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지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주 긴박감 넘치거나 대단하게 고민스러운 일은 아닐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 또 인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니까. 별 것도 아닌 걸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하는 게 글쟁이들의 수법이므로 웬만하면 넘어가지 마시길. 속으론 내 작전에 속아 넘어가는 독자들이 있기를 바라면서도 이렇게 너스렐 떤다. 나도 잘 모르겠다. 몇십 년 글이랍시고 쓰다 보니 이게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의뭉스러워진 건지. 아무튼 나는 지금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다.
사실 인생을 살다 보면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는 경우 잦지 않은가. 이번에는 지금까지 한 고민 중에 가장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럴까 저럴까. 이렇게 하자니 이런 문제가 생기겠고, 저렇게 하자니 저런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그렇다고 이 나이에 문제를 풀면서 살 순 없지 않은가. 무조건 단순하고 간단한 게 제일이다. 머리 굴리는 건 절대 사절이다. 드라마나 영화도 심각하게 복잡한 시간여행을 중심으로 한 건 안 본다. 머리 굴리는 게 싫어서다.
지금까지 숱하게 진퇴양난의 기로에 처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이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머리 굴리는 게 싫지만 이번엔 그렇게 단순하거나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것만큼 난해한 문제이고, 이거 아니면 저거겠지 하는 단순한 일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은가. 아무리 머리 굴리는 게 싫다고 해도 안 굴릴 수 없다. 왜, 어쩌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되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걸까.
올해 들어 유난히 거울 보기 싫어졌다. 거울에 비치는 주름 늘어가는 눈가에서 서글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걸 굳이 느낄 필요가 있을까 싶어 웬만하면 거울을 안 보려고 노력했다. 화장품을 바를 때도 지금까지 수십 년 해온 일이니 굳이 거울이 필요 없다. 심지어 립스틱도 감으로 바른다. 입술라인에서 조금도 엇나가지 않게 정교하게. 비교적 이것저것 바르지 않기 때문에 기초화장은 더더욱 거울 보고 할 필요가 없으며 쿠션도 감으로 바를 수 있다. 그러니 거울 보기 싫어졌다고 해도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그러다 며칠 전에 무심코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았다. 엇! 이상한 일이다. 눈가의 주름살 몇 개가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맞다, 다섯 줄이나 선명하게 보였던 주름살이 흐릿한 두세 줄이다.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심청아, 어디 보자! 심청이를 만난 심학규의 감정이 그대로 이입되는 순간이다. 다시 봐도 두세 줄. 그것도 아주 흐릿한. 신기해서 거울을 보고 또 보고 또다시 본다. 팔자주름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꿈을 꾸는 걸까. 꼬집어보았으나 현실이다.
원인을 알 수 없다. 보톡스를 맞은 일 없고, 주름 개선 크림을 바른 적도 없다. 얼굴에 바르는 건 수십 년 동안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기본적인 것만 바른다. 그 흔한 마스크 팩도 딸 결혼할 때 두어 번 외엔 거의 사용하지 않았는데. 그 많던 주름들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언제부터 그런 일이 생겼는지 알 수 없다. 거울을 잘 안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내가 아니다. 무엇이든 밝혀내는 게 내 특기 아니던가. 누구는 이름 자에 밝을 명, 밝힐 명(明)이 들어서 그런 거라고 하는데,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의심 나는 거라면 꼭 밝히고 싶어 안달 나는 내가 아닌가. 이것도 밝혀내야 한다. 사람은 자고로 이름값을 하면서 살아야 하니까. 우리 아버지가 아픈 중에도 꼭 넣어서 짓고 싶은 자가 명(明) 자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런 성품을 가진 아이라는 걸 아셨던 걸까. 아니면 이름에 그 자가 들어서 이렇게 뭐든 밝히려고 하는 걸까. 전에 어느 글에도 말했지만 나는 형사나 추리소설가가 되었어야 맞는다.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한동안 재지 않던 몸무게를 쟀다. 으아아아악! 정확히 2킬로 500그램이 늘었다. 거참! 이상한 일이다. 특별히 더 먹은 게 없고 옷을 적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몸무게가 늘었다는 게 놀라웠다. 몸무게가 갑자기 늘면 병원에 가봐야 한다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이럴 수 있단 말인가. 걸리는 게 아주 없진 않다. 설날에 딸네 집 가서 떡국과 잡채, 전, 갈비 등을 실컷 먹었다. 그게 언제인데 아직 남아 몸무게를 늘렸단 말인가.
결국 내 얼굴의 주름은 몸무게가 늘면서 사라졌다는 말이다. 그러니 문제다. 주름을 없애는 데는 살이 쪄야 하고, 살이 찌는 건 죽기보다 싫으니. 여기서 더 살이 불어난다면 아마도 굴러다녀야 할 거다. 아,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기로에 내가 서 있다. 현실감이 이렇게도 없다니. 어째서 몸무게가 이렇게 늘어나도록 느끼지 못한 걸까. 또 먹는 거나 운동 정도나 전과 다른 게 없는데 몸무게는 왜 이렇게 불어났는지 불가사의하다.
그래도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볼 때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섯 줄 주름이 어디 가고 두세 개밖에 안 보이니 말이다. 깊이 파여 가던 팔자주름도 통통하게 붙은 살 덕분에 잘 보이지 않는다. 최고의 성형은 다이어트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최고의 주름개선은 살찌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살찔 때가 있으면 빠질 때도 있을 테니 그냥 내버려 둬야 할까, 조심해야 할까, 그것도 고민이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으니.
거기 누구 없소? 이 문제의 답을 아는 사람! 우스운 일이다. 작가는 발가벗겨져야 한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아무리 늙었더라도 스스로 여성이길 포기한 걸까. 주름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결국엔 몸무게 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으니. 오늘, 나는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