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8. 자금관리와 동업자의 일본 여행
2017년 10월 15일 일요일, 맑음
거실 유리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침실에서 나와 아일랜드 식탁 위에 남아있는 치킨 한 조각을 물어뜯었다. 치킨이 맛있는지 알려면 식었을 때 먹어 보면 되는데, 괜찮았다. 기름을 좋은 것을 쓰는 것 같았다.
전기주전자의 물이 끓자 커피를 타 서재로 갔다. 일기를 쓰고 컴퓨터 방으로 가 모든 통장의 잔고를 용인 사업용 통장으로 이동했다. 레미콘 비용 11,786,060원 및 설계사무소 [트러스트] 임 소장 토지 소개료 1천만 원, 이장단에게 줄 3백만 원을 신우건설 계좌로 입금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잔고 부족으로 이장단에게 줄 돈은 입금하지 못했다. 이 돈은 도진이 입금해야 할 것 같았다.
높고 파란 하늘과 약간 차가운 바람이 땀을 흘리지 않고 산책하기에 딱 좋았다. 검은 타바트 선글라스에 청바지, 연두색 재킷을 입고 걸어간 곳은 마트였다. 전기밥솥에서 밥이 지어지고 있을 때였다.
“전화 주세요.”
도진이 보내온 문자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더니,
“임 소장이랑 다 보냈고요. 골조는 돈을 좀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전 소장은 엽기적인 소리를 하더라고요. 4층 하나를 자기에게 주면 안 되겠냐고 해서 내 것은 이미 계약되었으니 형님 물건에 대해 물어보라고 했어요. 가족끼리 이사를 올 생각도 있는 것 같긴 한데, 얼마에 팔려는지 알아보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아요. 얼마에 줘야 해요? 4층 복층에서 수익이 남아야 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분양가에서 천만 원 빼주면 되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 문제죠. 뭐라 이야기하냐면 골조 상태에서 자기에게 주면 안 되겠냐고 하던데요?”
“뭐? 골조 상태? 그럼 원가에 달라는 소린데, 그 원가를 만들기 위해 50억을 투자한 우리는 뭐가 되냐? 정신이 없네. 상황 파악이 그렇게 안 되나? 건축주의 돈이 그냥 어디서 나오는 줄 아는 모양인데?”
“그러게요. 자꾸 겸상해 주니 종놈이 툇마루 올라서는 꼴입니다. 하! 하!”
“겸상 물리고 앞으로 부엌 자주 들여다봐라. 조기 몇 마리 먹을 수 있다… 하! 하!”
문제였다. 투자의 수익은 오로지 투자자의 몫이다. 실패 또한 그렇다. 그래서 성공한 투자자는 리스크라는 사지를 넘어왔기에 돈과 찬사를 독식해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일하는 ‘마름’이 리스크 없는 양반의 알짜 물건을 탐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언젠가 ‘마름’ 전 소장이 “저는 건축주님이 집 하나 지어 줄 때까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있었는데, 인내가 짧은 모양이었다.
“일본 가족 여행 잘 다녀와라. 현장은 내가 가끔 가 보마.”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맑음
뽀송한 이불 속에서 행복한 아침을 맞았고 서재에서 느긋하게 일기를 썼다. 적어도 문화은행 “[Web발신][문화은행] 김경만님 금일 08시 30분 시점 납부하실 대출 원리금은 ₩13,323,414입니다.”라는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남은 쌈 채소로 브런치를 먹으며 현금 입금 및 이체를 통한 이자 납부 계획을 세웠다. 옷장에서 청바지와 가죽 재킷을 꺼내 입고 침대 위에 쌓여 있는 현금 2천6백만 원과 통장을 가죽으로 된 악보 가방에 넣어 가로로 멨다.
“씨륵— 브다다다당—”
모터사이클 로시난테 배터리 성능이 떨어졌는지 스타터 모터가 주춤거리다 회전했다. 엔진 배기음이 인천 [피렌체하우스]에 울려 퍼졌다. 입주자로 보이는 뒤태가 건장한 여자가 울타리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다 자리를 피했다.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단결… 입금하려고요.”
첫 번째 목적지는 개성신협이었다. 안 계장에게 인사하고 현금 한 다발을 입금하고 돌아서려니 “사장님, 잠시 시간 되세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건네기에 상담실로 갔다.
“저도 이런 부탁 드리긴 싫은데요, 그냥 부담 없이 들어 주세요. 신협이 군인공제회와 상조를 하는데 할당이 저에게 좀 많이 떨어졌어요. 상품은 좋고 만기 시 원금 출금도 되는 상품입니다… 도진 사장님도 필요하시면…”
미안해하며 말을 꺼내는 안 계장에게 말했다.
“하하하, 그렇군요. 그런데 어쩐다? 나도 그런 부탁 남에게 못하는 성격에다가 상조가 필요 없는데, 내가 관짝을 짤 줄 알잖아요? 게다가 도진도 부모님 모두 안 계셔서 안 될 것 같고, 그래도 일반인들은 상조가 필요하니 하청 업체 사장들 물어보라고 할게요. 금요일까지 연락드리겠습니다.”
차라리 적금을 넣어 달라고 했으면 편했을 것이다. 상조회사의 도움 없이 부모님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주변머리가 있는 나에게는 필요 없는 상품이었다. 다만 하청 업체 관계자들은 필요할지도 몰라 그렇게 대답했다. 그걸 할 사람은 도진이었는데 “여기는 30도입니다.”라며 가족들과 오키나와 여행 중인 사진을 보내왔다. 돌아오면 해야 할 일 한 가지가 생겼다.
