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슴 뛰는 일에 돈을 쓰자

#동업건축 실패기

by 김경만

4. 가슴 뛰는 일에 돈을 쓰자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맑음

올해의 생일은 ‘피렌체’에서 맞이하기로 했다.

여행사 사이트에 접속했다. 피렌체는 이탈리아의 한 도시에 불과하므로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유럽 여행 코스 중 1일 정도 배정된 상품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미 22일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기에 두 번이나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자유여행에 도전해 볼까 하며 비행기 표와 피렌체의 호텔을 검색하다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주거하는 공간에 비해 훨씬 후진 호텔들이었고 후기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한껏 기분 내 피렌체까지 날아갔는데, 싸구려 모텔 수준이라면 그것만큼 짜증 나는 일도 없다. 게다가 그곳이 가난하고 게으른 국민이 사는 이탈리아라면 더욱더! 그런 이유로 ‘하나투어’ 스페인 전국 일주 패키지 상품을 선택했다. 여행사 직원이 “싱글 차지 40만 원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총금액은 284만 원 중 계약금 20만 원을 송금했다. 그렇게 스페인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출발은 생일 하루 전인 17일이었다.


늦은 저녁을 초밥집 ‘에비’에서 먹었다. 옆에는 빌라건축 동업자 도진이 자리했는데, 투자수익금 4천만 원을 회수했기에 즐거운 마음에 찾아왔다. 이번에 회수한 4천만 원, 일전에 받은 1억 원은 도진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종잣돈이었다.


“형님 만나서 모든 게 잘 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형님!”

“그래, 지금까지는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또박또박 수익 내며 걸어가자.”


도진에게 한 말이었으나, 나 자신에게도 한 말이었다. 누구도 믿지 말고, 누구도 의지하지 말고 작은 산들을 넘어 엘도라도로 가겠다는 다짐이었다. 식사 후 내가 신용카드를 꺼내자 도진이 “저보고 비싼 것 사라구요? 알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잠시 후 흰색 벤츠 C200 까브리올레가 인천 피렌체하우스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2017년 5월 1일 월요일, 맑음


인천 피렌체하우스 건축 현장에서 사용한 사무실용 컨테이너는 현장소장 준열과 함께 새로 시작할 사업지인 용인으로 이동했다. 얼마 후, 도진이 현장에 안착한 사진 몇 장을 보내며 “전선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높이 뜰 수가 없어요.”라는 내용의 문자도 첨부했다. 이에 내가 전화를 걸어 “전기선이 토지 앞쪽으로 있어?”라고 묻자 “통신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거기가 토지 끝인데 무슨 통신선이 지나가지?”라고 물었더니 “엽기죠, 학교로 가는 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민원 넣어 땅으로 넣던지 앞쪽에서 가라고 하면 되겠네, 피렌체도 그렇게 해서 전봇대를 옮겼어?”라고 말하자 “그래요? 한번 알아봐야죠. 그리고 형님. 옆 토지 1백 평 주인이 있는데 군인이래요. 내일모레 만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직도 토지 매입이 문제였다.


설계사무소 ‘트러스트’ 임 소장의 말대로 1천4백 평을 사서 짓겠다는 계획은 토지주들이 토지를 팔지 않아 진척되지 못했다. 그렇다고 매수한 토지를 가지고 못 짓는 것도 아니기에 “나는 임 소장이 토지를 더 매입하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뒤 임야도 작업이 물 건너갔기에 6m 도로를 낼 필요도 없거든? 그러니 대충 땅을 두 개로 쪼개 두 동씩 짓거나 아니면 Y자로 세 가구씩 12가구 3동 해도 될 거 같은데? 엘리베이터도 절약되고 말이야.”라고 말했다. 이에, 도진이 “형님이 분양하고 계신 거기 인천이 세 대면적이 18평 정도 된데요? 전 소장이 실측해 본다고 했으니 그 정도 되면 지금 토지에 네 동, 구겨 넣으라고 해야죠?”라고 말했다.


