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층 골조 폼 떼어내는 날

#동업건축 실패기

by 김경만

9. 1층 골조 폼 떼어내는 날



2017년 10월 20일 금요일, 맑음


술이 과했다.

아침이 다 가도록 침대에 누워 있다 저 멀리 컴퓨터방에서 스마트폰 문자 알림음이 몇 번 연속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용인 현장은 1층 골조 폼을 떼어내 2층으로 올려 조립하는 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이런 날은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어 관리자들이 각별히 신경을 써야 했는데, 소장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과 철근 골조 재호도 “화성인가 어디에 있다고 해요?”라는 도진의 보고처럼 현장을 벗어나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현장 CCTV 화면도 정막이 흐르는 느낌이 들어 쌔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유가 있었다. 그러니 공사 일정이 밀리는 것도 당연했다.


“형님, 시공사 경리가 오후 4시에나 사무실에 나올 수 있다는데요? 그리고 전표를 가진 전 소장이 오늘 서울에 일이 있다고 가서… 어떻게 하죠?”

도진이 돈을 돌리는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보고했다.


“무조건 3시까지 입금되어야 감액등기 접수한다. 법무사와 은행에도 그렇게 조치해 놨으니 어떻게 해 봐!”

방법은 도진이 직접 신우건설 사무실로 가 통장의 돈을 인터넷뱅킹으로 이체하는 것, 서울에 있다는 전 소장이 농협으로 움직여 타행 이체를 하는 방법이 있었다. 선택을 고민하던 도진이 ‘시공사 통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그러니 직접 농협으로 가 시공사 계좌에 있던 돈을 이체할 수 있었다. 자신의 몫을 잘 해냈다고 생각한 도진은 의기양양하며 “형님, 도장이 있었네요. 처리했어요.”라고 결과를 알리며 현장 상황에 대해 말했다.


“전 소장과 임 사장이 너무 붙어 다닌다고 하네요. 매일 술을 마시나 봐요? 그렇게 마시니 맛이 가지, 안 가겠어요? 전기 설비와 부딪치는 것도, 사람 붙여 작업하려면 철근 골조가 진행을 못 해 인부를 놀리는 일도 있답니다. 이런 이야기가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어요. 오늘도 보세요. 안전사고가 제일 많이 일어나는 날이 골조에서 판넬을 떼어내는 공정인데 두 사람 다 자리를 비웠어요. 이거…”


도진의 말에 내가 대답했다.


“내가 영상에 대한 느낌은 좀 있는데, 우리 현장 CCTV를 보니까 뭔가 정지된 것 같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배가 침몰하거나 조직이 망할 때는 쥐들이 먼저 도망가거나 3백 가지 위험 징후가 나타난다고 하잖아? 그러니 우리는 작은 문제가 계속된다면 선제적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 임 사장은 직접 만나서 라인을 전 소장을 탈 것인지, 건축주를 탈 것인지 결정하라고 해라. 그리고 전 소장은 정리하는 방향으로 가야겠다. 사람이란 게 바뀌지 않거든. 바뀌지 않는 놈을 뭐라 해 봐야 감정만 나빠진다.”


모든 결정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도진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신우건설 김 대표와 통화해 현장관리자 여유가 있는지 알아볼게요!”


점심시간도 훌쩍 지났다. 전기포트에 물을 끓이고 라면을 담갔다.



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흐림


어제저녁 변화하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나였다.

반면에 삶을 절대 변화시키지 않는 한 사람이 전화했다. 10시가 넘은 시각이었기에 강제 모닝콜이 되었다.

“어, 잤냐?”

“예, 아버지!”

“별일 아니고 산티아고 읍에 갔다 오는 디 맥주 한잔했다. 생각해 보니 이제는 맛있는 것도 없고 인생이 별 재미가 없다. 그러니 너도 돈만 벌지 말고 인생을 재미지게 살았으면 한다. 여자도 만나고 말이다…”


옛사람의 생각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러함에도 인내를 가지고 통화하며 어제 찍은 영상 데이터를 옮기거나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보기도 했다.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맑음


도진이 일찍 용인 현장에 도착했다.

