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분양

by 최명숙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텃밭 신청 기간을. 구청 홈페이지 들어가 보고 깜짝 놀라 얼른 신청했다. 허탕 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신청을 해야 당첨도 기다릴 수 있다는 무척 당연한 생각을 하면서. 로또복권도 누가 당첨될 거라고 믿고 사나, 되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 아닌가. 텃밭도 그런 심정으로 신청했다. 지금까지 4년째 했으나 당첨되지 못했다. 아쉬웠지만 그대로 또 괜찮았다. 이번에도 되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신청만은 꼭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기간을 놓칠 뻔해 놀랐을 뿐이다.


구청에서 해마다 텃밭을 분양하는데 신청자가 많고 텃밭은 턱 없이 적다. 그러니 당첨 또한 어렵다. 텃밭은 내가 운동 다니는 개울가 산책로에 있어, 지나다닐 적마다 당첨되지 않은 게 아쉬웠다. 아쉬움을 달래다 보면 다시 새해가 되었고 해마다 신청했으나 당첨은 되지 않았다.


몇 년 전에는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농사 지어본 적이 있다. 만만치 않았다. 수시로 찾아가 모종 심고 물 주고 벌레를 잡아주었다. 도저히 시간이 안 돼 새벽에 눈 뜨자마자 가서 밭을 살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도저히 못하겠어서 다음 해에는 분양받지 않았다. 텃밭을 하지 않으니 시원했다. 풀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고, 비가 와도 걱정이 없었다.


다시는 텃밭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생각이 바뀌었다. 첫아이 낳을 때 하도 고통스러워 둘째 낳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얼마쯤 지나자 그 고통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둘째 낳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텃밭을 다시 해보고 싶었다. 아삭아삭하고 싱싱한 상추와 쑥갓 방울토마토 풋고추 가지 등을 아쉽지 않게 먹었던 걸 생각하면, 더욱 텃밭 생각이 났다. 그러던 차에 구청에서 분양하는 텃밭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4년 동안 내리 신청했으나 당첨되지 않았다.


어제 휴대전화에 문자가 들어왔다. 텃밭 분양 신청에 당첨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야호! 환호성을 질렀다. 딸에게, 아들에게, 친한 지인에게 전화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텃밭 신청한 게 당첨되었다고, 상추 많이 심을 테니 따다 먹으라고. 아직 모종도 심지 않았는데 벌써 따다 먹으라고 하니 우스운 일이다. 상추, 방울토마토, 쑥갓, 고추, 가지는 당연하고 오이와 호박도 심어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느새 가슴이 부풀었다. 세 평짜리에 불과한 텃밭이니 그렇게 많이 이것저것 심을 수 있을지 그건 모르겠지만.


저녁에 들어온 아들에게 다시 또 말했다. “우리 텃밭 당첨됐다! 채소 많이 심고 수확하자.” 들뜬 내 말에 아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엄마가 원하던 거니까 잘되었지만 제게는 기대하지 마세요.” 상추 따러 가자느니, 풀 뽑으러 가자느니 그런 거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알았어! 대신 먹긴 할 거지?” 아들은 싱긋 웃었다. 그럼 되었다. 더욱이 늘 운동 다니는 산책로에 텃밭이 있으니 더 마땅하지 뭔가.


내가 텃밭 농사에 관심을 갖는 건 농촌에서 자라 농작물 키우는 데 익숙해서다. 그렇다고 농사를 잘 지을지 그건 알 수 없다. 얼마나 성심성의껏 보살피느냐에 달린 일이므로,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만 안다. 그래도 직접 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재미 또한 알기 때문에 농사에 관심이 있다. 한편으론 욕심 아닌가 싶다가도 크지 않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전에 주말 농장 운영할 때 마련한 호미와 웬만한 농기구가 있다. 잘 싸서 두었으니 이제 꺼내 살펴보아야겠다. 옛날 우리 고향에선 설날부터 대보름까지 마음껏 놀고 대보름만 지나면 농기구를 꺼내 수리하고 씻었다. 본격적으로 농사 준비를 했다. 보름이 지나도 노는 사람이 있으면 흉보았다. 그때 어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설레고 즐거웠을 것 같다. 힘이 들기도 했겠지만 가을에 추수할 걸 생각하면 그랬을 것 같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추수할 게 없다는 건 진리다.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젊었을 때 성실히 삶의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 말년에 거둘 게 없다. 저절로 대가 없이 얻어지는 건 없으므로. 있다 하더라도 그건 지극히 제한적이다. 이번 텃밭 농사에서 자연이 알려주는 진리를 더 많이 배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신선한 채소처럼 신선한 글감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주위에선 한 마디씩 보탠다. “바쁜 데 사 먹는 게 편하지, 왜 그걸 하려고.” 하지만 긍정적인 말도 한다. “어머! 잘 됐어요. 축하해요.” 다 좋다. 그렇기도 하고 이렇기도 할 것이다. 내가 원했던 것이므로 더없이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올 농사를 시작할 생각이다. 한 가지 일이 더 늘었다. 그래도 마음은 부푼다.

매거진의 이전글상(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