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6.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7년 9월 29일 금요일, 맑음
“대표님, 에쿼티 자금 3억5천만 원 입금하시면 됩니다!”
개성신협 안 계장의 전화로부터 아침 업무가 시작되었다. 문화은행 계좌에서 1억 원, 만국은행 계좌에서 4,126만 원을 송금했다. 나머지 금액 2억874만 원은 신우건설에서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이에 신우건설 김 대표가 전화를 걸어와 “대표님, 우리 계좌에 돈을 입금한 곳이 신협입니까? 그러면 이 돈을 다시 건축주에게 돌려주면 횡령이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즉, 공사비로 지급받은 금액을 다시 건축주 계좌로 입금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아닌지 묻는 전화였다.
“아니죠? 이미 건축주인 내가 공사비를 먼저 지급해 공사를 했잖아요? 그리고 그 공사비를 오늘 신협이 대출해 줬으니 건축주가 먼저 지급한 돈을 돌려받는 게 맞는 겁니다.”
이에 김 대표가 “그러면 우리에게 지급할 돈은 어떻게? 오늘 지급됩니까?”라고 물었다.
“전액은 어렵겠고요. 2천 정도 가능합니다.”
“도진 사장님도 가능합니까?”
“예, 그 정도 금액으로 지급하라고 하겠습니다!”
김 대표는 거액의 자금 이체에 잠시 멘붕에 빠진 듯했고, 나에 대한 믿음 또한 아직은 부족한 듯했다. 어쨌거나 돈 가뭄이 해결되었기에 설계비 22,400,000원도 도진이 대신 송금하고 거래 내역 확인증 사진을 텔레그램으로 보내왔다. 남은 설계비는 9,600,000원에 불과했다.
2017년 10월 3일 화요일, 맑음
‘3:35’
4시간 정도 잠을 잔 듯싶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불 꺼진 방 침대에 누워 ‘임차인 월세’나 ‘관리비 수금’에 대해 생각하다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밴드 활동과 연애를 하느라 매일 불어나는 이자와 받아야 할 돈 관리 못 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이래서 사업이 망하는 거야.’
언제부터 이런 일을 귀찮게 여기게 되었는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새벽 시간은 새어 나가는 돈을 막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성의 시간이었다.
마신 커피 덕분에 화장실을 가게 되었다. 들고 들어간 붉은 표지의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펼쳤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별 이라고 말하지만 /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 하루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박. 노. 해.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해 투쟁한다고 하여 지은 필명. 나는 수배 시절 박노해 시인으로부터 11박 12일 동안 합숙하며 선진노동자의 글쓰기에 대해 집중 교육을 받았다. 그 박노해 시인의 글을 읽으며, 나 자신이 쓴 [부동산경매비법 (2009. 4. 매일경제신문사 刊)]의 서문의 글귀가 생각났다.
“사람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일어난 기적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만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생에서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간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어느 날, 뒤를 돌아보니 기적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 하루하루 조금씩 좋아지자.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자. 그래서 밥솥을 사기로 했다. 신선한 야채 쌈을 먹기 위해 밥도 짓기로 했는데, 새벽에 일어난 후유증은 온종일 피곤을 느끼게 했다.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맑음
“형님, 어디에 계실 겁니까?”
근 10여 일 동안 현금을 만드느라 고생한 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 내일 당장 인천 [피렌체하우스] 선순위 근저당인 문화은행 대출금 감액등기를 할 돈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 드럼학원에 있을 거야. 그리 오면 된다.”
“거기 피아노 있나요?”
“왜?”
“저도 레슨하고 가면 늦을 거 같아서요.”
“있긴 한데, 피아노 가져와.”
휴대용 건반을 샀다고 하기에 그리 말하고 악보 가방을 챙겨 호박마차에 올랐다. 도진이 5만 원권 현금이 담긴 쇼핑백을 챙겨 벤츠 C200 카브리올레를 타고 학원에 나타날 때는 그로부터 1시간쯤 후였다.
구리농수산물시장 ‘전어 축제’ 공연곡 ‘아파트’의 빠른 비트를 따라잡느라 스틱으로 하이엣을 정신없이 두들기던 나는, “한 곡씩이라도 치고 가자.”라고 말했고 도진이 노래를 불렀다.
인천 [피렌체하우스] 입구에는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손을 잡은 여자가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서성거리다 길을 비켰다. 옆으로 호박마차와 도진의 벤츠 까브리올레가 스쳐 지나갔다.
“백만 원씩 담았습니다.”
도진은 현금을 여러 개의 봉투에 담아 가지고 왔는데, 봉투마다 5만 원권 20장씩 들어있었다. 모든 봉투를 열어 지폐를 세었고 “고생했다. 이것도 일이었을 텐데. 내일 필요한 돈은 264,000,000원 정도야. 맞추면 대충 맞출 수 있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도진이 “신협 안 계장이 3,000만 원 정도는 쓸 수 있다고 했어요. 내 것과 형님 거 쓰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래?”
