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 라이프
제3장 현실
1. 물 들어온다
2016년 6월 7일 화요일, 맑음
낯선 여자 목소리의 전화를 받았다.
“인천 토지 소유자 되시죠?”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도 전화를 걸어와 “사장님 토지를 사겠다는 사람이 있는데 파실 거죠?”라고 물었다. 생각지 못한 떡밥이 터져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 과장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더니 상대방이 “네. 시행합니다. 19억이라고 들었는데 좀 할인은 안 됩니까?”라고 물었다. 18억2천만 원에도 매각할 의사가 있는데 19억 원이나 불렀으니 적게 부를 이유는 없었다. 다만 상대가 먹고 싶도록 떡밥은 필요했기에 협상을 시도했다.
“교통유발부담금이라고 세금이 있더라고요? 그 정도는 빼 드리겠습니다.”
“그 세금이 얼마나 되나요?”
“한 2천5백쯤 됩니다.”
“그러면 18억7천5백만 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양도세가 좀 나와서 건축 허가조건은 1억 원에 따로 매매하겠습니다. 그러니 토지 매입은 17억7천5백만 원인 셈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계약하는 것으로 하시죠.”
뭔가 말도 안 되게 시원스럽게 진행되었다. 상대방에게 “사장님의 명함을 부탁합니다.”라는 문자와 함께 명함 이미지를 전송했다. 그렇게 받은 명함에는 ‘파이넨싱’ 어쩌고 하는 내용이 쓰여있었다. 하지만 이 바닥이 거지들 소굴이니 믿을 수는 없었다.
낯선 여자는 30분쯤 늦게 롯데백화점에 도착했다. 성이 백 씨인 것은 전화번호를 구글링해 알아냈다. 광주에서 어음 할인 광고를 한 번 낸 적이 있었다. 그러함에도 전혀 모르는 체하며 “밥을 안 먹으셨죠? 커피값이나 밥값이나 비슷하니 밥이나 먹읍시다?”라고 말하며 ‘미가식당’으로 들어갔다.
육십은 다 되었을 여자는 마른 체형이었고, 얼굴 피부의 주름은 여기까지 오는 삶이 녹록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식탁에 앉아 ‘땅을 알게 된 경위’ 등 몇 가지를 물었다. 그렇다고 진실을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KS 건설이라고 천안에서 꽤 큰 건설업체입니다. 요즘 일이 줄어들었는데, 건설사는 손해만 나지 않으면 일해야 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장님 땅이 나왔기에 알아보다 이렇게 연락이 되었습니다.”
“내 땅이 수익이 그리 크게 나지 않는 것은 압니다.”
“잘 아시네? 한 3억 정도 남는데요.”
이에, 나도 “직접 지으면 7억 정도 남을 겁니다? 내 경우 그 정도 남지요. 저도 땅값을 뽑아와야 해서 지으려고 준비 중입니다?”라고 에둘러 대답했는데, 건설업체가 시세는 제대로 조사한 듯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매매였다. 백 여인이 “땅값을 2억을 먼저 드리고 나머지는 분양해서 드린다는 조건이 어떨까요? 대신 19억!”이라고 떡밥을 던졌다. 이에 “내가 정리해 볼게요? 자, 내 땅을 건설업체에 파는데, 2억만 받고 넘겨 공사하게 한다? 그러면 나머지는 무엇으로 보장받죠? 말이 안 되잖아? 분양계약서 그런 것은 종이 쪼가리고 뭔가 담보할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백 여인이 “그러네요?”라고 수긍했다.
“그럼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거죠? 토지를 신탁하게 되면 신탁사와 뭔가 있거나 그래야 하는데 그런 것은 내가 잘 모르거든요? 그래서 지금 제안은 안 되겠네요?”
백 여인도 동의했기에 밥만 먹고 헤어졌다.
2016년 6월 8일 수요일, 맑음
어제 만났던 백 여인이 전화했다.
피로로 늦잠에서 일어나 걸어서 ‘송담 추어탕’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은 후 미용실의 용길에게 머리카락을 자르고 온 후였다.
“저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니니 자꾸 만날 필요 없습니다. 정리된 것만 말하세요?”
“아니 만나 뵙고 드릴 말씀이 있어요? 한 시간 안에 도착합니다. 백화점으로 가면 되나요?”
막무가내였다. 결국, “커피숍 약도를 보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카페 ‘콩’ 명함 이미지를 전송해 주었다.
