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하게 말하면 남자사람친구들, 동창생들이다. 남자인데 친구면 남자친구가 맞는데, 언젠가부터 남자친구라고 하면 연인관계에 있는 이성을 말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아직도 내게는 남자사람친구라는 일명 ‘남사친’은 어색하다. 연인관계에 있는 이성은 ‘애인’이 아닌가. 애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한자의 뜻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처럼 적절한 단어를 두고 요즘엔 여자친구 또는 남자친구로 쓰인다. 애인은 고루한 단어일까. 어쨌든 내가 말하는 남자친구는, 그냥 아무런 사심이 없는 동성친구와 다름없는 이성친구다.
봄비가 내리는 대체 공휴일에 남자친구 둘과 만났다. 남한산성 산행을 하기로 했다. 비가 올 줄 모르고 한 계획이지만 산행에 모두 찬성했다. 비가 사부작사부작 내리는데, 우리는 침괘정 옆으로 해서 한경직 기념관을 지나 국청사 쪽으로 향했다. 오르막이 꽤 가팔랐으나 아직 걷는 데 문제 있는 친구는 없었다. 산바람은 빗줄기를 뚫고 불어 온몸을 휩싸고 진한 나무 냄새는 산 기운과 함께 끼쳐왔다.
우리 셋은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에 같이 다녔다. 산 밑에 있는 작은 학교로 한 학년이 두 개 반밖에 되지 않았다. 자연히 전교생을 대략이라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작은 학교였다. K와 H, 이 두 친구는 나와 같은 반일 때도 있었고 아닐 적도 있었다. 같은 반이 아니어도 한 학년이 120명 안팎이었으니 모를 리 없다. H는 키가 작고 귀여워 내가 장난으로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던 친구다. K는 입학 성적 1위로 우리 학교에 들어온 친구이고.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 귀여웠던 H는 반에서 3번이었다. 키순으로 번호를 매겼는데, 그만큼 작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참 비인격적인 방법 아닌가 싶다. 그때는 그런 저런 의식이 없었으므로 어느 누구도 왜 키순으로 번호를 부여하느냐고 건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도 그다지 크지 않아 13번이었다. 한 반에 남자 35명 여자 25명이 정도로 여자가 적었다. 걸으면서 우리는 키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두 친구의 키가 비슷했다.
H가 산자락을 휘돌아 올라가며 말했다. “학교 다닐 때 내 자전거에 가방 실어준 거 생각나?”라고. 생각난다.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내가 웃자 H는 그 이유를 알겠다는 듯 같이 웃었다. 산자락이 흔들릴 것처럼 크게. K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싱그레 웃었다. 나는 H가 웃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게다. 자전거 페달에 발이 잘 닿지 않아 안간힘을 썼던 그날의 기억 말이다.
K와 나는 서로 성적을 두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었는데, 정작 우리는 경쟁심을 느끼지 않았다. 말이 별로 없는 친구여서 서로 대화를 나눈 적 없어 특별한 추억도 없다. 입학식 날 입학생 대표로 단상 앞에서 선서하던 모습만 생각난다. 조용하고 착하고 성실하며 지극히 모범생이었던 K는 칠 남매 중 막내였단다. 집안이 가난해서 위로는 아무도 중등교육을 받은 적 없고, 유일하게 혼자만 중고등학교에 다녔다고.
K는 고등학교 마치고 공무원이 되었으며 군대 다녀온 후 야간대학에 입학해 졸업했단다. 그 후 40여 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는데 그의 반듯하고 모범생적인 풍모는 그래서 더 굳어진 듯했다. 지금은 퇴직했지만 틈틈이 따놓은 자격증과 학위로 재취업해 여전히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들으며 시골 그 작은 학교에서 만나 이렇게 이어지고 있는 인연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K가 공부한 서사는 서로 유사해서 동질감을 느꼈다.
가정환경이 비교적 유복해 유치원까지 다녔다는 H는 고등학교 마치고 공부하기 싫어 대학도 다니다 말았다고 해서 K와 나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집안에 출세한 사람들이 많아 취업을 쉽게 하고 사업도 쉽게 시작해 부를 축적한 H는 그 나름대로 타고난 복이 있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부러워하거나 시샘하지 않았고 같이 즐거워했다. 사람마다 타고난 분복이 다르고 노력 여하에 따라 또 결과가 다를 수 있으니까.
수어장대에 올라 비 오는 경치를 감상하고 내려올 때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있는 관심사는 건강과 사는 재미다. 이제 자주 만나 이렇게 운동하고 맛있는 거 먹자며 우의를 다졌다. 빗줄기는 약해지고 다리가 조금 뻐근할 무렵 우리는 산 아래 식당 근처에 다다랐다. 누룽지 오리백숙을 시켰고, 막걸리도 한 병 땄으며,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선생님들 이야기, 친구들과 있었던 일화 등.
어릴 적 친구이기 때문에 대화하다 보면 그 시절로 돌아간다. 직책을 부르다 어느새 이름을 부르고, 격의 없는 수다가 늘어졌다. 괜찮았다, 다 괜찮았다. 이렇게 마음이 풀어지는 날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창밖엔 여전히 봄비가 내리고 마음은 푸르던 청소년 시절로 돌아갔다. 얼굴에 늘어가는 주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그 옛날의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열대여섯 살짜리 소년소녀가 되어서.
그날은 나의 남자친구들에게서 순수한 소년의 모습을 보며 행복에 잠긴 날이었다. 봄이 무르익는 5월 첫 주 토요일에 우리는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때는 더 많은 친구들을 부르기로 했다. 그날이 벌써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