3개 동은 2층 골조 폼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고 나머지 한 동은 레미콘 타설을 위해 펌프카가 대기하고 있었다.


“임 사장, 잠깐 나하고 이야기 좀 합시다.”


도진이 골조를 담당하는 재호를 흰색 벤츠 카브리올레에 태우고 카페로 가더니

“현장이 힘차게 돌아가지 않는 것 같다고 김 사장님이 많이 걱정하십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재호가 “처음엔 좀 그랬는데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설비나 전기 사장과 화해도 했고요.”라고 말했다.

같은 시각 나는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에 셀프 주유를 하고 자동 세차기를 통과해 용인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도진에게 전화를 걸어 “너, 현장에 없네?”라고 넘겨짚었더니 카페에서 재호와 대화 중이던 도진이 “네. 놀고 있어요.”라고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오셨어요?”라고 되물었다.


“아니, 거의 다 와 간다.”

“그럼 카페로 오세요. 임 사장도 있어요?”


이탈리안 레드 광택이 살아 있는 벤츠 SLK 스포츠카 한 대가 카페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모카 한 잔 마실까?”


카페 한쪽에 있는 ‘못생긴 두 사내’에게 손을 흔들고 음료를 주문했다. 여주인이 “계시는 곳으로 가져다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내가 카드와 영수증을 받아 들고 “테이크아웃 컵으로.”라고 말하며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도진이 “이야기했습니다. 문제없다고 합니다.”라고 재호와 대화가 끝났음을 알렸다.


“임 사장! 전화번호 줘봐!”


인천 [피렌체하우스] 골조 공사를 했음에도 전화번호를 묻지 않던 건축주가 전화번호를 물으니 의외였다.

내가 “앞으로 전화할 일 많이 있을 거야!”라고 덧붙였다. 재호가 “전화번호가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며 스마트폰을 뒤적거리자 도진이 “제가 알려드릴게요.”라며 번호를 불렀다.


전화번호 입력을 마친 내가 재호를 향해

“전 소장과 너무 놀지 말고 라인 잘 타라고, 일 계속하려면?”이라고 말하고 도진에게는 “선물 가져왔다!”라고 말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이게 뭡니까?”

도진의 질문에 “응, 내 것 하나 하면서 네 것도 했다. 이니셜까지 박혀 있는 명품이야.”라고 대답했는데 빨간 가죽끈으로 묶인 도장집이었다.


도진이 “감사합니다. 모양이 좀 빠지셨나 보네요?”라고 되물었다.

“어, 인조가죽이 다 뜯어져서 멋진 거 하나 구하려고 인터넷을 다 뒤졌는데 없어서 가죽 공방에 직접 주문했다.”


그러는 사이 재호가 먼저 현장으로 돌아갔다. 동업자 두 사람도 곧 일어섰다.


건축 현장 맞은편 중학교에서 운동회를 하는 모양이었다. 진행자의 고함과 음악 소리, 색색 팀복을 입은 학생들의 응원전이 어우러져 활기를 뿜어냈다. 나는 도로 가장자리에 스포츠카를 세우고 현장으로 들어갔다. 뒤에는 도진과 전 소장, 하 과장이 따랐다.


계속해서 내부를 살폈다. 바닥에는 못을 흩뿌려 놓은 듯 여기저기 굴러다녔고, 창호 쪽과 벽기둥 쪽 콘크리트는 제대로 채워지지 않은 것이 보였다. 전 소장이 “미장이 해결합니다.”라고 나섰다. 내가 “미장이 하는 걸 떠나 제대로 바이브레이터를 꽂았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지적하고 사진 몇 장을 찍은 후 벤츠 SLK 로드스터에 올랐다.