잠시 후 “도착했습니다.”라는 전화에 커피숍으로 향했다. 백 여인은 쥐색 양복을 입은 50대 남자와 같이 있었다. 남자가 나를 알아보고 일어나 인사했다. 내가 “여기보다 밝은 곳으로 옮기죠?”라며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한 건물을 가리키며 “저기 흰 대리석 건물 보이죠? 피렌체하우스라고 쓴 건물. 저게 내겁니다.”라고 소개했다. 백 여인이 “와우~ 우리 사장님 부자시네?”라고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나 한 번 더 “저런 게 피렌체에도 하나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재산이 그럼 백억쯤 되십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빚이 한 70억쯤 됩니다. 월 이자만 4천만 원을 내지요?”라고 대답하자, 동석한 사내가 웃으며 “말이 백억이지 2, 3백억쯤 갖고 계신 거 아닙니까?”라고 끼어들었다. “아뇨. 저는 돈 그렇게 많은 거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저 잘 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며 탐색전을 끝냈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19억5천만 원에 계약하겠습니다. 18억8천만 원만 받겠다고 하셨으니 7천만 원을 저희에게 주십시오?”
뜨악한 제안이었다. 그렇다고 놀랄 일도 아니었기에 “좋은 말씀이신데, 나는 양도세 세금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1억은 건축허가 양도 양수금으로 받고 싶은데요?”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사장님. 그건 어렵습니다. 회사이기 때문에 일반 매매로 해야 합니다. 계약금으로 2억에서 3억을 드리고 잔금은 45일 이내에 하는 조건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7천만 원에 대한 비용처리가 안 될 텐데 양도소득세만큼 빼야 합니다?”라고 말하자, “비용처리 됩니다. 컨설팅 비용으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드립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세무사에게 전화해 보겠습니다.”라며 세무법인 정상 최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 최 과장. 내가 작은 땅이 하나 있어요. 그걸 팔려고 하는데. 19억이야. 근데 컨설팅비를 5천 달라고 하네? 그게 비용처리가 돼?”라고 물었다. 백 여인 일당이 컨설팅 수수료로 7천만 원을 달라고 했지만, 나는 ‘5천만 원’으로 통화했다. 두 사람은 내심 불안해졌다.
최 과장이 “컨설팅 수수료는 비용처리 되십니다. 대신 세금계산서를 끊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다시 “그런데 내가 주택신축판매업 사업자등록이 있어. 실적은 없고. 그 경우 사업자는 폐업하고 개인으로 세금계산서를 받아도 되나?”라고 되물었다.
“네. 상관없어요. 대신 부가세를 돌려받지 못해요? 그런데 부가세까지 비용처리 되니 상관없습니다.”
전화를 끊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19억5천만 원에 계약서 쓰고 컨설팅비는 5천입니다. 부가세 포함?”
“사장님, 부가세는 별도지요?”
나는 그동안 틈만 나면 땅을 팔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러니 18억2천만 원만 받아도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매매했을 것이다. 아니 더 적게 준다고 해도 매매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쉬운 태도가 아니다. 이유가 있었다.
두 사람을 만나러 오기 전, 대한저축은행 조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었다.
“조 과장 하나 물어보자. 어제 어떤 여자가 찾아와서 계약금 2억을 주고 나머지는 분양해서 준다고 하는데 신탁하는 과정에서 안전장치를 할 수 있나? 그냥 공사하다 삽 빼면 좆되는 거 아냐?”
“명의는 누구로 하고요?”
“자기들로 해야지?”
“에이~ 그런 건 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는 대로 그런 일 많아요. 아예 생각도 마세요. 어제 온 그분이 돈 있냐고 물었더니, 있다고 당장에 계약한다고 하던데요? 안 되었어요?”
“글쎄? 말은 오늘 계약한다고 하더니 조용하다. 하여간 알았어.”
“근데 사장님! 인천에 도시형생활주택 허가는 이제 안 나와요. 그거 알려 드리려고 전화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왜?”
“사장님이 가지고 있는 그런 허가(도시형생활주택 28세대, 오피스텔 7세대)는 아예 안 나와요. 그래서 그나마 다행인 거죠? 앞으로 시세만 오르면 되는 거예요. 근데 재영도 그러고 파는 게 낫다고 하니 파는 게 났죠?”
“그럼. 돈 안 되는데 뭐하러 갖고 있어? 그냥 팔 거야?”
