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희망 고문

#디벨로퍼 라이프

by 김경만

10. 희망 고문


2016년 2월 23일 화요일, 맑음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한 충식의 전화를 받았다.

그동안 말도 안 되는 일로 시간을 소모했기에 “무슨 일입니까? 꼭 만나야 할 일이 아니라면 전화로 해도 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충식이 말했다.


“건설회사가 한 4억을 묻고, 분양을 해서 6:4 정도로 나누면 어떨까 하고 제안합니다. 그쪽 분위기가 좋아졌거든요.”

“내가 지금 고통스러운 것은 그동안 잘 모르는 곳에 투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는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조건도 내가 모르는 것입니다.”


내가 거부하자 충식은 특유의 말빨로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자신의 구도 속으로 들어와야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냥 토지를 팔거나, 아니면 나중에 여유가 되면 짓겠습니다. 그런 조건은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딱 잘라 정리했다. 백번 양보해서 ‘건설회사가 4억을 묻을 여력이 된다’라면 토지를 사는 게 훨씬 이득이기에, 굳이 ‘수익을 나누자’라고 제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아주 핫바지로 보고 ‘가상의 돈 4억을 넣었다’라고 하면서 공사치려는 것을 모를 내가 아니었다. 인천 토지 상황은 충식에게도 아주 골치 아픈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2016년 3월 25일 금요일, 맑음


충식이 전화를 걸어와 말했다.


“사장님, 서울에 한 번 오세요. 말씀드릴 일도 있고.”

어젯밤 보내온 문자를 보고 답을 주려고 했으나 잊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린다는 게 잊었네요? 근데 여기서(안양 피렌체하우스) 서울 나가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닙니다. 전화로 해도 될 일은 전화로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인천 토지 말입니다. 누가 산다고 하는데 2주 후에 돈이 된대요? 그래서 계약금조로 한 2천만 원만 받고 계약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 땅은 4월에 예송주택(건설회사)에서 대물 공사를 하기로 진행 중입니다.”

“아직 4월이 아니니 한 번 그렇게 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죠?”

“어디로 갈까요? 안양으로 갈까요?”

그렇게 충식은 또 떡밥을 던지고 있었다. 나에겐 선택의 카드가 없었지만 예송주택을 끌어들여 계약의 긴장감을 높였는데, 현장소장 준열은 “회사가 건축 공사하기에는 자금 사정이 그리 넉넉지 않습니다.”라고 회의적인 소식을 전했다.


2016년 4월 14일 목요일, 맑음


침대에 몸을 눕혔을 때는 새벽 4시였다.

중간에 한 번 깨었고 11시에 일어났다. 부스스한 눈으로 프라이팬을 달구고 소시지와 달걀 프라이를 해 상추에 싸 먹었다. 나름 뉴요커 같다고 생각하며 흰색 셔츠에 회색 바지, 여름용 재킷을 걸치고 포켓엔 몽블랑 마이스터튁 145를 꽂았다. 이렇게 완벽하게 준비하는 이유는 인천 토지매매 계약이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6일 자에서 멈춘 롤렉스 데이저스트 시계의 시간도 표준시간에 맞추었다.

충식과 잠실 피렌체 빌딩 근처 ‘은성다방’으로 향했다. 최근에 수리했는지 바닥의 대리석과 소파, 벽면이 깨끗했다.


“이 동네 나이가 있는 분들은 커피숍보다 이런 분위기를 더 좋아합니다. 젊은 애들하고 부딪치기 싫다면서요?”


충식의 말에 내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도 싸가지 없는 여자애들 눈빛이 싫어 선글라스를 쓰거든요? 이런 데 오면 오해스러운 시선은 없으니 말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생강차를 주문했다. 삶은 달걀이 함께 나왔다.

차를 마시던 중에, 매수자와 연결한 브로커가 다가왔다. 60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로, 핸드백에 큐빅이 박힌 고양이 인형이 달려 있었다. 동행한 중년 남자가 “쩐주분을 모시고 현장에 갔다 오는 길입니다. 부동산에 들렀더니 빌라를 1억4천에 분양해야 한다고 하네요? 오는 길에 바로 계산기 두들기더니 수지가 나오지 않아서 힘들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는데, 대구에서 건설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충식이 “그렇지 않아도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어요? 땅을 자기들이 샀다고 하면서 빌라 분양가격을 물어보더래요. 땅을 팔았으면서 왜 말하지 않았냐며, 오히려 나한테 더 화를 내더라고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세요? 자기한테 토지 매매 계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분양가를 물어보면 너 좆되봐라 하고 싸게 말하는 게 당연한 거죠?”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내가 말했다.


