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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끝내 용기 낼 수 없었다

쓰레기가 가득한 장바구니, 엄마의 제로웨이스트 도전은 거부당했다 #용기내

by 이소연
설을 쇠며 느꼈다.
엄마는 끝내 용기 낼 수 없었다.
엄마의 장바구니는 금방 쓰레기로 가득 찼고, 제로웨이스트 도전은 시장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어딜 가나 장바구니를 돌돌 말아 들고 다니는 우리 엄마를 존경한다. 내가 어렸을 때 엄마는 그 더운 여름날에도 1000원에 1.5l 그득 담겨 있는 생수도 마다하고 물을 끓였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페트병 플라스틱 쓰레기가 버려지는 게 안타깝고 아깝다는 이유였다.


누구나의 어린 시절처럼 우리 집 냉장고에도 '델몬트 유리 주스병'이 있었다. 한 켠에는 오래된 생수병에 콩이며, 깨며, 잡곡쌀이며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생수병부터 과자 용기, 아기 약병까지, 엄마는 '멀쩡하다' 싶은 것들은 깨끗이 씻고 헹구고 말려 몇 번이고 다시 쓰는 데 능했다.



델몬트 유리 주스병은 어쩌면 우리네 어머니들의 투철한 절약 정신, 지구를 위한 환경운동 정신이 담긴 시대상 인지도 모른다.






27살의 내가 구멍 난 양말도 꿰매 신고, 텀블러가 없을 땐 커피도 한 잔 참고,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 피켓을 들게 된 것은 어쩌면 엄마의 영향이 크다.


환경 문제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둘째 딸을 보며, 엄마는 반가워라 했다. 그리곤 당신도 꼭 그런 가치관을 지향하며 살고 싶었다고 했다. 나는 #제로웨이스트 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보는 엄마에게 '쓰레기 없이 사는 삶의 가치관'에 대해 설명하며 #용기내 캠페인을 예로 들었다. 마트에서 용기container를 내서 일회용품 포장 쓰레기를 줄이는 캠페인이라며, 함께 도전해보자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 설을 쇠며 느꼈다. 나는 엄마에게 영감과 배움을 받아 제로웨이스트 삶을 지향하며 살지만, 어쩌면 엄마는 제로웨이스트 삶을 살지 못할 수 있겠다고 말이다.


혼자 사는 나는, 의지만 굳게 있다면 쓰레기 없는 삶이 사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았다. 배달 음식 먹기를 포기하고, 텀블러가 없을 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기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았다. 아직까지 우리 가족 식탁엔 여성주의와 평등주의 이념이 닿지 못한 탓에, 매 끼니를 엄마가 모두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배달 음식이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포기하듯 우리 네 가족의 끼니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의 끼니를 지키는 마음의 대가는 쓰레기였다. 엄마와 설을 앞두고 장을 보고 돌아오던 그날, 엄마가 비닐 사용을 줄이겠다며 챙겨간 다회용 장바구니엔 음식물보다도 포장 쓰레기가 더 많이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용기 낼 수 없었고, 환경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과 제로웨이스트 도전은 시장으로부터 거부당했다.






시장에서 식탁까지, 쓰레기의 여정


시장에서 식탁까지, 식재료를 가공하고 포장하여 판매하는 과정에 엄청난 쓰레기가 나온다. 언젠가 엄마께 꽃길만 걸으라는 내용의 편지를 쓴 적 있는데, 이제보니 현실은 쓰레기길, 쓰레기밭이 아닌가 싶다. 정부의 일회용품 포장 쓰레기를 규제하는 법안을 놀리듯, 대형 마트에 포함되지 않은 개인 마트는 그야말로 포장 쓰레기의 향연이었다. 괜히 이름부터 친환경적일 거라고 느껴지는 '전통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어떤 상황이였나면:

대파는 대파가 아니었다. 세로로 먹기 좋게 썰려 스티로폼에 한 겹, 비닐 랩에 한 겹, 또 이 파를 구매하면 비닐봉지에 한 겹 더 싸서 내었다. 그래 놓고 3000원짜리 '채소류'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채소류'보다는 '채소류 20% 비닐 쓰레기 30% 스티로폼 쓰레기 50%' 정도로 다시 붙여야 하는 것 아닐까?


과일 포장은 이미 '신선도 보장', '손상 보호'의 목적을 넘어섰다. 칼을 써도 자르기 힘든 파인애플은 무슨 목적에서인지 낱낱이 비닐 랩으로 쌓여 있었고, 제사상 단골손님이라 귀하게 대접받는 배는 푹신한 스티로폼에 랩 포장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과일 완충재까지 나서서 양손으로 얼러 만지듯 보호하고 있었다. 덕분에 과일 코너는 멀리서 봐도 번쩍번쩍 광택이 났다. 애너맬 도료로 코팅이 두툼하게 된 가방이라도 진열된 것처럼 빛이 나는 게, 참 밥맛 떨어지는 '컬러감'이 아닐 수 없다.





엄마에게 설명한 #용기내 캠페인에 대해 좀 더 살펴보자면, 요즘 그린피스에서도 꾸준히 밀고 있고, 류준열과 박진희 배우님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도 함께 한 적 있는 꽤나 성공한 환경 캠페인이다. 캠페인 이름 그대로, 마트에 장 보러 갈 때 일회용품 포장재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기'를 내자는 것이다.




용기내야 할 사람은 누구?
바나나 과대포장에 일회용 비닐까지 제공하며, 고래 그림에 비닐 사용을 줄이자는 '착한 캠페인'은 가히 기만적이다.

용기 낼 사람은 따로 있다. 쓰레기를 만들어내 끼워 파는 공급자다. 그린피스의 #용기내 캠페인도 단순히 '소비자가 용기courage내서 용기container내자'는 단순한 운동이나 캠페인은 아니다. 소비자가 용기를 내며 인스타그램에 해시태그를 올리고 대형 마트 기업 계정을 태그하여, 궁극적으로 대형 마트가 스스로 비닐 쓰레기를 줄이게끔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리고 이에 실제로 많은 대형 마트가 답했다. 이마트는 이에 대해 액체 세제나 섬유유연제를 살 때도 플라스틱 용기를 살 필요 없이 '용기내' 살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을 열겠다고 했다. 롯데마트도 2025년까지 플라스틱 사용을 50% 줄이겠다고 했다.


쓰레기와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서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얄팍한 프레이밍은 너무나 옛날 말이다. 점점 더 많은 소비자가 기업에 폐기물 관리와 처리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점점 더 많은 시민이 정부에 깨끗하고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에서 살 권리를 주장한다.


나 역시 소비자로서, 시민으로서, 또 엄마의 딸로서, 우리 엄마가 용기 낼 필요 없는 세상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주장한다. 쓰레기 말고, 식재료만 사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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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옷 입으며 시작한 <새옷사지않기 프로젝트>



MAGAZINE "글쓰기로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일상 속 환경오염에 대한 단상을 나눕니다. 할 수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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