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빌딩 건축
4. 경매의 전설
2013년 5월 16일 목요일 정말 맑고 푸르른 날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울란바토르 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울란바토르 낙찰물건에 대해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려면 ‘최고가매수신고인증명신청’이 필요할 것 같아 경매계를 찾았다.
마이클이 경매계장에게 “최고가 매수신고인입니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자, ‘대금납부 청구서’를 출력해 주었다. 이 서류로 세무서에서 임대사업자 등록을 했다.
2013년 5월 28일 화요일 비
비는 아침부터 뿌렸다.
현관에 있는 3단 우산을 챙겨 지하철에 올랐다.
‘해남빌딩’
얼마 전 울란바토르 지방법원 부동산 경매사건에서 낙찰받은 주택에 대한 낙찰 잔금을 진행하는 법무사 사무실을 가는 길이다. 5층으로 올라갔더니 문이 열려 있지 않았다.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화장실 변기에 엉덩이를 걸쳤다.
화장실 문짝이며 타일, 벽체 등 보이는 것들이 매우 역사가 있는 유럽의 오래된 호텔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1층으로 내려가 경비원에게 물었더니 “오래되었어요.”라고 대답했다. 마이클이 “그래 보입니다. 그러면 이 건물은 회사 소유입니까? 개인 소유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개인 소유입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이클이 “허, 대단하네요.”라고 감탄했는데, 빌딩은 마이클보다 나이를 더 먹었다. 전차가 지나는 시절에 지은 건물로 주춧돌엔 “1962년 준공”이라고 쓰여 있었다.
법무사 사무실은 5평 정도 되는 공간에 책상만 해도 족히 10개는 되었다.
빈티지스럽지만 내공 또한 있어 보이는 사무공간을 둘러보는데 안성 아파트 19세대 낙찰 잔금을 대출받을 때 일을 한 직원이 “아, 사장님 오셨어요?”라고 아는 체를 했다.
‘그래, 내가 한때는 경매의 전설이었지.’
스스로 만족해하며 준비해간 수표를 내밀었다.
그러자 직원이 “사장님이 준비한 금액은 여기에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법원으로 가서 내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마이클이 “그래? 그러면 여기 올 필요가 없었네?”라고 말했는데, 매각대금을 납부할 법무사 직원은 법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울란바토르 법원으로 향했다. 수표를 건네며 “매각대금 완납증명서 받아오세요?”라고 말했더니 잠시 후 사본을 가지고 돌아왔다.
“위 사건에 관하여 매수인은 2013. 5. 28. 별지 부동산에 대한 매각대금 765,000,000원 전액을 납부한 사실을 증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는데, 소유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니 파티를 해야 할 것은 당연지사였다. 술을 마시기 위해 들어간 첫 식당은 크레타 역 근처에 위치한 ‘새마을 식당’이었다.
김치찌개를 시켰더니 고기는 거의 없었다. 그저 ‘밥 말아 먹고 가라’는 메뉴였다. 빈정상한 마이클이 ‘내가 누군가? 백만장자 아닌가?’라며 8천5백 원을 결제하고, 횟집으로 가 “이모, 산 오징어 데쳐주세요.”라고 주문했는데, 절대 돌아보지 않을 기세였다.
‘곱상한 외모 믿고 부심 부리는 여자의 싸가지란.....!’
접시를 들어다 놨다.
옆 테이블에는 음악을 하는 밴드 팀으로 보이는 사내들이 자리했다. 마이클도 드러머인지라 대화에 끼어들었다. 드럼과 기타를 치는 멤버는 뇌가 부드러운 듯했는데, 건반을 하는 사람은 아직 배가 덜 고픈 것이 확실했다.
이들은 합주 공간조차 빌릴 수 없는 가난을 탓했기에, 좀 더 긍정적이고 부드러웠으면 피렌체빌딩 지하실을 연습공간으로 제공하려고 했으나 행운을 발로 찬 것이었다. 아니, 행운을 발로 찬 것은 그들이 아닌 그들에게 있는 부정적 마인드였다. 그러니 지금까지 세상만 욕하는 처지가 된 것이었다.
횟집을 나와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1시간 동안 노래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를 꽥꽥 질러댔다.
‘야! 이것들아, 앞으로 친절한 마이클은 없드아아아----’
2013년 6월 4일 화요일 맑음
울란바토르로 향했다.
복개된 하천을 도로로 변경하려면 마이클이 돈을 내서 지적도용 도면을 그려야 했기에 측량을 맡겼다. 측량비용은 2백5십만 원이었다. 측량현장에 입회한 후 좁은 골목길을 후진으로 빠져나오다 그만 랭글러 루비콘 앞범퍼를 담벼락에 문지르는 슬픈 일이 일어났다. 좁은 골목길과 불법 주차 차량을 향한 분노가 폭발했다.
‘아이- 울란바토르같은......’
건축하기도 전에 기분이 나빠지면 안 되는데 걱정이었다.
마침 옆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를 하고 있기에 찾아가 소유주로 보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신축 안 된다고 해서 리모델링을 하는 거죠?”
“네. 그래서 ......”
마이클의 예상이 맞았다.
건축과 공무원의 무지로 소유자는 다 썩은 건물을 “사무실로 쓰려고 고칩니다.”라며 공사를 하고 있었다. 마이클이 “구청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 하세요?”라고 훈수를 뒀다.
2013년 7월 8일 월요일 간헐적 폭우
마이클이 낙찰받은 울란바토르의 주택, 그러니까 전 소유자 필립이 부동산경매로 매각한 주택의 배당기일이다. 3년 전 마이클이 낙찰받게 해 주었으나 수익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다시 경매로 되팔게 되었다.
마이클이 다시 낙찰받은 것은 필립 소유의 물건이 탐이 나서,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눈으로 본 부동산의 가치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전업 투자로서의 자존심이랄까. 또한, 필립과의 투자 여행을 끝내는 마지막 의식이기도 했다. 필립도 경매투자가 아닌 ‘전당포’업을 준비 중이었다.
배당은 느리게 진행되었다.
배당 후 함께 피렌체로 향했다. 가는 내내 폭우가 내렸음에도 랭글러 루비콘은 이름에 걸맞게 달려주었다. 슬픈 배당기일 파티는 삼겹살 식당이었다.
필립은 이번 투자에 대해 ‘실패’라는 단어를 많이 쓰며 결과가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마이클에게 돌리는 듯했다. 그러나 마이클은 지나온 과정에 대해 반성과 복기를 하지 않는 태도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연의 끝자락이었고, 각자 다른 길을 갈 것이었기에 ‘그래, 이제 너와는 엮일 일 없다‘라는 생각으로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이번 사건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