“분양가격은 중요하죠? 그리고 시세를 알아보는 것도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것은 미리미리 알아보고 가격이 맞지 않으면, 계약하지 않으면 되는 게지, 이게 뭡니까?”


그러자 건설업자라는 남자가 거듭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에게 5억 정도는 있으니, 지주 공동사업을 하는 것 한 번 생각해 보시죠?”라고 제안했다. 이에, 내가 말했다.

“나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생면부지의 사람과 사업을 하기는 어렵죠. 그렇게 하려면 벌써 했습니다. 지금은 땅을 팔고 싶은 거고, 그게 안 되면 다른 대안을 모색해 봐야죠?”


어쨌거나 결론은 계약 불발이었다. 약간의 상실감이 밀려들었으나 밖으로 드러낼 것도 아니었다.

“커피는 제가 내겠습니다.”

충식이 말하며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계산을 끝내자 내가 “밥 먹으러 갑시다.”라고 말하며 ‘온정’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가는 동안 20대 총선에 대한 정치 이야기 외, 토지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술을 마셔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마시고 싶었다. 희망 고문을 맨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다.


2016년 4월 26일 화요일, 맑음


‘SAM SMITH'의 디스크가 오디오 트랙에 걸려 있다가 작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 곡으로 'money on my mind'가 흘러나왔다. 달콤한 음악에 잠시 그대로 있기로 했다. 그러다 그만 노래를 모두 들었다.

거실로 나와 기린 그림이 그려진 벽시계를 보았다. 어젯밤 모닝콜 시간을 세팅하지 못한 것을 후회해 봐야 늦었다.

강남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 입구로 빨간색 벤츠 SLK 로드스터가 들어왔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주차 후 바쁜 걸음으로 커피숍으로 향했다.

“사무실 근처인데도 일하느라 바빠서 한 번도 못 와 봤네요.”


예송주택 추 대표가 인사 겸 대사를 날리며 자리에 앉았다. 나도 ”2년 전, 안양 피렌체하우스 건축할 때는 사무실에서 만났지만, 이제는 호텔에서 만나야죠? 그래서 여기서 뵙자고 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장소장 준열이 일어나 케이크를 파는 곳으로 향했다.


“그동안 매각에 중점을 두고 이놈 저놈 만났습니다. 결국, 시간만 보냈네요. 그래서 이제는 끝장을 보려고 합니다. 얼마 전 토지를 매수하겠다는 대구의 건설업체가 왔는데, 공동 지주 사업을 제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사업 방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생면부지인 사람과는 할 수 없다면서 거절하고 사장님을 만난 것입니다.”


나는 추 대표에게 목적을 말했다. 하지만 현장소장 준열이 말한 것처럼 예송주택의 상황이 좋지 않아 함께 할 수는 없었다.



2016년 4월 27일 수요일, 맑음


컴퓨터를 켜고 엑셀 프로그램을 이용해 인천에 지어질 도시형생활주택 및 오피스텔 35세대 분양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대한저축은행 임 과장이 전화를 걸어 온 때도 이때였다.

“대출을 저희 안산지점에서 받으신 거죠? 건설 수지 분석표를 보내주십시오?”

“그런데 왜?”

“아, 안산에서 대출해야겠네요? 사이즈가 작으니 작은 업체들로 알아볼게요?”

임 과장과 전화 통화를 마치고 희망 분양가와 토지 및 건축 원가를 계산했다. 순이익 7억 정도 예상되었다. 50억 원 투자사업에서 7억이 남는다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기에 어떤 건설업체도 섣불리 덤벼들 수 없었다. 수익은 건축에서 남는 것이 아니라 토지 매입에서 남는 것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해관계인이 아니었다면 이 토지는 14억 원 선에 낙찰받았을 것이고, 거기서 수익이 날 구조였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다 지나간 허망한 것이기에 미련을 두지는 않았다.



https://youtu.be/EDoCzGJjzew?si=XCEU1TvIYPOMEz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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