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자력갱생(自力更生)

#디벨로퍼 라이프

by 김경만

11. 자력갱생(自力更生)


2016년 4월 29일 금요일, 맑음


대한저축은행 과장 임순묵과 알게 된 지는 10여 년이 넘었다.

순묵은 ’1백억을 벌었다‘라는 D건설 대표 재영에 대해 “나이 어린 그 친구요? 돈 백억을 벌긴요? 남의 돈 빌려 공사하는데. 돈 벌기 그리 쉽나요?”라고 한 마디로 발라버리는 냉정한 혀를 가진 남자다.


재테크 욕심 또한 누구보다 많아서 한때는, 강원도에서 펜션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와는 인천 토지 건축 문제로 다시 연결되었고 소개해 줄 건축업자에 대해 “안양이 집인 사장님이세요. 돈은 그리 많이 없는데 잘 지어요. 오피스텔도 2백 채 넘게 지었고요?”라고 평가했다. 이에 내가 말했다.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 멋지게 잘 지어야지?”

“그런 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빌라야 팔고 도망가면 되는 거죠?”

“어허, 그러면 안 된다니까?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는 지어야 해! 그건 나와 생각이 다르구만! 그리고 또 하나. 여기 (안양 피렌체하우스) 건물 대출 좀 다른 곳으로 갈아타게 해 봐?”


순묵이 “원금 얼마에 이자가 얼마예요?”라고 되물었다. 내가 “12억8천에 8% 이자야?”라고 말하자, “너무 쎄네? 조 과장에게 말해 보지 그래요?”라고 말하며 안타깝다는 듯이 “내려 줄 텐데.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세탁된 빨래를 계단 참에 있는 건조대에 널고 옥상에서 내려오는 빗물 배수관을 수선하느라 분주할 때였다. 건축업자와 오후 2시에 방문하기로 약속한 임 과장이 전화를 걸어와 “좀 늦어질 것 같습니다. 내비게이션은 3시 30분이라고 하는데”라고 말했다.

잠시 후, 살이 조금 찐 임순묵과 눈썹이 선명한 남궁이란 성씨를 가진 건축업자가 방문했다. 내가 주례를 서주고 답례로 받은 도자기 찻잔에 허브차를 채워 내놓으며 남궁에게 “문제는 제가 돈이 없다는 것과 건물은 돌아서도 욕을 먹지 않을 정도로 잘 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가 가능할까요?”라고 물었다. 이에 임 과장이 또 “에이 사장님. 팔고 도망가는 거죠?”라고 말했다.

“임 과장 그건 아니야. 여기 건물도 그렇고, 우리보다 더 오래 남아 있어. 우리가 가우디 같은 건축은 못 하더라도 똑같은 철근 콘크리트로 짓는데 욕은 먹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내 말이 끝나자 남궁이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실 가격 차이가 별로 나지 않거든요. 그걸 아끼는 것보다 잘 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남양주에서 그렇게 짓는 분이 계세요?”라고 동조했다. 임 과장이, “아, 시립대 교수였다는 분?”이라며 맞장구치며 “그분이 남양주 와부읍 오남리 상업용 토지를 평당 6백만 원에 낙찰받았어요. 그리고 빌라를 지었는데 2주 만에 다 팔렸죠. 창문의 무늬 디자인까지 감각적으로 지었지요. 그래서 주위에서 하나 더 지으라고 하는데 땅값이 평당 1천2백까지 하니 못 짓고 있죠?”라고 말했다.

임 과장의 사례 발표에 나도 “거봐. 된다니까. 그나저나 건축은 땅을 싸게 사야 하는 게 맞아! 난 이 땅을 좀 비싸게 매입한 것이어서 수익이 없지만, 앞으로 경매를 통해 싸게 찍을 테니 그때 일한 번 벌려보자고?”라고 말하며, 남궁에게 “어쨌거나 검토해 주시고, 상태는 건축허가와 건축판매업 사업자등록만 한 태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설계도를 펼쳐 든 남궁이 “건축비 평당 3백5십은 빠듯하고요? 나쁘지 않고 팔릴 정도로 짓는다면 3백7십은 지어야 합니다. 이건 비닐 장판을 깐다고 되어있고 외벽도 드라이비트입니다. 딱 팔고 도망가는 가격이네요? 잘 팔리려면 앞면 정도는 돌을 붙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진솔한 업자의 말에 나도 수긍했다. 공사비가 상승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분양가가 싸다는 것이었다. 남궁이 전화로 누군가에게 분양성을 물었고, 임 과장이 “공사비는 추후 정산하더라도 지금은 에쿼티(자기 자본금) 자금을 낮추기 위해 공사비를 3백 정도로 하시죠? 여기 나 사장님을 못 믿으시면 어쩔 수 없지만 도망가실 분은 아니거든요. 건물도 여기 말고 잠실에도 있고 그러니까?”라며 신용을 보증했다. 그러자 남궁도 “에이,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돌아가자 나는 이메일로 설계도를 남궁에게 보냈다.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도 “(안양 피렌체하우스)이자를 5.5%까지 낮춰보겠습니다.”라는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임 과장을 통해 “김 사장님이 대출 다른 곳에 갈아타려고 알아봐 달라고 하더라?”란 구라가 통한 모양이었다.


