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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숙 May 10. 2024

여행은 언제나 추억과 함께한다

여행 끝날


친구 미와 여행 다녀온 지 일주일이 넘었다. 아직도 무의도와 하나개해수욕장 등이 아른 거리고, 반월 저수지 덱 트레킹 코스와 궁평항에서 먹던 쫄깃한 회와 제부도 낙조가 불쑥 떠오르곤 한다. 함께했던 친구들도. 여행은 갈 때 설레던 마음과 여정, 끝난 후 일상에서 불연 듯 생각나는 추억 때문에 그 의미가 커지고 깊어지는 게 아닐까. 그건 한동안 아니 평생 가끔씩이라도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을 가졌다.  

    



인천대교를 건너 소무의도 탐방로와 하나개해수욕장을 걷고 을왕리해수욕장 앞에서 조개구이를 먹기로 계획한 건, 미 때문이었다. 한 번도 그곳에 가본 적 없다는. 그곳 풍광을 익히 알고 있는 나로선 미에게 경치를 선물해주고 싶었다. 안산에서 60km 좀 넘는 거리니까 멀거나 가깝지도 않은 곳이다. 미는 내가 운전 오래 할까 봐 염려되는지 가까운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내가 고집부렸다.


근처에 있는 친구, 전날 반월저수지 함께 걸었던 ‘정’이 함께 가기로 했다. 더구나 천안에서 일찍 고속버스 타고 올라온 ‘희’까지. 넷이 내 차에 올랐다. 소풍 가는 기분이었다. 엽렵한 정이 차 안에서 먹자며 금방 튀긴 꽈배기와 음료 준비해 소풍 기분을 더했다. 어릴 적 이야기, 일상 이야기를 비롯해 숱한 이야기들이 친구들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산재한 일이 뇌리에서 지워지는 느낌이었다. 친구들도 그런 듯 홀가분하고 시원하다고 했다.


안산 시내를 벗어나 아름다운 인천대교를 건넜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우리나라 다리 놓는 기술은 세계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모두 그 기술 이야기를 한 마디씩 한다. 이렇게 마음 맞는 친구들과 여행하는 것처럼 재밌는 게 또 있을까. 우리는 여행 코드가 맞는다며 자주 기회를 갖자고 했다. 그게 이루어지긴 쉽지 않을 텐데도. 어릴 적 소풍 갈 때 끝없이 재잘거리던 친구들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는 듯했다.


운전한 지 한 시간 좀 넘어 무의도 다리를 건넜고 소무의도에 들어갔다. 상황은 내가 예측했던 내로다. 주차하기 어려웠다. 바다누리길 탐방로를 걸으려고 온 관광객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걸 예측하여 더 일찍 떠나려 했지만 친구들이 모이는데 시간 걸려 부득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없이 하나개해수욕장으로 차를 몰았다. 점심 먹고 다시 오자는 내 말에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봤으면 되지, 꼭 탐방로를 걸어야 하느냐고. 아, 여행 코드가 맞는다는 말 취소다. 그 탐방로를 걸으면 산과 어우러진 바다, 산자락에서 내려다보는 바다 풍경을 모르니 하는 말이리라. 안타깝다.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은 보조 맞추는 게 관건이다. 여정, 음식, 휴식, 대화까지. 다른 건 다 잘 맞는데 그건 좀 아쉬웠다. 나는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 곳이라도 깊이 보고 느끼고 추억 쌓는 것에 의미를 둔다. 멀어지는 소무의도, 못내 아쉬움을 추억으로 달래야 했다. 삼 년 전, 혼자 소무의도에 왔던 추억으로. 그 겨울, 커다란 얼음조각이 떠다니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등산로를 발밤발밤 걸었는데.


하나개해수욕장에 도착해 바다 위 덱을 따라 걸었다. 모두 환호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광이라니 하면서. 소무의도 탐방로에서 산과 어우러진 바다를 봤다면. 다시 또 아쉬워지는 마음을 간신히 꾹꾹 눌렀다. 기회는 또 있을 테니까. 여행지에서는 그런 일이 잦다. 다 못 보면 다음으로 남기는 것도 재미다. 어찌 샅샅이 다 본단 말인가. 내가 사는 고장도 세밀하게 다 다니지 못하고 사는 게 삶인데.


하나개해수욕장 물이 빠지고 있었다. 아, 보드랍고 촉촉한 모래사장. 내가 신을 벗자 친구들도 모두 벗었다. 맨발 걷기. 하루 종일 맨발로 걷고 싶을 정도였다. 발에 닿는 모래 감촉과 발목까지 오는 바닷물에서 느끼는 시원함. 발 건강이 썩 좋지 않은 미는 이런 길이라면 얼마든지 걷겠다며 행복해했다. 만세 자세로 사진 찍는 친구들. 쉴 새 없이 셔터 누르는 나에게 환한 웃음을 보여준다. 얼마나 고운가. 쪽빛 하늘과 바다 닮은 저 웃음이. 친구들 삶이 앞으로 저렇듯 티 없길 기원했다.


여행의 맛은 먹는 맛이기도 하다. 근처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가서 조개구이를 먹기로 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자글자글 익어가는 조개를 후후 불어가며 먹었다. 이야기꽃, 행복해하는 친구들 모습. 나도 행복했다. 소무의도 탐방로 걷지 못한 아쉬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렇게 조개구이와 칼국수를 먹고 난 후, 소무의도로 다시 가자고 하자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사래 쳤다. 나 역시 웃기고 싶어 한 말이었고, 그럴 줄 알았다.


아직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엔 시간이 남았건만 천안까지 가야 하는 친구가 있어 자리에서 일어섰다. 친구 ‘정’을 내려주고, 안산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벌써 해가 넘어가 어스름이 내렸다. 친구 ‘희’를 태운 고속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미와 나는 숙소(?)로 향했다. 미가 말했다. 자기 집을 숙소로 쓰라고. 언제는 와서 묵으며 여행하라고. 그러겠노라 했지만 쉽지 않을 거다. 우리의 일상이라는 게 늘 빠듯한 시간에 시달리며 살지 않던가.      




미를 내려주고 내처 달려 집으로 돌아왔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하나개해수욕장 풍광이 눈으로 가득 들어왔다. 거기서 보던 낙조가 일품이었는데. 삼 년 전에 보았던 그 풍경도 겹쳐졌다. 여행은 이렇게 추억과 함께하는 것이리라. 앞으로 이어질 내 생의 여행들, 차곡차곡 쌓아지는 추억처럼 삶 또한 풍성해질 거다. 운전을 많이 했고 걷기도 했건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목과 어깨가 아픈 것도 잊었다.


눈을 떠보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 역시 고단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마음은 상쾌했다. 행복한 여행, 그 여행을 위해 마음의 건배하며 일상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날이 날 환영하며 기다리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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