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들이
온이 유치원이 방학이라 육아조력을 해야 했다. 아들과 나는, 온이를 데리고 함께 나들이하기로 했다. 일주일에 하루 어미를 위해 쓰겠다는 아들의 계획을, 지난주에 이어 세 번째 이행도 할 겸. 아들의 계획인데 내가 왜 더 신경 쓰이는 걸까. 물론 행복한 마음 씀이다.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파주 마장호수 출렁다리가 떠올랐다. 작년에 문학회 제자들과 함께 갔던 곳이다. 아들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온이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 온이를 만났다. 다른 때보다 더욱 반색하며 내게 안겼다. 베이비시트를 내 차에 장착하고 온이와 아들, 두 남자는 뒷좌석에 앉았다. 음료수와 물, 찰떡 세 개가 간식이다. 온이네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마장호수 출렁다리를 향해 출발. 여행 가니까 즐거워요, 매일 이렇게 우리랑 같이 살면 좋겠어요. 온이 목소리에 설렘과 애교가 잔뜩 들어가 듣기만 해도 행복해졌다. 두 남자는 끊임없이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고, 나는 조심조심 운전을 했다. 내 차는 언제나 손수 운전, 나의 원칙이다.
사십 분 정도 걸려서 마장호수 주차장에 도착했다. 작년에 제자들과 함께 다녀간 후 세 번째다. 역시 나들이는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기분과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좌청룡 우백호, 두 남자와 함께 하니 든든하고 새로웠다. 날씨 또한 포근해서 봄이 문턱까지 왔다는 걸 느꼈다. 호수는 잔잔했고, 물오리는 유유히 물속에서 헤엄쳤다. 온이는 재잘재잘, 아들은 수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호수 풍광과 온이를 렌즈에 담기 위해.
야자매트와 덱이 깔린 둘레길, 한참 걸으니 출렁다리 오르는 오솔길이 보였다. 출렁다리, 사실 난 고소공포증이 있어 약간 두려웠다. 전에도 간신히 건넜는데, 두 남자가 함께 있으니 의지하고 건너보기로 했다. 잠시, 지난번에 건너봤으니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두 남자와 건너는 것 또한 특별한 추억이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여전히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출렁다리 입구에 섰다.
아들과 내가 온이 손을 양쪽에서 잡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난간을 잡고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겼다. 풍광이 아름답고 멋진 건 뒷전이고 무섬증이 먼저 들었다. 출렁다리 중간쯤 이르렀을 때, 가슴이 떨리고 숨이 막힐 것 같아, 무서워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온이는 이게 뭐가 무서워요, 안 무서운데요, 하면서 히히 웃었다. 아들은 멀리 보라고, 아래를 보면 더 무서우니까 멀리 저 멀리 보란다. 출렁다리 중간엔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어 무섬증을 배가시켰다. 일곱 살짜리 손을 얼마나 꼭 쥐었는지, 온이는 손이 아프다고 했다.
무서워도 두 남자가 있으니 의지되었다. 아들과 손자, 얼마나 함함한 존재인가. 저들이 있기에 내 존재성이 빛나는 것 아닌가. 이제 다 왔어요, 이게 뭐가 무서워요, 온이는 무서워하는 나를 위로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알 수 없는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씩씩한 온이 모습을 확인하니 기특하기 한량없었다. 출렁다리 건너 보이는 먼 데 산과 호수는 늠름하고 멋있었다. 눈 쌓인 산은 백호 가죽 같은 무늬가 만들어졌고, 호숫가엔 갯버들이 피어났다.
다리를 건넌 후 의자에 앉아 간식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잠시 쉬었다. 다시 온이 손을 잡고 둘레길을 걷는데, 온이가 어느 순간부터 안아달라고 했다. 힘들다며 업어달라고도 했다. 아들은 두 말도 않고 업었다 안았다 반복하며 둘레길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일곱 살 온이에게 팔천 보가 되는 길을 걷는 게 결코 쉽진 않았으리라. 아들은 그런 중에도 사진을 찍어주고 말 상대도 해주었다. 자상한 아비 자질을 충분히 갖춘 듯해 미소가 지어졌다.
한 바퀴 걷고 나서 카페로 들어갔다. 온이 기분도 좋아졌다. 커피와 빵, 딸기주스까지 주문해 자리 잡고 앉았다. 호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는 전망이 좋았다. 무화과 깜빠뉴는 고소하고 달콤했다. 온이는 블루베리 크로와상 하나를 거의 혼자 먹고 주스도 다 마셨다. 배가 불러서 그런지 다시 또 조잘조잘. 온이가 말을 잘하는 건 아들을 닮은 듯하다. 아들도 어릴 적엔 그랬다. 두 남자가 그렇게 닮았다.
일어서고 싶지 않았다. 더 오래 그곳에 앉아서 호수를 보고 산을 감상하고 싶었다. 하지만 저녁이 되기 전에 돌아가야 한다. 아쉬움이 남아야 또 기회를 만들 테니까. 다음엔 또온이와 딸 사위까지 모두 함께 올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들 손자와 함께 건넌 마장호수 출렁다리, 두 남자에게 의지해 무섬증을 물리치며 건넜던 출렁다리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거다.
돌아가는 길, 차에 타고 잠시 후 온이는 잠들었다. 아들도 온이를 업어주고 안아주느라 그랬을까 피곤해 보였지만 행복한 표정이었다. 두 남자와 함께 건넌 마장호수 출렁다리, 무서웠지만 행복했다. 이제 곧 개강이므로, 두 남자와 함께 나들이할 기회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도 바쁜 일상을 살다가 가끔이라도 나들이할 기회를 만들어야 하리라. 삶의 윤기를 더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