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 출간 후 2년을 돌아보며
그저 힘들 뿐이었다. 너무 힘들었다. 사실 책을 쓰는 게 이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글을 쓰고 편집하는 것이 업이었던 콘텐츠 에디터였으니까, 그냥 마감하듯이 하면 되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에 300페이지가 넘는 지면이 주어지는 것은 축복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채워나가는 것은 지옥... 까지는 아니고 중노동에 가까웠다. 구조적으로 전개하되,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게 충분히 흥미롭게 쓰는 것은, 짧은 글짓기와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그저 해방감에 기뻐했다. 출판사에서 '반응이 좋다'라고 이야기할 때도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와. 네네. 정말 좋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이후 내 책을 읽었다는 독자 후기가 올라올 때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벌레가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랄까. 말 그대로 butterflies in my stomach였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나 버린 그 결과물을, 누군가 읽고 심지어 자신의 시선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니. 고맙다고 해야 할지, 신기하다고 해야 할지, 아직도 그 butterfiles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기쁨, 감사함, 뿌듯함, 부담스러움,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두려움이란 감정이 섞여 들어간 것이 썩 흥미롭지 않은가? 보통 사람들이 '책을 내고 싶다'라고 생각할 때, 나아가 책의 성공을 생각할 때 두려움을 예상하지는 못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책을 내기 전엔 그저 막연히 '이걸 누가 읽으려나' 하는, 혹은 '너무 유명해져서 진짜 옷 못 사며 어떡하지'하는 정도의 고민이었는데 모두 부푼 기대감을 기반으로 하는 고민이었다. 환경 문제에 관한 책이니, 널리 퍼질수록 좋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책이 점점 팔리기 시작하며, 아무 생각 없이 나간 강연 수의 조회수가 빠르게 늘어나며, 나는 두려웠다. 숨고 싶었다. 책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뻗어가려나? 내가 쓴 내 책이, 내 개인의 삶을 침범해 오면 어떡하지? 내가 지키고 싶어 했는 삶이 어떤 것인지, 내가 진정 원해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는지도 고민하지 않은 채, 마냥 새로운 형태의 삶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군가 묶어둔 말뚝 근처만 맴도려는 아기 코끼리였다.
그리하여 나는 돌연 작가 부정기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이라고 시작하는 메일을 받기 시작했지만 그것을 부정한 것이다. 그 누구도 차이를 신경 쓰지 않겠지만, '작가' 대신 '저자'라는 이름으로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게 가능했던 것은 다행히 내겐 튼튼한 방패가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와 직함 딱 두 단어로 나를 소개할 수 있었다. 편리하고 쉬웠다. 어딜 가도 '전 그냥 직장인입니다 허허'라며 회사인으로서 아이덴티티를 먼저 내세웠다. 내가 작가인지, 작가가 되고자 하는지, 그런 고민은 사원증을 목에 건 순간 바로 잊게 됐다. 그렇게 회사원, 직장인으로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며 퇴사를 결심했을 때, 더 이상 고민을 미뤄둘 수 없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퇴사' 자체보다도, 소속감의 결여가 문제였다. 대학에 입학하고, 공부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고, 이직하고, 그 모든 여정에서 나는 안정적인 조직에 딱 붙어 있었다. 소속감이라는 따뜻한 포장지에 싸여, 독립된 자아나 개체로서 깊은 사유 따위 하지 않아도 됐다. 내가 '작가'이든 '에디터'든 크게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퇴사를 결심하고,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무척 중요해졌다. 잃어버린 9시에서 6시까지의 시간을 되찾았을 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가 정말이지 중요해졌다. 시간을 가지고 충분히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도망치려던 '작가'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꿈꾸던 삶의 모습 그 자체였다는 것을 발견했다. 말이 많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직업이라니. 심지어 그것을 잘하면 돈도 벌 수 있다니. 그러려면 작가라는 직업에 대한 무게를 기꺼이 견디려는 시도부터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책을 낸 지 2년이 넘어가며 나는 이제야 '작가'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작가는 "고유한 창작물을 통해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는 모든 예술적 창조자"를 뜻한다고 한다. 바로 이 부담스러운 정의 때문에 내가 '박완서 선생님은 작가야'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아니지'라고 했던 것이다. 월급 받는 직장인에게는 너무 거창하고 부담스러운 수식어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드디어) 직장인을 벗어나 작가로서의 삶을 꾀해보려 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업'이자 삶의 형태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강연하고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는 일이 진심으로 좋다. 욕심이 점점 커져 초조해질 정도로.
가본 적 없는 여정에 용감하게 발을 딛게 해 준 것은, 독자들이었다. 책 내용의 아주 짧은 한 줄까지 기억해 주는 독자를 만나며, 새롭게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다고 말해주는 독자를 만나며, 진심으로 행복했다. (butterflies*1000마리)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고민하던 시기 동쪽의 귀인처럼 한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났는데 그의 도움이 컸다. 그는 내가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아주 조심스럽게 '혹시... 그동안 책 안 쓰고 뭐 하셨어요?'라고 물었는데 마치 내 손가락을 튕겨 내 코를 딱 때리는 것만 같았다.
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꾸준한 시도가 중요하다. 언제 누군가에게 어떻게 가 닿을 줄 모르는 메시지를 갈고닦고, 계속해서 세상에 발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유튜브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됐다. 책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박완서 선생님과 같은 필력이 없으면서, 고유한 창작물을 통해 메시지와 감정을 전달하는 역할이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욕심낸 상황에선 더욱.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것만큼 큰 실패가 또 있을까? 이야기가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도 작가의 몫이다. 그래서 작심하고, 묵은 유튜브 채널도 다시 먼지를 털어냈다. 몇 개월 못 올렸다는 이유로 아예 좌절하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시간을 글 쓰는 데에 썼으면 10편도 더 썼을 것 같단 생각이 들... 지만,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가 쉬워진 것처럼 영상 역시 해버릇 하면 쉬워질 거라고 믿어본다. (제발)
이제는 버텨야 한다. 2026년은 어떤 한 해가 될지 정말 모르겠다.
이렇게 뭐가 정해진 게 없는 해가 있었을 정도로! 무계획이다. 그래도 버텨야 한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며, 안 된다고 해도 크게 좌절하지 말고. 묵묵히 꾸준히 가야 한다.
꿈꿔왔던 것들을 하나씩 하루씩 열심히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한 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모든 시간이 내 시간이다.
꿈같은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