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업건축 실패기
12. 인테리어 업자 재민과 랩소디(rhapsody)
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맑음
커피를 내렸다.
어제 씻어 둔 테팔 미니 커피메이커 물통과 주전자를 조립하고, 성혼 선언문을 해 준 신랑이 하와이 신혼여행 선물로 가져온 커피를 개봉했다. 커피를 4스푼 넣었다. 봉지에는 ‘Aloha Aina’라고 쓰여 있었고, 붉은 태양 아래 네 사람이 카누를 타고 노를 젓는 그림이 있었다.
“쯔르르르…….”
열선으로 물을 끓이는 소리가 났고, 곧 검은 커피가 주전자처럼 생긴 유리 용기로 내려졌다. 서재에 커피 향이 가득 찼다. 마셔보니 조금 진한 듯해 물을 한 번 더 보충했다. 삶의 작은 재미가 생겼는데, 아직 7시도 되기 전이었다.
용인 건축과 관련해 도진의 전화도 받았다.
“도시가스 배관은 안으로 넣으면 비싸니까, 밖으로 빼는 걸로 했습니다.”
“도시가스 배관은 매립해도 합법이라고 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난 기본적으로 건물에 배관이나 전선이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
“형님, 그런데 단가 차이가 좀 나요.”
자재 단가를 낮추기 위해 징크 지붕이 아스팔트 싱글로, 벽 일부에 붉은 돌을 붙이려던 계획이 스타코로 바뀌었다. 나는 말했다.
“공사비 낮추려고 노력하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가다 보면 그저 그런 건물이 될 것 같아. 물론 외부가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건 알지만, ‘가오’라는 게 있잖아. 마진이 좀 줄더라도 외관은 멋지게 가자.”
도진이 맞받았다.
“형님, 그게… 차라리 내부에 돈을 더 발라서 분양성을 높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분양은 내부가 좋아야 한다는 말은 전적으로 동의해. 여자들은 외부에 큰 관심이 없으니까. 그래도 ‘저 건물 우리가 지었어’라고 말할 만한 가오도 중요하다는 거야. 그 말을 하는 거고.”
도진이 결론을 냈다.
“그러면 가스 배관은 안으로 넣는 걸로 하겠습니다. 한 1천만 원 정도 추가될 겁니다.”
공사가 중반을 향해 치닫고 있는 만큼 불협화음도 나기 시작했다.
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맑음
서울동부지검에서 ‘용인 토지 소유권 등기를 늦게 했다’며 18만 원 과태료 통지서를 보내왔다. 사업용 계좌에서 18만 원을 송금하고, 고지서를 출력해 철했다. 그러던 중 대한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사장님, 이자를 입금하신 것 같은데… 54만 원을 입금하셨습니다.”
송금할 때 ‘0’을 하나 빼고 보낸 것이었다. 직원이 이어 “그리고 이번 달 이자는 5,566,099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요? 그럼 54만 원 뺀 금액 입금하면 되겠네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호박마차에 올랐다. 레이밴 선글라스, 청바지, 모터사이클용 가죽 재킷을 입고 카우보이모자까지 썼으니, 캘리포니아 어느 목장의 사내처럼 보였을 것이다.
용인 현장은 4층까지 골조를 끝내고, 다락 벽체와 지붕을 만드는 목공 공사가 한창이었다. 보강토 공사를 하청받은 박혁수 이장이 드럼통 난로 앞에서 불을 쬐다가 내 인사를 받았다.
나는 하 과장을 데리고 곧장 건물로 들어갔다. 잡부들에게 바닥 청소를 시켰다더니 깨끗해 보기 좋았다.
“어쩐 일이세요? 연락도 없이…?”
골조 상태를 둘러보던 도진이 계단을 올라오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어 도진과 ‘중고 컴퓨터 수리점’을 동업하는 광열이 너스레를 떨며 “기습 점검이네요, 김 회장님?”이라고 말했다.
실내 평면은 생각보다 컸고 옥탑도 그랬다. 다만 계단 때문에 거실이 1m 정도 좁아지는 건 아쉬웠다. 대신 거실에서 복층 다락까지 보이도록 천장을 막지 않은 것은 신의 한 수였다. 그 덕에 펜트하우스 분위기가 났다. 사진을 몇 장 찍고 현장 사무실로 내려왔다.
“벽돌 한번 보셔요.”
도진이 발품 팔아 구해 온 샘플을 내놓았다. 색이 적당해 보여 “괜찮네”라고 답했다. 보강토 색을 묻는 박혁수 이장에게는 “건물 전체가 붉은 톤이니 회색으로 하세요. 콘셉트는 알람브라 궁전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때였다. 도진이 검은 패딩을 입고 다이어리를 든 사내를 소개했다.
“그리고 형님, 여기 인테리어 홍 사장입니다.”
현장에 전기·설비 업자를 소개했다는 남자, 이름은 ‘재민’이었다.
얼마 전 도진은 이렇게 귀띔했었다.
“아버지가 방송국 PD를 했고, 동생은 시청 건축과 공무원입니다. 아버지 재산도 좀 있어서 사고 칠 사람은 아닐 겁니다.”
재민은 ‘이레건축’이라고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나도 웃으며 명함을 꺼냈다.
“나도 그럼 명함 줘야겠네.”
그 광경을 보던 광열이 부러운 듯 말했다.
“어, 저도 못 받아본 명함을.”