인연이 이렇게 엮이나 싶은 날이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붇옹산‘도 페이스북에 “제가 분양해 드릴게요?”라고 다짐해서 지푸라기치곤 건더기를 잡은 느낌이었다. 그러니 이제 녹슨 철근의 녹을 벗겨내고 건물을 지어 올리는 일만 남았다.



2016년 5월 2일 월요일, 흐리고 오후에 비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났다.

날씨와 시간에 대한 감각이 없기에 한참을 생각했다. 월요일이었다. 샤워하며 아침 메뉴를 고민하다 어젯밤에 족발과 막걸리를 마신 것이 생각났다. 냉동실의 ‘찰밥’을 전자레인지에 해동했다. 밥 냄새가 피어났다. 건강한 냄새였다. 잊어버린 냄새에 잠시 행복해하며 상추를 씻고, 참치 통조림을 따고, 녹아드는 김치도 꺼냈다. 욕망의 끝까지 달리고자 하는 부르주아의 브런치였다.


인천 토지 소유자 겸 채무자 염상섭에 대해 재산 명시 신청도 했다. 시작이 어려웠을 뿐, 두 번째부터는 쉬웠다. 4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신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그런 후 행정자치부로 전화를 걸어 “지급명령 판결문이 있으며 주소도 알고 있습니다. 이경우 주민등록 초본 발급이 가능합니까?”라고 물었다.

“판결문에 주거지가 기록되어 있어야 합니다. 선생님의 경우 사무실 주소여서 어렵겠습니다.”


또 채무 불이행자 등록은, 채무 상환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10월쯤에야 등재 가능하니 기다리기로 했는데, 이 모든 건 첫 단추부터 잘 못 꿴 결과였다. 얼굴을 안다는 것과 그 인간에 대해 안다는 것이 다르듯, 돈거래 또한 열아홉 시절 다짐한 ‘사람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어야 했다. 쉬운 원칙을 잊은 탓에 큰 고통을 받고 있다.


2016년 6월 1일 수요일, 맑음


한때 부동산경매 법인을 동업한 동업자는 현재, 창원에서 수술 사업을 하고 있다. 오전 8시 28분에 보내온 문자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형님, 잘 주무셨어요? 어제 말씀하신 건(건축공사비 차용)에 대해서 고민 많았습니다. 올라가서 말씀드려야 되는데, 좀 힘들게 되었습니다. 죄송해요. 6월 말에는 꼭 찾아뵐게요?”


며칠 전 건축공사 자금을 빌려달라는 부탁에 대한 답장이었다. 문자를 읽으며 ‘반대의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하며 “하, 뭘 고민하고 그러냐?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고맙다. 그때 보자. 멋진 6월 즐겨라.”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러면서, 만약 자금을 융통해 줬다면, 그래서 건물을 짓고 그것이 발판이 되어 성공했다면 빚을 지게 되는 일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좌우명인 ‘자력갱생’에도 맞지 않는 것이니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애써 위안했는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부탁했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연경은 컴퓨터로 건축설계도에 따라 3D 입체작업을 하는 전문가다. 커다란 건물을 3D로 그려주고 돈을 받는 회사의 과장으로 밤낮없이 일한다. 연봉이 4천만 원이 넘는 걸로 보아 상당한 실력자다. 그런 연경에게 인천에 건축할 빌라의 입체도면을 부탁했더니, 마치 건물이 지어진 것처럼 잘 그려진 4장의 그래픽을 문자로 보내며 “도면이랑 쪼끔 안 맞아요. 매스감은 비슷하니 참고하시면 될듯 요~”라고 덧붙였다.


종이 도면을 2년째 가지고 있었지만, 건물이 어떻게 만들어질지 생각하지 않았고 모양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건축해야 하므로 입체화시키고 싶어 방송대 미디어영상학과 동기인 연경을 기억해 내고 부탁한 것은 정말 적절했다.


모니터에는 인조 잔디 위에 웅장하게 보이는 6층짜리 35세대 공동주택 건물이 보였다.


“이제 4억만 구하면 실존하게 되겠네. 노 과장 쫌 많이 멋찜~”


감사의 문자를 보내던 중 전화를 받았다. 그래서 사심을 가득 담아 “쫌 멋진데? 야 역시! 꿈을 이루려면 형상이 분명해야 하거든. 그래서 부탁했는데 이 정도로 멋질 줄 몰랐다. 오래 걸렸지?”라고 칭찬했다. 연경이 “쫌요-”라고 대답했다.

“형님이 지금은 거지라 그런데~ 꼭 보답할게.”

“아니요. 전에 형님에게 술 산다고 한 거 퉁 쳐요.”

“근데 지금 건축할 돈이 읎다.”

“흐흐 짓게 되실 거예여~~ 홧팅입니다.”


전화를 끊고 그림을 확대해 보았다. 모니터를 가득 메운 건물이 곧 현실로 지어질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미처 보내지 못한 문자를 전송했다.


https://youtu.be/PFKuFQYb8RQ?si=Z84FI5Bf2yKFH5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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