“내, 대출받을 때 그랬잖아요? 그거 사실 우리 돈 이거든요?”
“이 돈은 나중에 절반은 너에게 줘야 하나?”
자금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 나이기에 그리 물었더니 도진이 “아뇨, 형님이 돈을 더 넣으셨어요. 한 번 맞춰봐야 하는데, 그래서 안 주셔도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내가 돈을 더 넣었으면 지분이 더 많아야 되는 거 아냐?”라고 말했더니 “아이, 왜 그러세요. 제가 도와 드릴 때도 있잖아요. 히히~”하며 엄살을 부리며 넘어갔다.
드럼학원에 가는 길에 왕갈비탕을 먹어 배가 부른 상태였다.
“찜 드실래요?”
도진의 의견에 양푼이 동태탕 식당으로 들어갔다. 빨간 셔츠 깃을 세운 여주인이 일어나 테이블을 비워주었다, 그리고 메뉴를 주문하자 “동태찜은 양이 많으니 알곤이 찜하세요.”라고 권했다.
소주 두 병을 비우고 밥 한 공기를 볶았다. 도진이 배가 고팠는지 아니면 찜 요리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나 맛있게 먹었다. 그동안 매일 현금을 뽑으러 다닌 수고를 치하하는 술자리였으므로 “맥주 한잔해야지?”라고 했더니 마다하지 않아 초밥집 ‘에비’로 향했다.
“생맥주 두 잔에 미니 사시미?”
동글동글한 얼굴의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주문하자, 주인장이 주방에서 나오며 “오셨어요?”라고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전 소장이 업자 손목을 잘 비틀던 모양입니다?”
대화는 용인 건축 현장 이야기로 돌았다. 도진으로부터 전해 듣는 현장소장 준열의 업체 단가 봐주기는 나의 심기를 매우 불편하게 했다. 인천 [피렌체하우스] 공사비가 증가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건축주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뒷주머니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에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내가 월급을 주는 것은 단가 관리를 하고 건축비를 낮추라는 것인데, 전 소장은 관리만 잘하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나 봐? 그러면 뭐 하러 고생하며 건축하냐? 그냥 종합건설에 모두 맡기면 되는 거지?”
“그렇죠, 그게 문제죠. 그래서 자기 업체 다 짤린건데,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새시 사장에게 집 보일러 교체해 달라고 하는 요구는 아주 엽기였어요. 하! 하!”
“그러게, 자기 집 보일러를 어떻게 업체에 교체해 달라고 하지? 그것도 공사를 마치지도 않은 업체에? 그렇게 약점 잡히면 제대로 단가가 먹히겠어? 자기 욕심부리지 말라고 월 5백을 주는 거 아냐?”
“일요일에 아내와 애들이 현장에 놀러 왔나 봐요. 박혁수 이장이 봤는데 차가 아우디래요. 형님, 현장소장 그 돈으로 못 삽니다!”
“씀씀이 큰 것은 알고 있어. 그런데 전 소장도 그런 현장소장이었구나~”
“그러니 형님이 돈이 말라 고생했어요. 내가 전 소장에게 그랬죠. 건축하면 돈이 남아야 하는데 형님이 돈이 없는 것은 소장이 잘 못 한 거라고. 돈을 잠궜어야 했는데 오히려 빌딩 판 돈까지 풀었잖아요? 업자들과 친하니 건축주의 고통은 모르는 겁니다.”
“이거 다음 판까지 못 가겠네?”
“형님, 아직은 아닙니다...”
초밥집 ‘에비’를 나왔다. 긴 연휴를 끝낸 실내포차 아주머니가 오지 않는 손님을 찾아 서성거렸다.
“푹 쉬셨던데 전어나 구워 주세요. 소주도 한 병 주시고.”
여주인을 밀고 들어가다시피 앉았다. 도진이 술잔에 소주를 따르며 “형님이, 저 큰 사업(인천 [피렌체하우스])을 하면서 전 소장에게 너무 큰 권한을 주셨어요. 그래서 아주 왕 노릇을 했지요. 그런데 용인은 그렇게 못하니 답답해하는 겁니다. 게다가 CCTV까지 달았잖아요. 개목걸이를 채웠으니 곧 잠잠해질 겁니다.”라고 말해, 대화는 다시 현장소장 준열의 문제로 돌아왔다.
용인 건설 현장에는 4개의 카메라가 설치되었다. 보안과 안전을 이유로 설치했으나, 눈에 띄게 불성실하게 관리하는 현장소장을 부리기 위함이 컸다. 도진이 “CCTV 설치하니 전 소장이 하 과장에게, 전에 뭐 하시던 분이냐고 물었데요? 하 하!”라고 웃었다.
나는 소주잔을 들이키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라고 잠깐 생각하다, “내일 일이 있으니 오늘은 이만하자!”라며 일어섰다. 자정이 조금 못 된 시각이었다.
https://youtu.be/UpNWCCBnqDY?list=PL7IGv76tfCC-VozwgHFXueaG6cr1hJYc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