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벨로퍼 라이프
7. 자재업자들과의 협상
2016년 7월 6일 수요일, 오전 비, 오후 흐림
습한 기운에 몸을 뒤척이며 일어났다.
창밖으로 빗소리가 들렸다. 외부 일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침대에서 한동안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 김영준 과장의 전화가 왔다.
“신협에서 연락 왔나요?”
“부재중 전화가 한 번 있었는데, 그 뒤로는 연락이 없습니다.”
“그래요? 상무님 전화번호를 드릴 테니, 연락이 없으면 직접 해 보세요.”
동진신협 상무의 번호를 받아 두었다. 은행 업무 마감 시간까지 기다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결국 문자를 보냈다.
“김영준 과장으로부터 건축비 대출과 관련해 소개받은 사람입니다. 시간 되시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곧 답장이 왔다.
“외부 회의 중이었습니다. 내일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사실을 김영준 과장에게 전하자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 제가 그곳을 나온 상태라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싫다고 하면 곤란해서요.”
인천 토지를 중개하겠다는 공인중개사 복남도 전화를 걸어왔다.
“사장님, 구청에 같이 가자고 해도 안 가셨다면서요? 공유지분 진입로 토지 매입 문제도 알아보신다고 했는데요?”
“구청에 안 간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건축에는 문제없다고 스스로 말했으니 갈 필요가 없다고 한 겁니다. 그리고 진입로 공유지분을 매입해야 한다면서 땅값을 깎아 달라니, 매수하지도 않은 공유토지를 이유로 먼저 가격을 낮추라는 게 말이 됩니까?”
복남은 난처한 듯 말했다.
“서로 조금씩 협의해서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아니지요. 매입해야 한다면 얼마에 사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내가 공사를 하고 토지를 매입하면 공사원가에 포함시켜 손해가 없지만, 지금 그 주장대로 매매하면 손해가 발생합니다. 이 거래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분들도 사실 살 마음이 없거나 자금이 없는 겁니다.”
그러자 복남은 말했다.
“마음이 없었다면 여섯 번이나 현장에 왔겠습니까?”
글쎄다. 토지를 사겠다고 나타난 이들은 온전한 매수자가 아니라, 사건에 연결되어 부당이득을 노리는 무리처럼 보였다.
토지 매매 계약금으로 2억 원을 걸겠다는 남자의 전화도 받았다.
“이번에는 조건 없이 매매하겠습니다. 기회를 한 번 주십시오.”
“이미 착공계를 넣었고 설계비도 지급했습니다.”
싸늘하게 말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회장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토지 매매의 떡밥이 식어 가는 와중에, 현장소장 준열이 말했다.
“금요일에 철근과 레미콘 업자를 만나 외상 계약을 진행합니다.”
시간은 이미 나를 앞질러 달리고 있었다.
2016년 7월 7일 목요일, 맑음
몸으로 하는 일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밴드 공연은 모레였다. 드럼 실력이 단기간에 늘 방법은 없었다. 메트로놈 속도에 맞춰 연습을 이어갔다. 스네어 테두리에 스틱 자국이 깊어지며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그때 건축설계사 임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감리자와 아는 사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지연돼 저더러 감리를 맡아 달라고 합니다. 조건은 같습니다. 괜찮으시면 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연습을 멈출 수 없어 말했다.
“외부에 나와 있습니다. 3시 30분까지 처리하겠습니다.”
인천 수도사업소에서도 전화가 왔다.
“수도관 인입 공사를 하려면 사유지와 2미터 이상 떨어져야 합니다. 34-59번지가 사유지로 둘러싸여 있는데 정확한 지번을 알려주십시오.”
진입로 지번이 전달되지 않아 맹지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토지 현황도와 지번을 이메일로 보내기로 했다.
동진신협 강 상무에게도 전화가 왔다.
“토지를 봤습니다만, 아주 좋게 판단되지는 않습니다. 40억 원이 필요하신다고요?”
