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정보공개청구

#디벨로퍼 라이프

by 김경만

8. 정보공개청구



2016년 7월 11일 월요일, 맑음


대출이자 중 급한 계좌로 이체하고, 채무자 염상섭의 주민등록 초본을 발급받기 위해 보정명령서를 출력했다. 이번에는 주민등록번호가 제대로 적혀 있었다.


안양4동 사무소에서 초본을 발급받았다. 그렇게 확인한 채무자의 주소는 목동이 아니었다. 오피스텔이었는데, ‘동거인 백부’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조카의 주소지로 전입한 듯했다. 나는 밖으로 나오며 “이놈 잡았다!”라고 쾌재를 불렀다. 소장 송달이 제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민등록 초본을 PDF 파일로 스캔해 전자소송 사이트에 업로드했다. 그러던 중 낯선 전화를 받았다.


“일경 엔진히어링입니다.”


나는 “그래서 거기가 뭐 하는 곳입니까?”라고 되물었다.


“네. 도시가스 신청하셨죠?”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도시가스관 매설 업체였다. 이곳도 상수도 배관과 마찬가지로 건축허가 토지까지 진입할 수 없는 문제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내가 말했다.


“34-59번지가 진입도로입니다. 공유토지이고 저도 지분권자입니다.”


그러자 상대는 이렇게 답했다.


“지분이면 공유자들에게 승낙서를 받아야 합니다.”

“엥? 건축을 위해 토지사용승낙서를 받았으니 그것으로 갈음되는 것 아닌가요?”

“글쎄요. 그러면 토지사용승낙서 원본을 주실 수 있으세요?”

“원본이 건축과에 있는데 어떻게 줍니까?”

“원본이 필요한데요.”

“그건 말이 안 되죠.”

“도시가스 공사에서 그렇게 요구하면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토지사용승낙서는 하나 받아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시가스 공사업체의 말을 듣고 구청 건축과 담당 공무원과 통화를 했다.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도로지정 동의서는 오수·폐수관 설치 등을 위한 것이고 도시가스에 대한 동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서류는 외부로 나갈 수 없습니다. 법원 명령이라면 몰라도요.”


나는 건축주 명의변경을 거부한 구청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이후 틈만 나면 법적 절차를 운운하곤 했다. 다시 도시가스 건설업체와 통화를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사장님, 사장님도 필요하실 것 같으니 정보공개를 청구해서 한 부 가지고 계세요.”

“정보공개청구요? 알겠습니다. 내일 곧장 구청에 가겠습니다.”



2016년 7월 12일 화요일, 맑음


민원 담당 공무원은 친절하다 못해 긴장한 듯 보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민원인은 흰색 바지에 린넨 셔츠, 연녹색 재킷을 입고 오른손에는 하늘색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려고 합니다.”


공무원은 약간 머뭇거리며 말했다.


“네. 저도 처음 맡는 업무라서요. 여기 신청서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그가 신청서 서식을 내밀었다. 내가 아침 일찍 구청에 나타난 이유는 ‘도시가스 인입공사를 하려면 해당 토지 공유자들의 동의서가 필요하다’라는 말을 듣고 공유토지 34-59번지에 대한 토지사용승낙서를 열람하고 복사해 제시하려는 목적이었다.


신청서 작성을 마치자 공무원이 안내했다.


“정보공개가 되면 연락이 갈 겁니다. 그 전에라도 전화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친절한 안내를 뒤로하고 구청을 나왔다. 날씨는 지독히 더웠다.


“부아악— 츠츠츠츠— 부아아앙—”


벤츠 SLK 로드스터의 광폭 타이어가 이글거리는 태양에 늘어진 아스팔트를 움켜쥐며 동진신협으로 향했다.

동진신협에 들어서며 눈이 마주친 여직원에게 물었다.


“강 상무님 어디 계십니까?”


여직원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외출하셔서 아직 돌아오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상무실이 따로 있는 구조는 아닌 듯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기다렸다. 은행 업무 마감 시간이 지나자 창문에 블라인드가 내려졌다. 그때 미팅 결과가 궁금했던 김 과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어떻게 되셨어요?”

“외출했다는데 전화도 안 받네.”

“그래요?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었고 잠시 뒤 다시 연락이 왔다.


“이사장실에서 회의 중이시랍니다.”


