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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Nov 16. 2023

매일 같은 옷을 입는다는 걸 누군가 알아챌 확률은?

5년째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 세상에 딱 하나뿐인 OOTD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같은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을 찾기가 정말 어렵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트렌드를 반영한 신상품이 각각의 피드에 빠르게 녹아들고 있다. '유행이 빠르게 바뀌니  나도 어쩔 수 없어요'라고 한탄하기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보여주고 보이는 존재가 되어 앞다투어 서로를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지난여름에 도무지 어떤 옷을 입었지? 
이번 유럽 여행 가는데, 옷 좀 사야겠다. 
이 옷 지난번 모임 때 입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뭐 입지. 


이런 익숙한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다른 사람들은 사실 생각보다 우리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 우리는 타인이 자신을 신경 쓸 확률을 과대평가한다. 어느 사회심리 학 연구에서는 누군가가 특이한 옷을 입고 교실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많은 학생이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 같은지 피험자들에게 물었다. 그중 50퍼센트 정도가 알아차릴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반절인 25퍼센트 정도만이 그 특이한 옷을 기억했다. 하물며 우리가 입는 옷은 대부분 '특이한 옷'도 아니고, 그럭저럭 유행의 흐름 끄트머리에 탑승한 '흔하고도 무난한 옷'들일 테니 옷을 하나하나 기억할 확률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사흘 전 직장 옆자리 동료가 어떤 색깔의 바지를 입었는지 기억하고 있는가? 그가 그 전날에 입은 바지는 무엇이었는가? 내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들은 내게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혹여 누군가가 정말로 내 옷차림을 평가하고 있다고 해도, 그러니까 내가 월요일에 입은 바지와 수요일에 입은 바지가 똑같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의 시선에 심리적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을지 말 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나는 5년째 새 옷을 사지 않고 있다. 물론 옷을 사지 않겠다는 다짐이 '매일 같은 옷을 입겠다'거나 '넝마만 입겠다'는 다짐은 아니었다. 이미 옷으로 가득 찬 내 옷장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안에서 나만의 멋을 찾고, 또 필요하다면 교환하거나 나눔 하며 새로운 형태로 착취 없는 멋부림을 해보겠다는 다짐에 가까웠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고 우여곡절도 컸다. 지금도 화려한 쇼윈도의 마네킹에 고개가 자꾸만 돌아간다. 하지만 중고 옷으로 가득 찬 나만의 OOTD, 세상에 딱 하나뿐인 OOTD를 공개한다. 이러한 쇼핑, 소비의 형태도 있다는 걸 많이 알려야, 쳇바퀴 돌듯 돌아가면서 영원히 잡을 수도 없는 트렌드와 유행의 굴레에 작은 흠집이라도 낼 수 있을 테니까! 




2021년 5월, 인천(무의도)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민소매 2020년 즈음 당근에서 두 벌에 5000원에 거래해 온 검은색 민소매다. 내가 활동하는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활동가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무의도라는 섬에 방문한다. 누군가에게는 백패킹으로 익숙한 곳이겠지만, 우리에게는 폐어망과 폐어구, 폭죽놀이에서 나온 탄피를 긁어내기 위해 뜨거운 모래를 헤쳐야 하는 곳으로 더 익숙하다. 하루는 해변 청소를 마치고 다음날까 지 인천에 머물며 무의도 곳곳을 둘러봤는데, 여름이면 항상 꺼내 입는 검은색 나시를 이날도 입었다. 여름이 오면 가장 단골손님이 되기에, 매년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이 민소매가 오래도록 나와 함께해 주길 간절히 바란다. 



1998년 1월과 2021년 3월


빨간 립스틱과 가죽재킷 “엄마가 빨간색 립스틱에 가죽재킷을 입던 때가 있었어?” 엄마의 옷장을 뒤적이다 보면 옛 사진까지 들춰보게 되고, 그날 밤은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처음 엄마와 옷장을 함께 살펴보며 구석에 오래도록 잠들어있던 이 가죽재킷을 발견했을 때는 표면에 곰팡이가 있어 입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탁소에 가져가니 오히려 오래된 옷을 정말 잘 관리했다며 이런 건 행 주에 기름을 묻혀 쓱 닦아내면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30년이 넘은 이 가죽재킷은 내 #ootd가 됐다. 워낙 오래된 탓에 언제 산 옷인지 기억조차 흐려진 가죽재킷이지만 여전히 윤기가 반짝반짝하다. 



2019년 워싱턴 D.C. 

가장 소중한 순간에 가장 소중한 옷을 옷이 날개가 된다는 말을 체감했던 것은 쇼핑센터에서 각진 쇼핑백을 양손 가득 가지고 왔을 때가 아니었다. 머지않아 옷장 앞에서 한숨을 푹 내쉬며 '도대체 입을 옷이 없네' 하고 한숨 쉬었으니까. 옷이 날개라는 말은 엄마의 옷을 입고 가장 중요한 발표 자리에 섰을 때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됐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 손을 잡고 함께 갔던 작은 옷 가게에서 산 엄마의 옷을, 그 당시의 엄마 나이와 점점  가까워지는 내가 입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지 몇 번이고 곱씹으며 생각했다. 정말 옷이 날개라도 된 듯 힘을 얻었다. '엄마 옷을 입고 오늘 어디를 갔는데 말이야' 하며 미주알고주알 나누게 되는 이야기는 덤이다. 




2022년 3월, 리스본

세이지의 빨간 원피스 오래도록 함께한 회사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유럽 여행을 떠났다. 코로나19로 약 4년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는데, 그 사이 내 캐리어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전에는 가벼운 캐리어로 떠나 저렴한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옷을 채워 돌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새 옷을 사지 않으니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캐리어는 조합하기 쉬운 베이직한 아이템으로 챙기되, 특 히 전 회사 동료들에게 선물 받은 옷들을 많이 챙겼다. 그중 다리가 시원하게 트인 세이지의 빨간 원 피스는 유럽 바다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에 1등으로 캐리어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동료에게 선물 받은 옷을 입고 낯선 곳을 여행한다니이 보다 특별한 퇴사여행이 또 있을까?


2022년 11월, 푸꾸옥

마라라의 초록 원피스 아이보리 배경색에 초록색 꽃이 잘 어우러진 마라라의 원피스는 받자마자 푸른 해변가를 거닐 때 꼭 입고 싶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다시 찾은 동남아시아 여행 내내 함께 했다. 물가가 저렴 한 나라에 가면 더욱 이성을 잃고 쇼핑하기 쉽다. 휴양지에서 한번 입고 버릴 요량으로 시장에서 옷을 구매하는 사람들도 많다. 나도 7~8년 전 동남아 여행 중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물건을 이것저것 산 적이 있다. 그런데 손노동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자들이 호텔 로비 쓰레기통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차마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고 한국까지 들고 왔다. 덕분에 다시 오랜만에 동남아를 찾았을 때도 옛날에 샀던 옷들만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기후위기와 패스트패션에 맞서는 제로웨이스트 의생활에 대해 더 궁금해졌다면 

제가 지난주 펴낸 (따끈따끈한) 책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936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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