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토지 현황측량

#디벨로퍼 라이프

by 김경만

6. 토지 현황측량


2016년 7월 4일 월요일, 흐리고 오후에 비


빨간 벤츠 SLK 로드스터 핸들을 롤렉스 시계를 찬 손이 부드럽게 조작하고 있었다. 하얀 바지와 셔츠, 빨간 넥타이에 파란 스트라이프 재킷 차림이었다.

세 번째 피렌체하우스가 건설될 현장으로 가는 길에 낯선 번호의 전화를 받았다.

“오후에 비가 올 것 같아 오전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가림막이 설치돼 있네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까?”

국토정보공사 직원이었다.

“그러셨군요. 제가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으로 40분 걸린다고 나오네요?”라고 말하며 가속페달을 밟았다. 현장에서 만날 사람은 또 있었다. 금요일에 만난 건설사 대표 진성이었다. 그래서 다소 일찍 안양 피렌체하우스를 나섰다.


현장에는 측량 장비가 올려진 트라이포트를 조작하는 사람과 망원경처럼 생긴 기기로 계측 지점을 확인하는 사람, 그리고 계측 지점을 표시하는 사람까지 세 명이 연두색 형광 조끼를 입고 움직였다. 비는 이슬처럼 간간이 떨어졌다.


노트북처럼 생긴 기기를 조작하던 직원이 물었다.

“전에 측량하셨네요?”

“그랬을 겁니다. 그러나 다시 현황을 확인하려고 신청한 것입니다.”


기준점과 경계지점은 콘크리트 타설로 말목을 박기 어려운 곳이 많아 스프레이로 X 표시를 하다가 기존 표시를 찾기도 했다. 토지 뒤편 빌라의 축대와 토지 경계선은 거의 일치했지만, 아랫부분 축대는 일부가 토지 안으로 들어와 쌓인 상태였다. 그렇다고 축대를 옮길 수는 없어 “틀려도 어쩔 수 없죠.”라며 영역만 표시했다.

측량이 끝나자 직원이 말했다.

“사장님,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측량 보고서는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반팔 와이셔츠 차림의 진성은 불량스러운 인상의 젊은 남자와 함께 나타났다.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던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백 씨라는 사람은 아무 권한이 없죠? 공유토지 승낙서를 구청에서 빼왔다고 해서 보여 달라 했더니 없다고 하더군요. 건축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준공 때는 공유지분을 매입해야 할 겁니다.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면 보상해야 하니까요.”

“공유지분으로 도로가 확보됐는데 굳이 사줘야 한다니, 그런 건 모르겠습니다.”

“매수청구권이 있습니다. 도로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면 매수청구 후 공탁하면 됩니다.”

“그래요? 공시지가로 해도 금액이 상당할 텐데 좋은 소식은 아니군요. 시간이 있으니 알아보겠습니다.”


그때 현장소장 준열이 도착했다. 현대백화점 종이 가방을 든 남자를 목수라고 소개했다.

“점심 먹으러 갈 건데 식사했어요?”라고 묻자

“우리는 먹고 오는 길입니다.”라고 했다.


진성과 식당으로 가는 길에 한빛 부동산에 들렀다. 중개사가 말했다.

“사장님, 28억에 안 파실래요? 컨설팅 비용 등으로 다운계약도 가능하다는데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런 꼼수는 이미 먼저 한 사람들이 있겠죠. 국세청이 모르겠습니까? 세상에 비밀은 없습니다. 그냥 제대로 계약하고 양도세 내는 게 편합니다.”


태양 가까이 올라가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이카루스가 왜 추락했는지 모른다. 더 높이 오르려면 밀랍 따위로 날개를 붙여서는 안 된다. 하늘을 우러러 두 점 부끄러움 없이 살아야 한다.


갈치조림을 좋아하는 나는 두 사람이면 늘 그 메뉴를 주문한다. 식사하며 진성의 이야기를 들었다. 백 회장에 대한 태세 전환이 눈에 띄었다. 깍듯하던 호칭은 사라졌고, 건축을 막을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부터 알았을 텐데 왜 이제야 태세를 바꾸지? 애초에 땅을 살 돈도 없었겠지.’


돈 냄새를 맡고 끼어드는 부류라는 판단이 들었다. 사업 이야기를 하면서도 건달, 동생, 공사 대금 등의 뜬구름 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전형적인 사기꾼의 화법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성공하셨습니까?”라며 나를 추켜세우며 조직과 자금 상황을 떠보려 했다.

나는 짧게 답했다.

“조직과 거주지는 모두 보안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막 도착한 중개사 복남과 함께 다시 한빛 부동산으로 들어갔다. 맥심 봉지커피를 타 마시며 진성에게 물었다.

“내일 시공사에서 착공계 접수합니다. 공사는 문제없으니 구청은 갈 필요 없겠죠?”

늦게 온 복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진성이 답했다.

“그렇죠. 공사는 막을 수 없습니다. 건축허가가 나왔으니까요. 다만 준공과 분양 때 도로를 매입해야 하니 준비하시라는 겁니다.”

나는 정리하듯 말했다.

“결국 토지 매입 비용을 감안해 땅값을 낮추라는 이야기군요. 행정사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토지를 매입하게 되면 공사원가에 포함되니 굳이 미리 할인해 팔 필요는 없겠네요.”


그 말로 토지 매매 협상은 끝났다. 아니, 애초부터 실체가 없던 협상이었다. 그저 사기꾼들이 모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토지 측량 현장을 보았고 건축주의 실체도 확인했다.


오후가 되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현장소장 준열이 말했다.

“건축주님, 운 좋으십니다. 측량 끝나자마자 비가 오네요.”

“내가 운 하나는 죽이잖아? 안양 피렌체하우스도 비 한 방울 안 맞고 골조 올렸잖아?”


과거를 떠올리며 커피를 볶는 작은 카페로 이동했다.

목수는 전남 장성 출신이라 했고 “광주일고 나왔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철근 골조 공사를 담당할 예정이었다. 준열이 계약서를 설명했다. 서비스 면적이 많아 골조 공사비는 약 4억이었다.

“공사비 추가는 없죠?”라고 확인했고, 정확한 계약은 금요일에 하기로 했다.

첫인상은 성실했다. 오히려 준열은

“이 견적으로 공사가 가능할지 걱정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신우건설 김 대표도 현장을 둘러보고 설계사를 만나 착공계 서류를 전달할 겸 카페로 들어와 노란 서류 봉투를 건넸다.

“뭐 드실래요?”라고 묻자

“통장과 전표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급격한 피로가 밀려왔다.

철근 골조 계약 관련 서류는 보이지 않았지만, 준열은 달랐다. 불꽃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금요일에 철근과 레미콘 업체 사장들 부르겠습니다. 외상으로 공사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ZG1rMt9Fw3w?si=99Z-0BnIRkWQeTln

20160704_115949.jpg
20160704_120035.jpg
20160704_120111.jpg
20160704_122051.jpg
20160704_122134.jpg
01-극한직업 건물주 입체 표지.jpg
02-꼬마빌딩 건축 입체 표지.jpg
03-경매비법.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5. 시공사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