“네. 알겠습니다. 잘하세요?”
이때 인천에서는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이 혼재한 허가는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매수희망자들이 몰린 이유도 알게 되었기에 지금 튕기는 중이다.
백 여인이 불편한 얼굴로 “그럼 사장님, 18억9천에 하시죠? 우리 6천 주시고? 계약금 많이 받게 해드릴게요. 대신 계약할 때 컨설팅비를 전액 주시는 겁니다?”라고 수정 제안했다. 내가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를 마시다 “그건 안 됩니다. 중개수수료는 잔금 때 지불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백 여인이 “아니 이렇게 조건이 좋은데요?”라고 되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뭐~ 다들 반세기 이상 살아봐서 나름대로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나 또한 그렇습니다. 그 기준을 변경하라고 하지 마십시오?”
이에 양복을 입은 남자가 끼어들며 “그럼 절반만 주십시오.”라고 태세를 전환했다. 나도 “그건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가 “그러면 계약금 받을 때 잔금 일에 컨설팅 비용을 준다는 확인서 한 장 써 드릴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말하면 법인데. 알겠습니다.”라고 수락해 거래는 성사되었다. 두 사람은 “그럼 우리는 지금 일하러 가야 하니 일어서겠습니다. 계약은 법무사 등 아무 곳에서나 해도 상관없지요?”라고 말하며 일어섰다. “네. 먼저 가십시오. 저는 마저 마시고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눈을 들어 자신이 건축한 안양 피렌체하우스를 쳐다보았다.
고난의 뻘밭에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배를 띄워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한편, 충식도 바빴다. ‘마루횟집’에서 회를 사 와 책상에 술상을 차렸을 때 전화를 받았다.
“사장님 잘 계셨습니까? 인천 땅 말입니다. 살 사람이 있는데 파시죠?”
“그러게요. 거기 뭔 일 났나 봅니다? 죄다 땅을 사겠다고 달려오니 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땅을 사겠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에이 사장님. 돈을 가져와야 계약이 되는 거죠? 아시잖아요?”
“근데 얼마에 산답니까?”
“전과 같이 18억2천만 원 아닙니까?”
“오늘 사겠다는 사람들은 19억5천만 원입니다!.”
“그거 안 됩니다. 그냥 저희와 계약하시죠?”
“뭔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내일 통화하죠?”
이 움직임은 작은 나비효과로부터 시작되었다. 토지를 둘러싼 가설재 위에 흰색 스프레이로 ‘공동주택건축부지 토지주 직접 시공’이라고 쓴 것이 그거였다. 이때부터 인천 사람들은 토지의 주인이 누구인 줄 알게 되었고, 자신이 건축할 것처럼 사기 치던 임진태는 구속되었다. 충식이 “구형 2년을 받았는데 선고기일에 법정에 나가지 않았대요. 그래 도망 다니다 길거리에서 잡혔고. 2년 6개월 받아 지금 구속되어 있습니다.”라고 알려줬다.
인천 토지에 빌라 건축사업을 설계한 임진태의 구속은 주변의 나쁜 무리에게도 일종의 위협이 되었고 잔존세력도 정리되었다. 게다가 도시형생활주택 건축허가가 더는 나오지 않게 되자 이미 허가받은 나의 땅이 관심거리가 되었다.
하지만 토지 매매 가격이 높은 탓에 매수하려는 쪽에서도 “사실 수익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부들 놀릴 수 없고, 다른 곳 공사를 하면서 같이 하면 자재값도 절약돼서 하는 겁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매매가 될 모양이었다. 백 여인에게 전화를 걸어 “백 여사님. 충식 씨 알아요? 강남에서 대부 중개도 하는?”이라고 물었더니 “보면 알 것 같은데 왜요?”라고 되물었다. “아니 그 사람이 전화 와서 땅을 사겠다고 하네. 그래서~”라고 말꼬리를 흐리자 “우리하고 매매 하기로 하셨잖아요?”라고 역정을 내듯이 말했다.
“그렇게 말했지? 그런데도 자꾸 그러네? 그래서 아는 사이인가 물어보는 겁니다. 그런데 매수자는 언제 만납니까?”
백 여인이 “내일 이야기하고 모레쯤요?”라고 대답했는데, 충식과 연결된 것 같지는 않았다. 다시 술잔을 기울였다.
https://youtu.be/cfZyJF_a5Nw?si=owpmnQ6OpSiqzY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