럭 급한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탄생되었다. 


아들의 작업실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 곳에 마련되었다. 출퇴근 시간도 3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 바로 아들 방이다. 바깥 발코니를 다용도실로 쓰고, 완성된 그림은 거실과 작업실 벽에 건다. 그렇게 그림을 모아 가을이나 내년 봄에 전시회를 할 예정이란다. 이제 집에서 그림을 볼 수 있다. 하루에 두 개씩 준비하던 도시락, 추울까 더울까 노심초사하던 마음, 이제 모든 걸 접어도 된다. 


요즘 아들은 시간적 여유가 있는 듯하다. 일주일에 삼사 일,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출퇴근 시간은 한 시간 이내 걸린다. 오후에 출근할 때 있고, 종일 근무할 때 있다. 나머지 시간은 그림 그리고, 운동하고, 글을 쓴다. 운동은 주로 자전거를 타는데, 잠실이나 반포까지 갔다 온다. 도중에 커피를 마시거나 한강 변 의자에 앉아 책을 본다고 한다. 여유 있어 보인다. 전에 좀처럼 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한강 바람을 맞고, 하늘의 구름을 보며, 내게 사진 찍어 보내기도 한다. 


아들은 작업실로 들어가며 말한다. 지금 출근했어요,라고. 씩 웃는 모습에 장난기가 어린다. 도중에 말을 걸면, 출근했는데 말 거시면 어떡해요, 한다. 작업을 마치고 나면 나와서 말한다. 이제 퇴근했어요,라고. 3초면 출퇴근할 수 있는 작업실, 세상에 이런 작업실도 있단 말인가. 비용 한 푼 들지 않는 가성비 최상 작업실이다. 조명이 하도 밝아서, 내가 전기세 좀 내라고 하면 씩 웃고 만다. 


아들은 자전거 타고 나갔다가 카페 앞에 세워놓고 들어가, 커피 마시며 책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한다. 가끔 지나가다 아들의 자전거를 볼 때 있다. 그래도 나는 그 카페에 들어가지 않는다. 아들만의 시간을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 여유 없이 지금까지 집 나가서 얼마나 숨 가쁘게 살았을까 싶으면 가슴이 아릿해온다. 사람마다 삶의 무게가 다 다르다고 해도 어미의 마음은 그렇다. 될 수 있으면 자식들이 여유롭고 행복감을 느끼며 살 수 있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우리 아들의 작업실은 내 서재 옆이다. 둘이 집에 있으면 각자 하는 일에 집중하다, 간식을 같이 먹고, 마트에도 같이 간다. 장 본 재료로 음식을 같이 해 먹고, 다시 또 각자의 작업실로 들어간다.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운동도 따로 한다. 아들은 자전거 타기, 나는 산책이나 산행. 도중에 아들은 꼭 전화를 한다. 비슷한 시간에 운동 마치고 들어와 같이 밥을 먹는다. 


아들이 작업실을 옮긴 지 한 달이 넘었다. 지금까지는 아들이 집에서 작업을 해도 불편한 건 없다. 좋은 점이 더 많다. 영양가 있게 식사를 챙겨줄 수 있다. 또 시간 맞추기가 수월하다. 온이네 갈 때도 웬만하면 같이 가고, 나들이도 같이 한다. 좀처럼 없던 일이다. 아들 결혼 전까지 내게 주어진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리라. 이렇게 같이 살 때가 있으면 떨어져 살 때도 있을 테니까. 아들이 작업실을 옮긴 후, 나는 확실히 더욱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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