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연 Dec 04. 2023

내가 프라이탁을 사지 않는 이유

모두 Sale 할 때 Shut down을 외친 회사, 프라이탁 

모두 Sale 할 때 Shut down을 외친 회사

5년째 옷을 사지 않고 있는 나는 좀처럼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가면 온통 사고 싶은 것 투성이일걸 잘 알고 있기에 애초에 들어가지 않는 것. 하지만 카카오 알림톡, 이메일, 유튜브 영상 그리고 출퇴근할 때마다 마주치는 대형 전광판까지, 온 세상이 어찌나 세일, 세일, 또 세일을 외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어떤 브랜드의 어떤 제품이 할인하고 있는지 금방 알게 된다. 


11월, 또 광군제가 돌아왔다. 블랙프라이데이도 질세라 무섭게 따라붙고 있다. 12월 크리스마스, 연말, 새해까지 온 세상이 우리에게 '여러분, 이거 꼭 사세요!'라고 외치고 있다. 


JW PEI는 비건레더를 사용한다고 해서 뉴스레터를 구독해 두었는데, 6시간, 3시간, 1시간 카운트까지  외치며 구매를 호소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 이제는 '다른 금요일이 되어야 한다'며 셧다운을 외친 회사가 있다. 바로 프라이탁 Freitag이다. 




블랙프라이데이, 판매를 중단합니다

프라이탁은 블랙프라이데이 당일, 전 세계 스토어에서 24시간 동안 제품 판매를 중단했다. 대신 가방을 무료로 대여할 수 있게 대여 서비스를 시작했다. 매장에 준비된 30여 종의 프라이탁 가방 중 하나를 골라 2주 동안 사용한 후 12월 8일까지 반납하면 된다. 가방은 1인당 하나씩 대여할 수 있다.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빌리는 경험을 시작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프라이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회사 동료가 아주 투박하고 낡아 보이는 가방들의 여러 모델을 보여주며 어떤 걸 살지 고민이라고 밝혀왔을 때였다. 가방끈은 안전벨트였고, 가방 겉감은 어떤 공장에서 본 듯한 낡은 방수천이었다. 육중한 무게, 값비싼 가격도 인상적이었다. 과거에는 비 오는 날에도 자전거를 타야 하는 우편배달부에게 큰 인기를 끌었는데,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기후위기를 염려하는 이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래서인지 회사 동료도 내게 '프라이탁 가방이 있을 것 같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뭔가 웃겼다. 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고, 옷도 잘 사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니 '친환경 제품의 상징'인 프라이탁 가방 하나쯤은 있을 것 같다는 새로운 편견이었을까? 하지만 정작 나는 프라이탁 가방은 하나도 없고, 잘 들고 다니는 가방이 있어 당분간은 살 생각도 없다. 




5년째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는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아예 안 사는 건 어려울 것 같은데... 만약 옷을 산다면 어떤 브랜드, 어떤 옷을 사는 게 좋을까요? 추천해 주실 만한 브랜드가 있나요?" 



과연 나는 프라이탁을 추천할 수 있을까? 

프라이탁은 199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시작한 리사이클링패션 회사로, 새것은 헌것처럼 생기고, 헌것이 새것이 되는 마법이 일어나는 곳이다. 


그런데 나는 블랙프라이데이 'Don't buy'를 외치는 프라이탁도, 그렇게나 좋아했던 파타고니아도*, '지구를 위한다면 추천할 만한 브랜드'로 추천할 수가 없다. 유행과 생산, 폐기의 주기가 빨라지며 생기는 문제는 비단 몇몇 ‘값싼 패스트패션’만을 범인으로 지목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브랜드라도 새롭게 소비하는 것보다, 이미 내 옷장에 있거나 누군가의 옷장에 있는 옷들을 교환, 나눔 행사를 해 입는 게 '지구를 위하는' 선택일 것이다. 