이에 내가 “실 평수 18평이면 24평 아파트야. 1억5천에 팔면 되는 거고. 자꾸 그러면 다른 데서 설계 뜬다고 해! 설계사가 자기만 있는 거 아니잖아. 네 면 봐서 명분 살려 줬는데, 자꾸 자기 마음대로 핸들링하려고 하면 곤란해져.”라고 말했다. 도진이 “그러게요. 빈말인지 모르겠는데 자기가 땅을 되사줄 수도 있데요? 근데 돈은 없는 거 같아요. 아우디도 10년 넘은 차에요.”라고 말했다. 이에, 내가 “하하하, 누가 판 데? 생각도 야무지네? 그냥 단독주택 지어도 될 정도로 싸게 샀는데 왜 팔아? 오버하지 말고 그림이나 그리라고 해. 딱 지금이 임 소장 수준이야. 너도 임 소장을 너무 크게 봤어. 그냥 그저 그런 설계사야. 알어?”라고 말꼬리를 올렸다. 도진이 “네. 그런 거 같아요. 그냥 보험 정도 생각하고 가야죠!”라고 대답했다.


세상은 이런 깜냥들이 설레발치며 훼!훼! 거린다.



2017년 5월 8일 월요일, 맑음


용인 빌라 신축을 위해 설계사 임 소장을 만나기로 약속했다.

시간을 특정하지 않았기에 도진이 전화를 걸어와 “언제 넘어 오실랍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공사비로 지출된 세금 및 공과금 영수증 등을 스캔하여 PDF로 만드느라 정신없는 상황을 설명하자 “그럼 혼자 계약할까요?”라고 물어 승낙했다. 그러나 임 소장은 “허가 나오고 계약해도 됩니다.”라며 계약하지는 않았다.


2017년 5월 9일 화요일, 오전 맑고 오후 늦게 비


도진이 반사유리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라마다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처가 식구들과 밥을 먹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대화의 주제는 용인에 매입한 토지 뒤 110평을 사는 것이었다. 도진이 “양도세가 많이 나온답니다. 평당 70만 원에 팔 테니 2천만 원을 현금으로 달랍니다.”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내가 “2천만 원을 다운해 달라고? 우리에게 뭐가 이득이지?”라고 되물었다. 도진이 “10만 원 싸게 사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이에, “2천만 원이면 세금까지 생각하면 4천만 원을 벌어야 하는 돈이야. 그 돈을 어떻게 메꿀 거야?”라고 묻자 도진은 말이 없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땅값이 7천7백이니까 7천에 해 주면 그렇게 한다고 하고 아니면 그냥 정상대로 거래하자고 해.”

“정상적으로 한다고 하면 평당 80만 원인데요?”

“알아. 돈 천만 원에 가오 접히고 싶지 않다!”

“하긴 그래요. 임 소장에게 책 잡히는 거죠.”


도진도 내 의견에 동조하며 그렇게 하기로 했다. 잠시 후, 호박마차에 올라 라마다 호텔을 빠져나왔다. 앞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쳤다.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맑았으나 자정에 비


돈을 쫓았었다.

가진 돈을 거의 잃을 뻔했다. 살아온 뚝심과 내공이 없었다면 지켜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투자 원금의 대부분을 지켜내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리고 한 문장을 얻었다.

‘가슴 뛰는 곳에 돈을 쓰자!’


도진은 신갈농협으로부터 ‘용인 토지에 지상권 설정해야 한다’라는 연락받고, 공동 매수자인 나에게 “신분증과 인감증명, 그리고 도장을 가져오셔야 합니다.”라고 알려왔다.


때문에,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는 “부으으으윽--” 굉음을 내며 신갈농협을 향해 질주했고 오후 4시 무렵 도착했다. 잠시 후 근처 커피숍에서 노트북을 펴고 일기를 쓰던 도진이 농협 안으로 들어왔다.

서류작성을 마치고 용인 구청 주차장에 주차한 후 설계사무소 ‘트러스트’를 방문했다.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여직원이 구면인 탓인지 반갑게 인사하며 “커피는 두 개를 타신다고 했죠?”라고 확인 후 커피를 내왔다. 이때, 임 소장이 완성된 피렌체하우스 도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허가는 보름 정도 걸릴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지하 주차장 및 박공지붕 형태의 도면은 유럽풍의 고급 리조트 분위기였다. 그래서 ‘멋지게 지어 보겠다’라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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