여직원을 통해 사내 전화로 확인한 모양이었다. 곧 여직원이 원두커피를 가져왔고 뒤이어 강 상무가 나타났다.


“대표님, 이쪽으로 오시죠.”


곱슬 파마머리에 피부는 관리받는 듯 투명했다. 창구 한쪽의 6인용 탁자에 앉았다. 옆자리에는 젊은 직원이 동석했다.


강 상무가 물었다.


“에코티 자금이 조금 부족한 것 같은데요. 잠실 어디에 있는 건물입니까?”

“잠실 성당에서 기존 신협 못 가서 오른쪽입니다.”

“번지수를 말씀해 주시죠.”


곧 젊은 직원이 말을 받았다.


“건물들에 대출이 많이 있으시더라고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아파트는 아예 깡통입니다. 그래도 이만한 채무자 구하기 어렵습니다.”


나의 뻔뻔한 말에 강 상무가 웃으며 물었다.


“필요 자금이 얼마입니까?”


나는 녹색 재킷 왼쪽 포켓에서 몽블랑 만년필을 꺼내 사업계획서 뒷장에 선을 그으며 말했다.


“토지 대출이 11억5천 있습니다. 공사비는 17억 필요합니다. 그러니 28억5천만 원을 빌려주시면 됩니다. 예상 분양가는 55억입니다. 이보다 안전한 대출이 어디 있습니까?”


젊은 직원이 물었다.


“공사 자금은 우리가 직접 하도급 업체에 지급해도 됩니까?”

“그럼요. 저에게 돈을 줄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는지만 확인하면 됩니다.”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주변 조건은 어떻습니까? 분양가는 적정한지 알아보셨습니까? 근처 경매 낙찰가격은 어떤가요?”


나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주변엔 10년 이상 된 빌라뿐입니다. 실평수 15평에 1억5천이면, 막말로 그냥 다 나갑니다. 요즘 이런 가격의 집이 어디 있습니까?”


강 상무도 거들었다.


“울릉도에 지어도 건축비는 같아요.”


나는 쐐기를 박았다.


“땅값이 평당 200만 원인 용인에서도 이런 빌라는 1억5천에 팔립니다. 그런데 인천은 평당 800만 원입니다. 거기서 1억5천이면 정말 싼 겁니다.”


직원은 더 물을 것이 없다는 듯 눈만 껌뻑였다. 강 상무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돌아가 계시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상담이 종료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저는 건축업자는 아니지만 제 이름에 욕먹지 않는 건물을 지을 자신이 있습니다. 아파트, 빌라, 상가 등 100여 채를 낙찰받아 수리해 팔았습니다. 지금 있는 빌딩도 몇억씩 들여 리모델링했거나 경매로 낙찰받아 신축했습니다. 저에게 돈을 빌려주시면 후회하지 않게 하겠습니다.”


상무 일행이 현관까지 배웅했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해 안양으로 돌아오는 길, 동진신협 강 상무에게 전화가 왔다.


“대표님, 자금 집행하기로 했습니다. 내일 필요한 서류를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스포츠 핸들을 잡은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멋지십니다. 잘될 겁니다.”


가속페달을 더욱 힘껏 밟았다.


“부와와와—”


내 심장처럼 벤츠 SLK 로드스터의 크랭크축도 힘차게 돌았다. 소식은 곧바로 김영준 과장에게 전달되었다.

“김 과장님, 대출해 준답니다.”


김 과장이 말했다.


“잘되셨네요. 사장님 같은 분에게 대출을 안 해주면 누구에게 해주겠습니까? 금리는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웃으며 답했다.


“금리는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건물 담보로 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김 과장이 말했다.


“금리 알게 되시면 연락 주세요. 제가 최대한 눌러보겠습니다. 담보는 주지 말지…”


아쉬운 말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괜찮습니다. 걸려면 시원하게 걸고 게임해야죠.”


그 말이 내 삶을 허투루 살아오지 않았다는 증표처럼 느껴져 더욱 뿌듯했다.



https://youtu.be/hL5QAho6LY8


20160924_115632.jpg
V24A7978.JPG
V24A7986.JPG
01-극한직업 건물주 입체 표지.jpg
02-꼬마빌딩 건축 입체 표지.jpg
03-경매비법.jpg


매거진의 이전글7. 자재업자들과의 협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