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이가 상을 받았다. 자식 자랑을 팔불출이나 하는 짓인데 손자자랑이니 팔불출은 아닌가. 아니다. 손자 자랑은 돈 내고 해야 하는데 대면으로 하지 않고 글로 하니 상관없을까. 상관없다. 허허, 이렇게 북 치고 장구 치고 마음대로 하는 나다. 나이 드는 게 이래서 좋은 건가 싶다. 흉볼 테면 보고 말 테면 말라지, 씩 웃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상을 받는 건 언제나 기분 좋다. 객관적으로 대외적으로 사회적으로 알아준다는 의미니까. 잘했다고 칭찬하는 일 아닌가. 진부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래가 춤을 추든 황소가 춤을 추든 나비가 춤을 추든 아무 상관없고, 상 받는 당사자의 기분이 문제인데, 상 받아서 기분 나쁘거나 속상한 일은 없다. 민망한 일은 있을지라도.
민망한 일이라는 건 상 받을 만하지 않은데 받게 되었을 때다. 객관적으로 대외적으로 사회적으로 인정하더라도 본인은 납득할 수 없을 때다. 그런 일이 아주 없진 않다. 예전에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어머니가 갑자기 우리 집으로 오셨다. 할머니를 혼자 두고 어떻게 오셨느냐고 해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궁금해서 자꾸 물었더니 기가 막힌 일이 있다는 거였다. 뭐, 그렇게 기막힌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군에서 수여하는 ‘효부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집으로 피신해 온 것이었다. 웃음이 터져서 나는 깔깔 웃었다. “민망하지 뭐니? 내가 무슨 효부라고 그런 상을 줘. 난 절대 못 받는다고 했는데, 자꾸 군청으로 오라고 하니 안 가면 데리러 올지도 몰라 피했어.” 그렇다. 어머니의 주관적인 판단은 그랬다. “잘하셨어요. 그런데 작은엄마나 마을 아주머니 중에 누가 대리로 수상하게 될 걸요. 괜히 남을 더 번거롭게 하신 거예요. 그냥 받으시지, 받고 나서 할머니께 더 잘하면 되잖아요.”라고 했다.
내 의견은 그랬다. 어머니는 남을 불편하게 만들 거라는 말에 본인의 불편한 마음을 호소했다. 어머니를 이해했다. 40년 가까이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늘 좋기만 했겠는가. 야속하고 불편하여 속으로 투덜거린 날이 없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어머니는 민망해서 효부상을 절대로 받을 수 없었던 것이리라.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수상자와 수여자가 모종의 묵계에 의해 받는 상도 있다. 그런 류의 상이 의외로 있는 듯하다. 언젠가 문학상 심사를 하게 되었을 때 주관하는 쪽으로부터 은밀한 압박을 받은 적 솔직히 있었다. 그때 나를 포함한 모든 심사위원들이 결사적으로 거부해 공정하게 수상자를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아주 잘한 일이었고 그 후 그 문학상 심사를 나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작년 연말에 나도 상을 받았다. 남편은 내가 상을 받아올 적마다 우스갯소릴 했다. “그게 뭐 대수야, 나는 늘 상 받는 걸. 하루에 세 번씩 밥상.” 하면서 낄낄 웃었다. 잘했다고 하면 되는데 꼭 그렇게 표현하는 남편에게 눈을 하얗게 흘기곤 했다. 그날도 상을 받으며 왜 나는 남편의 그 모습이 떠올랐던 걸까. 시의 일을 많이 했다고 준 것인데 그런대로 수용이 되었다. 지금은 상을 받아도 부상이나 금일봉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더 수용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큰 부담감은 없었고 민망함도 없었다.
온이도 그럴까. 궁금해서 전화했다. “온아, 상 받았다며? 축하해.” “네!” 온이의 대답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시원하다. 아주 당연해하는 듯도 하고. “네가 정말 그렇게 잘했어?” “네!”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이렇게 상을 당당하게 수용하는 사람, 일찍이 나는 본 적이 없다. 별 것 아니에요, 받을 사람들이 많은데 어떻게 제가 받게 되었네요, 등 인사치레로라도 몇 마디 덧붙이는 게 보통이다. 겸사(謙辭)로라도. 나도 물론 연말에 시에서 상을 준다고 할 때, 속으론 수용하면서도 겉으론 저에게 무슨 상을 주신다고 하나요? 별로 한 것도 없는데요, 하며 겸사를 늘어놓았다.
이쯤에서 온이가 무슨 상을 받았는지 공개하리라. “딱지왕상”이다. 이 나이 먹도록 다양한 상 종류를 보아왔지만 세상천지에 생전 처음 보는 상 이름이다. 딱지왕상이라고 들어들 보았을까.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왜 이 상을 주는지 읽어보곤 배꼽을 잡고 뒹굴다시피 웃었다. 인용하면 이러하다. “위 어린이는 어떤 딱지든지 넘겨버리는 대단한 기술로 친구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기에 이 상장을 주어 칭찬합니다.” 히야, 이렇게 유쾌하고 기발한 상장 문구를 보았는가. ‘어떤 딱지든 넘겨버리는 대단한 기술’이라, 나는 이게 ‘어떤 난관이라도 넘겨버리는 대단한 지혜’라고 읽힌다. 그래, 우리 온이가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그냥 후딱후딱 넘기면서 지혜롭게 살아가리라 믿고 싶다.
“온아, 나도 상 탔어.” 온이가 묻는다, 무슨 상이냐고. 일 많이 해서 받은 상이라고 했더니 잘했다며 웃었다. 우리는 서로 잘했다고 칭찬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부끄럽거나 민망하지 않은 상이면 잘한 게 맞다. 올해는 뭘 잘해서 상을 받나, 글 잘 썼다고 받는 상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온이처럼 대단한 기술로 어떤 딱지든 넘겨버리듯, 세상을 넘겨버리는 멋진 글을 써야 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