“아닙니다. 공사비 17억 원, 선순위 대출 대환 11억 5천만 원입니다. 총 28억 5천만 원이면 됩니다. 40억은 토지 가격까지 포함한 금액입니다. 토지는 제 소유입니다. 분양가는 55억 원입니다.”
상무의 말투는 미지근했다.
“내일 아침까지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김영준 과장에게 말했다.
“다른 은행도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합니다.”
“처음엔 다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우리가 들어가 설명하는 겁니다.”
건축자금이 문제였다. 큰 수익을 앞에 두고도 토지 매도 제안에 흔들리는 이유였다. 복남과는 내일 오후 2시에 인천 현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2016년 7월 8일 금요일, 맑음
인천의 태양은 미친 듯이 이글거렸다.
약속 시간에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다. 현장소장 준열과 업자들은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철근 도매업체 대표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고, 레미콘 대표는 준열 또래였다.
“철근과 레미콘 물량이 얼마나 됩니까?”
“총 2억 2천 정도입니다. 철근 1억 2천, 레미콘 1억입니다.”
골조 공사비는 약 6억 원이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나는 말했다.
“제가 말하면 곧 법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신용은 지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금이 막혀 부탁을 드립니다. 금융권과 연결되지 않아 돈이 없습니다. 담보나 연대보증, 원하는 보증은 해드리겠습니다. 피렌체와 안양에 빌딩 두 채가 있습니다.”
철근 대표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물주 연대보증이면 됩니다.”
레미콘 대표도 1회 물량 선투입을 약속했다. 설비업체는 후불로 진행하기로 했다. 당장 기초공사는 가능해졌다. 목수 대표가 말했다.
“그래도 수도는 있어야지요.”
자재업자들을 보내고 복남을 카페로 불렀다.
“매수자는 공유지분 매입을 이유로 가격을 낮추자고 합니다. 서로 좋게 가시지요.”
“한빛부동산에서 확인했습니다. 공유지분에 권원은 없습니다. 건축도 문제없다고 구청에서 확인했습니다. 미래의 위험을 이유로 가격을 깎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저는 그냥 짓겠습니다. 사장님은 분양이나 해 주세요.”
복남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곧 백 회장을 만났다. 그는 염상섭과 작성했다는 합의서를 내밀었다.
“명의자는 바지일 뿐, 실제 소유자는 나라는 합의서입니다. 인감증명도 있습니다. 공사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웃었다.
“합의서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는 없습니다. 등기부는 공시력은 있어도 공신력은 없습니다. 하지만 권리는 외부에 드러나야 합니다. 그런 합의서는 당사자 간 효력일 뿐입니다.”
그는 더 말하지 못했다. 음모의 구조가 드러났다. 건축이 어렵다는 말도, 진입로 매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모두 근거 없는 것이었다.
마루횟집에 들렀다.
“얼마짜리로 드릴까요?”
“3만 원이요.”
“3만 5천 원에 참치 섞어 드릴까요?”
“그러세요. 어차피 못 갚을 빚인데.”
소맥을 두 잔 연거푸 마셨다. 루이비통 장지갑 안에는 3천만 원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이미 신우건설 계좌로 1천만 원을 송금했다.
“대출은 아직 안 나왔습니다. 빈말은 못 해서 일단 천만 원 보냅니다.”
또 한 잔을 마셨다. 친구 션이 문자했다.
“10시에 출발합니다.”
“나는 술 마시고 잘 거다. 비밀번호 문자로 보낼 테니 게스트룸에서 자라.”
주성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잃은 아이가 말했다.
“그냥 자고 싶어요. 자고 일어나면 아빠가 옆에 있을 거예요.”
나 또한 그랬다. 누구의 위로도 필요 없었다. 그저 잠들고 싶었다.
그렇게 혼자 잠이 들었다.
https://youtu.be/_X54HZ-m0EM?si=aJC2tKvgefPVhL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