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7. 인생은 어떻게 꼬이는가?
2017년 10월 13일 금요일, 맑음
투자가 아닌 이자를 보내는 날은 우울하다.
채권을 회수하지 못하면서, 언제 끝날지도 모를 채무 이자를 송금했다. 5,358,500원이었다. 그래서 미뤄둔 ‘고소장’을 접수하기로 했다. 다음 주 화요일이었다. 방배경찰서에 총기 해제 신청서를 접수하러 가면서 동부지검에 들려 고소장을 접수하기로 했다.
고소장을 출력해 고소인란에 도장을 찍다가 인조가죽이 닳은 도장집을 보게 되었다. 9년째 사용하는 사각 인감도장이며, 앞으로 1백억 대 계약을 할 귀한 몸을 너무 천하게 굴리는 것 아닌가 싶었다.
“가로 1.8cm 세로 1.8cm 정사각형에 길이 8cm 도장입니다. 케이스를 가죽으로 제작해 줄 수 있습니까?”
인터넷으로 마땅한 제품을 찾았으나 없기에, 가죽으로 카드 지갑을 예쁘게 만드는 공방 장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능합니다. 수량에 따라 단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개당 6만 원입니다.”
도진에게 선물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두 개를 주문하며, 이니셜도 찍도록 했다.
2017년 10월 14일 토요일, 맑음
용인 현장으로 가는 도중 홈플러스 식당가에 들렸다.
“제육쌈밥 주세요?”
식사하고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기 위해 걸어가다 양쪽으로 늘어선 의류 및 신발 매장 종사자들을 보며 ‘작은 점포에서 인생의 시간을 죽이지 않는 것’에 감사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트렁크에서 굴러다니는 구겨진 검은색 카우보이 모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총 소요 시간은 50분입니다.”
네비게이션이 용인 건축 현장에 도착하자 소요된 시간을 알려주었다. 현장은 4개 동 건물과 건물 사이 흙을 되메우고, 지하층 위에 1층 벽체를 세우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나무처럼 쭉쭉 뻗은 가설재 파이프가 파란 가을 하늘을 세로로 자른 풍경이었는데, 이대로라면 다음 주에는 1층 골조가 완성될 것 같았다. 이때, 골조 목수 오야지 재호가 나를 발견하고 건물에서 내려와 말했다.
“오늘 목수를 마흔두 명 투입했습니다. 별건 아닌데 인건비가 만 원씩 올랐고 철물도 계속 올랐어요.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인천에서 사장님을 겪어 봤고 또 호텔을 짓는다는 꿈을 믿기에 함께 하려고, 안 남아도 하고 있습니다.”
“손해 보면 되나? 내가 기억은 하고 있을게!”
“아아-뇨-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냥 알고 나 계시라고, 오셨으니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사실 되메우기 작업이 겹쳐서 이 많은 자재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것 등이 시간을 잡아먹었지요. 이럴 줄 알았으면 두 동씩 해 나가는 건데 그랬습니다.”
재호의 말을 뒤로하고 현장 사무실로 쓰이는 컨테이너 사무실로 들어갔다. 곧, 청바지를 입은 다섯 살 꼬마가 파란 자동차 장난감을 들고 들어왔고 이어 도진이 들어왔다.
“내가 처음 본 거 같은데?”
도진에게 물었더니 “어릴 때 보고 처음일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잠시, 도시적인 얼굴로 잘 크고 있다고 생각할 때였다. 도진이 사무실 구석에서 포장 상자에서 뭔가를 꺼내 펼치며 “형님 이게 아메리칸 스텐더드 수전입니다. 액정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아마존에서 직구를 한 크롬도금이 번쩍이는 해바라기 수전 세트였다.
“액정이 있으면 건전지가, 전원이 들어갈 거 아냐?”
나의 질문에 도진이 “안에 프로펠러형 발전기가 내장되어 수압으로 발전됩니다.”라고 말했다.
“아하, 자가발전 형식이구나. 자식들 대단한데? 이게 얼마야?”
“업자들은 세 배 남겨요. 70만 원 받는데, 15만 원밖에 안 해요. 배송비 포함해도, 그러니 4층은 이걸로 해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 그걸로 하고 5천만 원 더 받지 뭐!”
“아이, 우리 형님 해도 너무해~”
그렇게 8세트를 주문하기로 했고, 그 외에 천장 조명도 몇 개 추천했는데 “그런 건 너 알아서 해라.”라고 치웠다.
“그리고 형님, 이장단은 말씀대로 단풍놀이 비용이나 달라고 합니다.”
얼마 전 마을 이장단이란 작자들이 ‘지역발전기금’이란 허울 좋은 명분으로 돈을 뜯으려 한 일이 있었다. 생각하는 금액이 큰 것을 알았기에 박혁수 이장이 앉아 있는 상태에서 ‘3개 마을이면 백만 원씩 3백이면 모를까 못 준다’라고 한 엄포가 통한 모양이었다.
“그래? 나는 아예 안 받을 줄 알았는데 그런 가오는 없는 모양이네? 어쨌거나 롤렉스 하나 값 벌었다.”
“예, 그거하고 또 하나는 제가 일본에 가는데 레미콘을 치잖아요?”
“참, 가족 여행 간다고 그랬지? 언제 가지?”
“월요일에 가 목요일에 오는데요, 카톡이 되니 연락은 될 겁니다. 래미콘 비용이 잠깐만요~”
레미콘 금액은 194번지 11,576,840원, 나머지 2개 동은 11,995,280원으로 정확하게 배분하면 11,786,060원이었다. 또 설계사무소 소장에게 토지 소개비 1천만 원도 입금해야 했다. 내가 말했다.