두 번째 은행은 만국은행이었다. 일반 대기 손님이 많아 VIP룸을 봤더니 한 사람뿐이기에 들어가 7백만 원을 입금하고 곧장 모터사이클 가속 그립을 감아 기업은행으로 향했다.
“7백만 원이세요?”
금액은 맞았다. 통장을 악보 가방에 넣고 헬멧 턱끈을 꽉 조였다.
“부다다다당—”
이번에는 문화은행 청라지점을 향해 가속 그립을 감았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가죽 재킷 사이로 스며들었다. 2층에 위치한 문화은행 직원들이 도시락을 먹다 헬멧을 쓰고 들어오는 나를 맞이했다. 여직원에게 “이자는 자동으로 빠져나가죠?”라고 확인 차 물었더니 “네.”라고 대답하며 “입금된 7백만 원 확인해 보세요.”라고 통장을 건넸다.
다시 시원한 모터사이클 라이딩이 시작되었다. 통장을 가방에 넣고 청라대로를 달려 인천 [피렌체하우스]로 돌아온 후 기업은행 계좌에서 650만 원을 문화은행으로 이체하고 상황은 종료되었다. 무엇을 위해 거금의 이자를 내고 있는지 자문하자 알 수 없는 허탈한 기분이 엄습했다.
‘그래, 멋지게 옷을 입고 드럼이나 연주하자.’
스스로 나쁜 기분에 휩싸이지 않도록 자신을 독려하며 가발까지 쓰고 드럼학원에 가기로 했다.
2017년 10월 17일 화요일, 맑음
“당신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이 어떤 일을 한다고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 ― 앤디 워홀
Time, Place, Occasion. 누구를 만나 어떤 배역의 연기를 할 것인지 생각하고 의상을 선택했다. 그러나 워홀은 말한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입으라고. 옷장을 열어 짙은 갈색 슈트를 꺼냈다. 식사도 할 필요가 있어 작전역 근처 설렁탕 식당에 들렀다. 그런 후 서울로 가 동부지방검찰청에 고소장을 접수한 뒤 다시 인천으로 핸들을 돌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잠실종합운동장과 120층 롯데타워가 흐르듯 지나갔다. 기분을 오롯이 느끼고 싶어 동영상을 촬영했다.
2017년 10월 18일, 흐리고 오후에 약간의 비
밴드 합주를 위해 합주실로 향하다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경매 물건을 임장하기로 했다.
‘2016타경 5060**’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73*-*
나대지 상태의 토지 147분의 73 지분, 208.03㎡(62.93평)로 감정가격은 445,120,000원이나 3차 218,109,000원에 경매 진행 중이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해 근처에 도착했으나 해당 토지는 찾을 수 없어 스마트폰 구글 지도를 이용해 위치를 확인했다. 카메라와 녹음기를 따로 휴대하던 10년 전 경매와는 전혀 다른 격세지감이었다.
진입로는 2차선 도로와 접해 맹지는 아니었으나 폭이 3m에 불과해 건축하기에는 다소 문제가 될 토지였다. 그렇다고 해도 시세의 반값에 불과하므로 욕심을 내 바로 옆 부동산사무실에 들어갔다. 중년의 중개사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기에 끝나기를 기다린 후 “옆 토지 경매 때문에 왔습니다.”라고 말하자 “그거 안 돼요. 공유자가 전직 은행 지점장 출신인데, 가격이 떨어지면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궁금한 것을 한 번에 정리해 주었다.
중개사무소를 나와 ‘빌라 건축을 할 수 있는 토지의 시세나 떠보자’라는 생각에 다른 중개사무소를 찾았다. 중개사무소는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었다. 손님에게 집을 보여주고 돌아와 사무실 문을 여는 중개사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평당 9백 불러요. 비싸서 안 팔리죠.”
중개사가 토지 가격에 대해 말하자 내가 되물었다.
“건축업자들은 얼마에 사면 수익이 난다고 하나요?”
“음, 한 8백? 8백50… 그러죠.”
“그렇군요. 혹시 5번지 뒤 토지는 얼마면 팔까요?”
3m 진입도로는 건축허가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뒤편 토지를 살 수 있는지 물었다.
“안 판대요.”
밭으로 경작되는 토지였는데 안양 할머니들처럼 평생 끼고 살려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제 아는 사람도 관심 있어 하더니 진입로가 좁고 전봇대도 있어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슨 묘지도 있다던데?”
“경매 진행 물건이 2개인데 하나는 임야여서 거기 현황조사서와 헷갈린 모양이네요. 이 토지는 아니에요.”
중개사의 지인이라는 사람은 현황조사서도 제대로 읽지 않고 경매 입찰을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감사합니다. 1등 하면 오겠습니다. 오지 않으면 떨어졌다고 생각하세요.”라고 유쾌하게 인사하고 호박마차에 올랐다.
호박마차는 밴드 합주를 마친 나를 태우고 적막한 밤공기를 찢으며 인천으로 달렸다.
“탁!”
캔맥주를 하나 텄다. 합주가 있는 날은 교감신경이 흥분한 탓인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공연 촬영 준비를 위해 영상 장비 및 배터리 등을 점검·충전하고 낮에 임장한 경매 물건 자료 조사를 하다 잠자리에 누웠다. 새벽 4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