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누가 토지의 주인인가?

#디벨로퍼 라이프

by 김경만

9. 누가 토지의 주인인가?


2016년 1월 11일 월요일, 맑음


잠실 피렌체빌딩에 도착했을 때는 7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커핀그루나루로 향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식사하러 가시죠? 뭐 드실래요?”


기다리던 충식과 악수하며 물었다. 충식이 “온정 가죠?”라고 쉽게 대답했다. 그렇게 식당에서 밥상이 차려지기를 기다리던 중 충식이 말했다.


“사실 인천 토지 그것도 말씀드리려고 뵙자고 했습니다. 은행에서 계약금 2천은 웃기는 일이라고 해서 한 8천을 더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러니 계약서를 다시 써 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돈은 있대요?”

“돈은 어떻게든 만들어 올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 줄 수는 있는데요, 잔금이 늦어진다면 대출이자 정도의 페널티는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사장님이 계약서를 쓸 때 조항을 넣으십시오? 모레쯤 어떻겠습니까?”

토지 매수자들은 20일까지 잔금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은행에 담보대출을 신청했으나, 18억 원이 넘는 토지의 계약금이 겨우 2천만 원에 불과했기에 지점장이 “이거 금감원에 걸릴 수 있습니다. 1억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라고 핀잔주었다. 그래서 결국 1억 원짜리 계약서를 다시 써야 했기에 매도자인 나에게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충식이 “어머니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해서 내려가 봐야 합니다. 그러니 목요일쯤 하시죠?”라고 약속을 잡고 “밥값은 제가 내겠습니다.”라며 일어섰다.



2016년 2월 17일 수요일, 맑음


겨울용 차이나 슈트를 외투용 원단으로 맞추었다.

두꺼운 원단이 보온성이 높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섬유 기술의 발달로 부드럽고 보온성이 좋으며 얇기까지 한 원단들이 있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오늘 계약이 된다면 옷을 다시 맞춰야지’라고 생각하며 샤워하고, 보디로션을 바르고 흰 셔츠를 꺼내 입고 소매도 커프스로 여미었다.


이어, 날짜가 ‘22’에서 정지한 롤렉스 다이제스트 시계의 용두를 뽑아 ‘16’으로 돌린 다음, 한 번 더 밖으로 뽑은 후 오른쪽으로 돌렸다. 분침이 돌며 시침을 끌어갔고 12시를 넘어가자 날짜 판은 ‘17’로 바뀌었다.


압구정동 4번 출구 공용 주차장에 호박마차를 주차했을 때는 10시 30분이었다. 약속 시간은 11시였으므로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막 문을 연 맥도날도 매장으로 들어갔다. 나름대로 얼굴을 당겨 피부를 팽팽하게 한 여성이 주문받았다.


“햄버거 세트 주세요.”

“7천5백 원입니다. 3분 걸립니다.”


음식을 주문한 후, 창가 적당한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어제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때 충식이 전화를 걸어와 “사장님 어디 계십니까? 저는 4번 출구 앞에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두드리던 키보드를 정지하고 파일을 저장했다. 충식은 4번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토지를 매입할 사람들은 스타벅스 커피숍 안에 앉아 있었는데 서너 명은 되어 보였다. 충식이 가리키며 “저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챙길 게 없어서 사장님께 조금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라고 운을 떼었다.


그들과 신사동 주택가로 향했다. 내가 좌우를 둘러보며 “이 동네는 내 나와바리였는데?”라고 말하자 충식이 “그렇죠? 여기를 잘 아시죠?”라고 맞장구쳤다. 그러는 사이 도착한 곳은 연립주택으로 사용될만한 4층짜리 조그마한 건물이었다.

강남구 신사동에 주소를 둔 회사들은 주소 프리미엄을 알기에 이런 식으로 운영한다. 20평 정도 될까 하는 공간을 파티션으로 작게 쪼갰고, 책상 위에는 먼지가 수북했다. 즉 비워진 지 조금 된 곳을 오늘만 잠시 사용하는 것으로 보였다.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더니 낡은 응접 소파가 있고 60세는 넘어 보이는 남자가 명함을 내밀었다. 한문으로 ‘(株)ㅇㅇ이엔시’, ‘(株)ㅇ이스템주식회사 ㅇㅇ’, ‘ㅇㅇ생명공학연구소’ 등 복잡했고 직함은 회장/연구소장이었다. 참으로 꼰데스러웠다.

잠시 후 여직원이 종이컵에 봉지커피를 타서 내왔다. 물의 양이 많고 온도도 낮아서 커피를 더 부으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는 사이 민 사장이라는 사람이, 회장이라는 사람에게 토지에 대해 브리핑했다.