도진이 재민에게 덧붙였다.
“전화번호가 없습니다. 연락하려면 블로그나 이메일로 하셔야 해요.”
재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성실하게 일해 준다면 함평 부모님 집 수리도 맡겨 볼 생각이었다.
오후 5시가 되자 고속도로는 정체되기 시작했다. 대한토지신탁 직원이 전화해 말했다.
“재산세를 내셨는데 한 세대가 체납이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납부하시고 연락 주세요. 유보금도 많이 있어서 되도록 빨리 돌려드리겠습니다.”
대한토지신탁이 재산세·종합토지세 체납에 대비해 내게 받아 둔 유보금은 1,500만 원이었다. 여기에 샷시 업체 사장에게 돌려받을 공사비 1,500만 원까지 합치면 3,000만 원의 현금이 생기는 셈이었다. 남의 돈은 아닐지라도 기분 나쁠 이유는 없었다.
잠시 후 도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님, 현금 받아 놨습니다.”
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맑음
‘랩소디가 무슨 뜻일까?’
테팔 커피메이커 용기를 꺼내 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쓰다가,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떠올라 컴퓨터방으로 가 검색했다. 결과는 이랬다.
“형식·내용 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풍의 기악곡. 광시곡이라고도 한다. 랩소디란 원래 서사시의 한 부분 또는 계속적으로 불리는 서사적 부분의 연속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이다. 성격적으로는 서사적·영웅적·민족적 색채를 띠고 있다. 리스트의 [헝가리 광시곡]이 그 한 예이며……”
그래서 유튜브에서 ‘헝가리 광시곡’을 검색했다. 검은 블라우스를 입은 여자가 검은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는 영상이 나왔다. 건반 위에서 발레를 하듯 움직이는 손목과 손가락을 한참 바라봤다. 피아노 선율이 집 안을 채웠다.
그제야 개인적 우물거림을 노래하는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제목과 노래가 이해되었다. 내 일기도 서사적이니 ‘랩소디’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된 것에 감사했다.
용인에 지어지고 있는 4개 동 [피렌체하우스]는 옥탑 지붕 골조공사를 남겨 두고 있었는데, 공기가 늘어지고 있었다. 골조 업자 재호가 다른 현장에 출근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됐다. 그럼에도 지하주차장 출입구의 미장 공사와 잡석·쓰레기를 치우자 제법 건물 형태가 잡혔다. 특히 넓은 현관 출입구는 개방감이 좋아 보였다.
흰색 공사용 안전모를 쓰고 건물 구석구석을 돌며 사진을 찍던 나는, 뒤따르던 현장소장 준열과 동업자 도진에게 물었다.
“뭐야, 공사가 이렇게 늦어지는 건 공사비를 받을 생각이 없다는 거 아니야? 그럼 다른 목수 불러서 하면 되잖아. 공사비는 임 사장에게 줄 돈에서 까면 되는 거고. 일하기 싫다는 사람에게 일 시킬 필요 없잖아. 안 그래?”
오후 4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준열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빨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빨리한다는 게 물리적으로 목수 기술자가 더 붙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지금 저기 봐. 몇 명 있는데 그게 되겠어?”
보름은 더 지나야 완성될 것 같았다. 게다가 지붕은 경사 때문에 수분이 적은 레미콘을 부어, 흘러내리지 않게 타설해야 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벽체 마감도 확인했다. 곳곳에서 품질 문제가 발견됐다. 레미콘이 채워지지 않은 공간이 있거나, 일부 벽체가 휘어져 있었다. 준열은 “미장을 바르게 하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즉시 받았다.
“휘어지지 않게 하는 게 먼저지. 휘어지게 해 놓고 미장으로 보수하면 그것도 돈이잖아.”
그동안 너무 멀리서 바라만 봤다고 생각했다. 작심하고 하나하나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그렇다고 개선될 거라 믿지는 않았다.
일행은 컨테이너 사무실로 내려갔다. 하 과장이 일회용 커피를 탔다. 잠시 후 인테리어 재민이 들어왔다. 나는 화장실에 대해 몇 가지 주문을 던졌다.
“4층 창문이랑 드레스룸은 없애고, 월풀 욕조를 넣어야겠어.”
그리고 빼먹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안방이 보이도록 유리창도 넣어.”
그다음 나는 제안했다.
“시간 되면 족발이나 먹으러 갈래?”
아침부터 한 끼도 못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준열은 춤을 배우러 가야 했고, 하 과장은 여자친구를 만나야 했으며, 재민은 다른 업체 미팅이 있다는 이유로 빠졌다. 한가한 사람은 건축주뿐이었다.
도진이 차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 내 카메라 가방에 넣으며 “식사는 수원에서 하실래요?”라고 물었다.
“그러지 뭐.”
“그러시면 잘하는 데 있습니다. 밴드 연습실 근처예요. 공용 주차장에 주차하세요.”
온도는 영하로 떨어졌다. 우리는 십여 분을 걸어 족발집으로 들어갔다. 겨울용 보온바지를 입은 게 도움이 됐다. 가건물처럼 허름한 식당은 손님들로 붐볐다. 족발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도진이 말했다.
“저는 임플란트를 박아서 못 마십니다.”
부드러운 족발은 내 취향에 딱 맞았다. 혼자 소주 두어 잔을 들이켰다.
https://youtu.be/_ecmiLdyGho?si=eJFo51t4MYdjH6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