*파타고니아는 공정 무역 프로그램을 통해 10개국 노동자 6만여 명에게 정당한 임금과 실질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2023년 6월 네덜란드의 한 언론 플랫폼에서 폭로한 바에 따르면, 파타고니아 노동자들은 패스트패션을 만드는 공장과 같은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나아가 더 궁금해진다. 왜 사람들은 0원이라는 '옷 사지 않기', 가장 친환경적인 '옷 사지 않기' 대신 몇 만 원이라도 더 쓰는 '할인받아서 구매하기' 혹은 값비싼 '친환경 브랜드'를 구매하려는 걸까? 



성공할수록 실패하는 스텔라 맥카트니의 모순 


여기 한 가지 브랜드를 더 소개하겠다. 폴 매카트니의 딸 스텔라 매카트니는 부모님을 따라 비건이 됐고, 2002년에는 S/S 시즌 파리 패션위크에서 자기 브랜 드의 첫 컬렉션을 선보이며 비건패션계의 혜성처럼 등장했다. 오늘날에는 많은 패션 브랜드에서 동물성 자재를 사용하거나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비건레더를 사용하지만, 2001년에만 해도 동물의 털과 가죽 없이 패션 사업에 뛰어든다는 건 얼토당토 않게 여겨졌다. 죽은 동물의 몸에서 벗겨낸 가죽이 권세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그렇지 않으면 가짜 취급을 받으며 업신여겨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매카트니는 비건패션을 위한 신기 술을 개발하며 패션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하고 있다. 2019년에는 아디다스와 협업해 물, 설탕, 효모 같은 재생가능 한 성분으로 100퍼센트 자연 분해가 되는 테니스 원피스를 만 들었고, 2022년에는 버섯으로 만든 인조 가죽 핸드백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식량이 될 수 있는 자원으로 옷을 만드는 시도를 두고 여전히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동물을 죽여 가죽으로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 것만이 명품으로 여겨지던 업계에 매카트니가 혁신을 가져왔음은 분명하다. 오늘날 스텔라 매카트니는 전 세계에 100개 이상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글로벌 수익은 원화로 최소 2000억 원 이상 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선구적 행보 끝에 경제적 성공까지 거머쥔 매카트니의 이력에 쏟아지는 찬사를 보고 있노라면 다소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 생명을 죽이거나 착취해야만 브랜드가 성장하고 유지될 수 있던 패션산업에서 비건패션이라는 대안을 개척한 건 분명 높이 살 만한 일이다. 어차피 팔릴 제품이었다면 그가 만든 대체재가 충분히 빛을 발휘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해 1000억 장의 옷이 만들어지고 이중 500억 장은 구입 후 1년도 안 돼 땅에 묻히거나 태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정말로 더 구매할 '대체재'가 필요한 것인가? 




우리는 분명 기분전환을 하려고 옷을 샀다. 기쁜 순간을 더 빛나게 하려고도 옷을 샀다. 하지만 그런 옷들이 가득 찬 옷장 앞에선 우리의 모습은 어땠나? 화려한 트리가 놓인 백화점에서 느꼈던 감정만큼이나 행복했나? 아니면 집으로 돌아와 또 다른 아침을 시작하며 "도대체 작년에 뭐 입었지? 진짜 입을 옷 없네..."하고 작아지거나 초라하다고 느껴졌는가? 또다시 사냥하듯 옷을 낚아 집으로 돌아오고, 어두운 밤 잠들기 전 스마트폰을 무한 스크롤하며 최저가 옷을 찾아 헤매다 겨우 잠들던 일상이 반복되지는 않았는가?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던 트렌드나 유행이라는 허상의 굴레에서 한 번만 뛰어내린다면, 그 어떠한 비건레더도 친환경 브랜드도 소비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크리스마스와 연말, 그리고 일상은 당신에게 더욱 소중한 가치들로 반짝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https://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936083

브런치로 시작한 글 연재가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해요!

세일과 할인, 소비와 쇼핑이 온 세상을 뒤덮은 연말을 좀 더 나답게 보내고 싶은 분

매일 쇼핑하는데 오늘도 입을 옷이 없는 분 

쇼핑이 유일한 행복이자 취미인데 그걸 끊어낼 자신이 없는 분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는 걸 누군가 알아챌 확률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