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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Mar 13. 2024

라스베가스에서 생긴 일

환경운동가, 생애 첫 라스베가스에 가다 

이 글의 원문은 채널예스 CHANNEL YES 칼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여행을 계획하며 라스베이거스에 가자는 언니의 제안에 나는 꾹 눌린 스프링이 터져 나가듯 반응했다. 사막 한가운데에 만든 카지노 시티를 가자고? 왜? 돈이 돈을 낳으며 돈으로 자급자족하는 완벽한 자본의 세계. 안 그래도 온통 돈뿐인 세상인데 여행까지 가서 라스베이거스에? 굳이?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착륙하기 한참 전 ‘지구상 가장 큰 원형 건축물’이라는 스피어Sphere가 몇천 피트 상공에서 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창문 쪽으로 가까이 붙었다. 나도 흘끗 보았지만 괜히 ‘참나’와 함께 한숨을 내뱉었다. 전 세계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매년 4억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3조 원을 들여 저런 광고판을 또 만들었다고? (스피어 외관에는 밤낮 할 것 없이 24시간 대형 전광판에 광고가 재생되는데 하루 광고 단가가 6억 원이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던가. ‘비싸기만 한 광고판’ 안에 들어갔을 때 나는 호기심이 가득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렸다. “지구에서 온 엽서 Postcard from Earth” 한 사람당 99달러를 낸 사람들의 눈앞에는 유토피아가 펼쳐졌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탄성을 자아냈다. 어둠 속에서 파란빛을 내는 물고기 떼는 아름다운 춤을 추듯 자유롭게 헤엄쳤고, 새하얀 눈이 뒤덮인 산에서 여우는 간간히 앞발의 눈을 핥아가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다른 곳도 아닌 라스베이거스에서 ‘지구’를 만날 줄은 몰랐다. 그래, 이게 지구였지. 우리가 살아가는 푸른 지구.


소비하는 인간은 모든 것을 소비품으로 만든다.


에리히 프롬이 1967년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이 말을 했을 때, 그는 아마 인간이 지구마저 소비하게 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껏해야 휴식을 호캉스로, 취향을 한정판으로, 일상을 브이로그로, 사랑을 명품 웨딩밴드로 바꾸어 놓는 정도일 줄 알았겠지만, 소비하는 인간 ‘호모 콘수무스 Homo Consumus’는 이제는 지구마저 소비하게 됐다. 바라는 것을 모두 살 수 있다. 그것이 지구일지라도.

(...)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아니 그렇다고 믿는 지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발전과 성장이 거듭된 지난 50년 동안 동물 개체수의 70%는 멸종했다. 60도의 폭염, 기록적인 폭우에 사람들도 죽어간다. ‘우리의 지구’는 구독료를 내야 하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나 존재한다. 진짜 지구에는 파도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쓰레기만 쌓여있고, 인류에겐 이 모든 성장의 대가로 단 하나의 의무 ‘소비’만이 남아있다.




이 글의 원문은 채널예스 CHANNEL YES 칼럼 [이소연의 소비냐 존재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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