민 사장은 작년 10월경, 오로지 대출로 나의 인천 토지를 매수하려고 했던 작자이다. 그런 자가 이 사건에 끼어있는 것을 알지 못했기에 비위가 상했다. 게다가 지금은, 토지 매수를 위한 계약서 작성을 앞둔 단계가 아니라 회장이라는 작자에게 수익성을 브리핑하며 투자를 제의하는 것이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오다 거울을 보던 여직원과 마주쳤다. 3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경리스럽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화려한 꽃도 아니었다. 충식이 따라 나왔다. 커피를 한 봉지 더 터 종이컵에 부었다. 잘 녹지 않았다.

“영화를 찍으려면 제대로 하든지.”


내가 종이컵을 들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회의용 탁자에 앉으며 말하자 충식은 겸연쩍어했다. 그러니 계약이고 뭐고 이미 물 건너간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도 없었다. 이미 이런 상황은 어느 정도 예상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18억2천만 원짜리 토지 소유자가 이런 식으로 찌질하게 끌려다니는 것은 아니 될 일이었다. 또한, 자기 소유 토지를 능력도 없는 놈들에게 걸레 쪼가리 취급받도록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반성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분노’가 솟구쳐 올라왔다.


“내가 직접 지을 테니 어디 돈 많은 과부 연결해 주세요?”

“얼마나요?”

“에쿼티 4억이요.”

“그러면 뭘 해 줘야 합니까?”

“4억을 8개월 쓰고 2억 더 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알겠습니다. 맞춰 보겠습니다.”


충식이 떡밥을 물었다. 물론 이런 조건으로 돈을 빌려 건축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차비 1만 원을 지불하고 호박마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에 인천 34-59번지를 입력하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오줌이 마려웠다. 하지만 인천 토지에 영역 표시를 하겠다며 꾹 참고 도착했다. 그렇게 도착한 자신의 토지, 월 640만 원에 달하는 대출이자를 1년이 넘도록 내는 엄연한 재산인 토지 출입구 열쇠가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주인이 방심한 사이 거지 같은 것들이 주인처럼 들락거리기 위해 열쇠를 바꾼 것으로 보였다. 또 한 번 깊은 빡침이 올라왔다. 호박마차 트렁크에서 사냥할 때 사용하던 가죽 장갑을 꺼냈다. 그리고 반으로 쪼개져 바닥에 뒹구는 붉은 벽돌을 집어 열쇠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텅! 텅!”


점심때가 되었기에 뒤로 양복을 입은 사내들 서넛이 지나갔고, 유난히 고도비만인 사내도 있었다. 임진태가 ‘백 회장’이라고 부르던 자였다. 나와 안면이 있어 기억할 법도 한데 그냥 지나쳤다. 나도 아는 체할 이유는 없었다. 쓰레기들이었으니. 그러는 사이 분노의 벽돌질에 열쇠 핀이 짓이겨지고 빗장이 풀렸다.


“끼이익-”


높다란 철문이 고성처럼 소리를 내며 열렸다. 토지 한가운데로 뚜벅뚜벅 걸어가 바지 지퍼를 내리고 성기를 꺼냈다.


“쏴아아--”


열쇠를 사려고 철물점에 들렸다가 지갑을 차에 두고 온 것을 알았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에서 “그 명성 그대로, 고품격 주거단지 피렌체하우스가 옵니다.”라거나 “본 공사와 관련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자는 민·형사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따위의 문구를 쓴 현수막을 제작해 걸겠다고 마음먹을 때도 이때였다.

철물점에서 열쇠와 흰색 스프레이를 샀다. 그런 후 토지로 돌아와 펜스 담벼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사진을 찍었다.


“공동주택신축부지, 토지주 직접시공”


이 작은 행동은 토지가 누구의 것인지, 누가 승자인지를 인천에 알리게 될 것이었다.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았다.



2016년 2월 18일 목요일, 맑음

“사장님, 인천에 뭐 하셨어요?”


충식의 전화를 받았다. 어제 인천 토지에 가서 흰색 스프레이로 휘갈긴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사진 보내 드릴까요?”

“아닙니다. 봤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땅 주인이 누구인지 인천 사람들에게 똑똑히 알려 주었습니다.”

“어제 압구정에서 저는 화 좀 풀겠다며 사장님 먼저 가시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민 사장 싸다구 날렸습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또 알 필요가 없어서 중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도봉동 토지를 팔게 된 것처럼, 얼음판에 송곳을 꽂은 것만은 확실했다.


https://youtu.be/6Vsq_frVAMQ?list=PL7IGv76tfCC-Jm61zoh5QjWutLomb0v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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