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10. 레드카펫
2017년 10월 26일 목요일, 흐림
과식도, 과음도 하지 않은 아침은 가벼웠다.
뜨거운 물 한 잔을 끓여 마시고, 도진이 오키나와에서 사 온 빵과 커피를 접시에 담아 서재로 향했다.
용인 빌라 부지 농지전용부담금 7,494,780원을 농어촌공사 계좌로 입금했다. 도진 몫 7,535,370원도 그의 계좌로 송금하며 납부하라고 문자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네, 납부하겠습니다. 이장들도 다녀갔어요. 300만 원 중 100만 원은 단풍놀이 회비로 쓰고, 나머지는 술값이겠죠.”
이장들이 ‘마을 발전기금’이라며 요구한 돈이었다.
“장례차 막고 돈 뜯은 이장 기소됐어. 요즘 이런 문제 이슈야. 앞으로 조심해야 할 거다.”
도진은 듣기 좋은 말인지 진심인지 모를 대답을 했다.
“그래도 무리한 요구는 못 하게 했습니다. ‘회장님이 계신데 선 넘으면 호텔에서 보게 될 겁니다’라고 했어요.”
외벽 색상도 확정했다. 기존 회색을 버리고 지중해풍으로 방향을 틀었다. 포토샵으로 색을 입혀 보내자 3D 이미지가 돌아왔다. 그제야 건물이 살아 움직였다.
2017년 10월 30일 월요일, 맑음
소시지를 튀기고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기분이 오를 무렵 도진의 전화가 왔다. 박혁수 이장, 그 부인, 빌려 간 돈, 잠겨 버린 자금. 상황은 명확했다.
“백 퍼센트다. 박혁수 이장도 껍데기 됐네. 여자가 돈을 잠갔다는 건 남편의 권위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통화는 길어졌고, 캔맥주 하나로 이어 가는 대화는 쓸쓸했다.
“내일 현장 오세요. 벽돌이랑 지붕 색 정해야 합니다.”
“공사비도 넣어 두겠다.”
도진의 자금은 이미 말라 있었다. 그의 몫까지 내가 선지급해야 했다.
“공사비는 분양과 상관없이 지급해야 한다. 팔리고 안 팔리고는 건축주의 운이다.”
자정이 가까웠다.
2017년 10월 31일 화요일, 맑음
엽총을 경찰서에 반납하지 않은 꿈을 꾸고 식은땀을 흘리며 깼다.
사냥철이 시작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개성신협을 들렀다가 외곽고속도로를 타고 용인으로 향했다. 석양이 단풍 든 산을 붉게 태우고 있었다. 그리고 언덕 아래, 내 호박마차가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오렌지색 차체, 낮게 깔린 배기음, 언덕을 기어오르는 둔중한 엔진음.
“그르르르르-ㅇ—”
하교하던 중학생들이 고개를 돌렸다.
현장 인부들은 이미 퇴근한 시간이었다. 나는 직접 자바라 대문을 밀어 열고 호박마차를 현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세륜기부터 건물 입구까지 바닥에 먼지 차단막이 길게 깔려 있었다.
“레드카펫 깔아 놔라.”
오전에 농담처럼 던진 말을 도진이 실행해 놓은 것이다. 콘크리트 먼지 위에 깔린 흰 차단막은 정말로 레드카펫 같았다. 나는 일부러 천천히 문을 열고, 영화 한 장면처럼 내려섰다.
“올라가 보자.”
4층 골조 위에 섰다. 노을이 콘크리트에 붉게 스며 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한 동의 바닥만 담겼다. 이 건물의 덩치는 카메라로 다 설명되지 않았다.
컨테이너 사무실로 내려와 외벽 자재와 색을 결정했다. 도진은 진회색 모던 계열을 주장했다. 나는 붉은 지붕과 노란 석재 느낌의 지중해풍을 고집했다.
“여긴 숲이다. 도심이 아니다. 별장 느낌이 맞다.”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안 팔리면 형님이 책임지세요.”
복층 에어컨은 거실만 매립형, 나머지는 벽걸이로 정리했다.
“술 한잔 하시죠?”
“안 돼. 내일 사냥 간다.”
나는 다시 호박마차에 올라탔다. 엔진을 걸자 묵직한 진동이 허리를 통과했다.
언덕을 내려오며 백미러에 건물 골조가 작게 멀어졌다.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은 완공도, 분양도 아닌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확인 같은 것이었다.
2017년 11월 6일 월요일, 맑음
개성신협에서 용인 토지 등기 권리증, 신탁계약서, 화재보험 계약서를 받아 왔다. 도진의 서명도 필요해 함께 챙겼다.
“대표님은 만년필을 쓰시잖아요. 실수하면 수정이 어렵습니다.”
“만년필은 필압과 잉크 때문에 위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https://youtu.be/Ycmg082sWKE?si=gS48fFz7aBBDNtI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