도진이 트렁크에 오키나와 여행 선물을 실으며

“형님, 이거 살 게 없어요. 백화점이 안양보다 더 못해요.”라고 말했다. 무슨 빵 같은 음식이었다.


내가 “안양보다 못한 게 아니고 네가 수준이 높아졌겠지. 여기서 인천까지 늦게 가면 3시간 걸리더라. 그래서 일찍 왔다 가는 거야!”라고 말하며 안전벨트를 끌어당겼다.


도진이 “알겠습니다. 레미콘 비용은 문자 보냈으니 입금해 주셔요? 그리고 저에게도 (생활비) 천만 원 정도…”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돈 없어? 돈 없으면 여기에 왜 있어?”


나의 타박에 도진이 “아이 형님, 또 왜 그러세요. 흐흐. 부자 형님 있어 좋긴 하네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가 “알았어. 오늘은 귀찮아서 내일 하고 문자 줄게!”라고 말하며 가속 페달을 밟았다. 곧 도진이

“금주 25일과 28일 타설 예정분 360루베 25,106,400원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맑음


용인에 지어지는 [피렌체하우스] 2개 동은 2층 레미콘 타설이 한창이었다.

안전모를 쓴 동업 건축주 도진이 두 고향 친구의 부러운 시선을 뒤로한 채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같은 시각 나도 칸처럼 윗머리를 세우고 푸른 타바트 선글라스까지, 한껏 멋을 낸 채 심장의 피보다 더 붉은 벤츠 SLK 로드스터의 가속 페달을 밟으며 용인 현장으로 달리고 있었다.


“레미콘 방금 끝냈습니다. 서울에 좀 다녀오려고요?”

현장으로 진입하는 삼거리에서 신호 대기 중인 전 소장의 보라색 BMW X6를 발견하고 운전석 유리창을 내렸더니 알아보고 그렇게 말했다.


현장에 도착한 내가 카메라를 챙겨 현장을 한 바퀴 돌았다. 곳곳에 ‘안전제일’이라는 표지가 설치되었고 서포트도 보강되어 있었다. 염려했던 거실과 안방 조망은 산을 보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3D 도면이 뒤집혀 그려진 것이었다.


“거실은 이만하면 괜찮죠?”

뒤따르던 도진의 말에 “좁지, 간격 봐라.”라고 대답하며 사진 몇 장을 찍고 밖으로 나왔다.


골조 팀 재호가

“사장님, 이거 스포츠카예요? 두 명 타네?”라고 관심을 나타냈다.


의심 섞인 발언에 마음이 상한 내가

“어허, 이게 스포츠카 삘은 좀 부족하지만 지붕도 열린다고.”라고 말하며 루프탑 스위치를 올렸다. 길 가던 주민이 발걸음을 멈추고 지붕이 열리는 것을 구경했다. 재호 또한 마음에 들었는지


“저한테 파세요. 얼마 받으실래요?”라고 물었다.


“차값만 7천6백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울 때 두 번이나 팔려고 했는데 아무도 사 가지 않더라. 돈은 공사비에서 깔 테니!”라며 들고 있던 키를 던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도진이

“임 사장 엮였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사무실로 향했다. 도진과는 고향 친구이며 함께 ‘중고컴퓨터’ 수리점을 동업한 광열이 사무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

“사장님은 무슨 연예인 같아요. 많이 변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내가 “그럼 변해야지. 옛날 중고 하드 끼워 달라던 허접한 사람 아니다?”라고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광열이가

“하여간 사장님은 컨셉이 독특하세요.”라며 고개를 좌우로 젖히며 손을 내밀었다.


분할 납부 신청한 농지전용부담금 납부 통지서도 나왔다.

내 분이 7,494,780원, 도진 분이 7,535,370원이었다.


https://youtu.be/W6htnh7srtE?si=8fRloaHREb_T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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