“통장에 돈을 넣어야 입금하는데 오늘 안 될 수도 있어, 그러면 월요일 처리할게!”
목수들이 수돗물을 받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후 4시 30분이었다. 오야지 재호가 “출퇴근이 2시간씩 걸려 차라리 점심시간 30분 낮잠 안 자고 일찍 퇴근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5시 퇴근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요.”라고 말했다.
오야지 재호는 자기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 수 없는 사연임에도 온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강철 체력의 사내였다. 인천 [피렌체하우스] 골조를 담당한 인연으로 용인 건축 현장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 재호를 인천 공사 말미에는 볼 수 없었었다.
“임 사장이 연락되지 않는데요?”
어느 날이었다. 전 소장의 보고에, “뭐 사고치고 구속된 거 아냐?”라고 넘겨짚었는데 정말로 음주운전 사고로 구속된 것이었다. 그런 재호가 “사장님, 벤츠가 1억 합니까?”라고 물으며 흰색 SUV 티볼리 옆에 서더니 “카니발 7인승 샀다가 음주로 자동차 3대 들이받고 구속되어 해약했지요. 집행유예로 나왔는데 합의 보느라 거기서 번 돈까지 2, 3억 깨졌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내가 말했다.
“내가 인생 살아보니 말이야, 평온하게 살면 누구나 돈 좀 모으고 살 수 있어. 그렇지 못한 경우는 중간에 누군가에게 목돈 빌려줘 떼이거나, 막을 수 있는 사고를 저질러서 힘들어지곤 하더라고? 음주운전 하나 때문에 돈과 시간을 모두 버렸잖아? 얼마나 안타까워! 근데 벤츠 사려고? 이렇게 힘들게 일했으면 퇴근할 땐 벤츠 타고 퇴근하는 게 맞지! 하지만 지금 사면 공사 견적 높게 넣었다고 의심할 테니 공사 끝나고 사! 하! 하!”
건축주의 유쾌한 웃음에 재호가 “아니, 제가 아니고요. 저는 벤츠 값을 모르잖아요. 누가 물어봐서 사장님께 물어본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벤츠 세단은 5, 6천이면 사. 그냥 매장 가서 할부 조건 물어보면 돼.”
“그것밖에 안 해요? 도진 사장님 차보다 싸네요?”
“오픈카가 더 기술이 집약된 거야. 그래서 더 비싸.”
“할부하려면 신용 6등급 이상 되어야 하잖아요?”
“글쎄. 그것도 가면 다 알아봐 줘. 리스로 하면 될 거야? 이 차는 얼마 줬어?”
“2천3백입니다. 등록까지 2천6백 들었어요.”
“싸긴 싸다. 내 오토바이가 2천5백만 원인데! 하여간 벤츠 타고 싶으면 타야지.”
나의 말에 뒤에 서 있던 도진이 “벤츠 싸게 사게 해 줘요?”라고 끼어들었다. 재호가 “아아뇨, 저 아니고~”라고 뒤로 두어 발 몸을 뺐다.
인천 [피렌체하우스]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심한 정체였다. 그러니 나도 현장 확인은 일찍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루한 시간이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전화 연결해줘!”
운전할 때는 스마트폰 음성 기능이 편리했다. 어머니와 통화하거나 경매 투자로 생계를 유지하는 지인들과 통화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인동초는 “에이, 회장님, 저는 여자친구와 곤지암 매운탕 먹으러 갑니다.”라고 말해 지루한 운전을 즐겁게 했는데, 얼마 전 통화에서는 헤어졌다고 상심하더니, 여자도 더 나은 남자를 찾을 수 없었는지 다시 만나는 모양이었다.
“수원 고시원은 해결되었고? 요즘은 뭐해?”
나의 질문에 인동초가 “머, 공매로 경산의 75억짜리 25억에 받았어요. 공장인데 빌라 지을 수 있는 1종 주거지역...”이라고 근황을 말했다.
“오호, 큰 거 했네? 요즘 대출 조이는데 어떻게 해결했어?”
“그거 때문에 아주 죽을 뻔했습니다. 65% 받고 후순위로 사채 비슷하게...”
“쩐주가 누구야?”
“공장하던 사람들인데 처음에 두 명이 한다더니 돈 못 구해 다섯이 붙어 3억씩... 나 참 기도 안 차서. 돈 많다고 하더니 까보니 그 지랄입니다.”
“수수료라도 잘 받아야지?”
“2%.”
“5천 되나?”
“감정가의 2%죠?”
“1억4천, 좋네. 배신 안 하게 잘해야지?”
“부동산이 끼어 있어서 괜찮아요.”
“다행이다.”
“네. 많이 놀았잖아요. 에, 다 왔네요. 용인은 한 번 들르겠습니다. 가까우니까요.”
인동초. 부동산 경매 물건 보는 능력은 탁월한데 수익과 연결하는 기술은 약해서 그리 돈을 만지지 못하는, 또 번다고 해도 여자에게 털리고 살 팔자의 사내다. 반면, 여자에 대해 ‘여성혐오’에 가까운 사내는 호박마차의 핸들을 굳게 잡고 자신이 건축하고 분양 중인 인천 [피렌체하우스]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거의 세 시간이 지난 시각이었다.
https://youtu.be/UpNWCCBnqDY?si=X_COs9-qODzEkf4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