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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이야기가 아니라니까요

1020 MZ세대의 기후위기 시위, 청소년 기후위기소송

by 이소연
You’ll Die of Old Age, We’ll Die of Climate Change. 어른들은 나이 들어 죽겠지만요. 저희는 기후위기 때문에 죽어요.”

뜨거워지는 지구와 갈 곳 잃은 북극곰에 연민의 감정을 갖는 건 배부른 어른의 시선이다. 10대는 당장 숨이 턱 끝까지 찬 당사자다. 10대에게 지구온난화는 더 이상 가 본 적도 없는 설원 위 북극곰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 뜨겁게 불타고 있는 지구 모습에 "지구가 아파요" 표어를 네모 반듯하여 써 내려가며 포스터를 완성했다. 그림을 좀 잘 그린다 하는 친구는 좁은 빙하 위 갈 곳을 잃은 북극곰의 모습의 모습도 그렸다.


문자 메시지 예약을 걸어두고 생일 축하를 하던 어린 시절이 지나고, 이제는 멀리서도 수박, 케이크, 명품 가방까지 기프티콘으로 선물할 수 있는 어른이 됐다. 강산이 변했다. 그런데 참 한결같은 게 있다. 환경 단체 모금 영상 속 불쌍한 북극곰의 모습이다.


2020년 세계환경기금 WWF의 모금 캠페인에도 어김없이 북극곰의 모습이 등장했다. "WWF는 북극곰 멸종을 막기 위해 많은 노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라니.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밥 먹듯이 주장하던 나도, 북극곰 사진으로만 보면 타오르는 분노도 차분히 가라앉았다. 아, 빙하가 또 무너지는구나. 북극곰은 먹이도 못 구하고 갈 곳도 없겠구나. 근데 오늘 밥 뭐 먹지?


사람들을 돈 쓰게 하는 방법은 해가 다르게 진화해 가는데(예: 구글 광고부터 무수히 많은 카드 혜택, QR코드·간편 결제까지)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하게 게 하는 설득 방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거나, 스티커를 붙여달라거나 하는 방식의 모금 운동과 설득 방식에서 벗어나, 환경 문제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케케묵은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제자리를 걷는 동안, 빠른 속도로 변한 게 있다. 악화되는 기후위기와 그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젊은 세대의 환경운동이다. 지금의 MZ세대는 기후위기라는 불이 발등에 톡 떨어진 세대다. 당장 이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당장 나와 내 미래의 아이들이 위협받을 수 있는 세대다. 그리고 기성세대를 향해 '왜 제대로 행동하지 않느냐'라고 분노한다.


김영민 교수의 <설거지의 이론과 실천>이라는 글도 떠오른다. 누군가의 삶이 지나치게 고생스럽다면, 누군가 설거지를 안 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현대사는 19세기 유한계급 양반들이 게걸스럽게 먹고 남긴 설거지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베이비 부머' 세대가 성장 성장, 경제 경제 앞만 보고 달리며 지르밟고 죽인 것을 살려내느라 분주하다. 10대는 학교에 가지도 못한 채 피켓을 들어야 했다. 그들의 피켓은 그 분노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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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했으면, 우린 학교에 있었겠죠! If you did your job, We’d be at School.”

“저는 투표를 할 수 없어요. 이것이 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I can't vote. This is a way I can make my voice heard.”


지구에 대한 위협, 이 거대하고 답 없는 고민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피부색을 가진 전 세계 동년배를 한 궤로 엮었다. 세계 곳곳에서 수십 수백 명의 그레타 툰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은 학교 대신 거리로 향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Z세대(10대)의 환경 운동이 시작됐다.


그리고 해외 언론은 ‘환경’이 사회 논의에서 핵심 의제로 자리 잡게끔 기성세대를 설득했다. 부끄러워진 기성세대는 여기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워싱턴 D.C. 의회 앞에서 할리우드 스타 제인 폰다는 눈에 띄는 시위 방식으로 언론의 이목을 끌었고, '조커' 호아킨 피닉스는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서서 호주 산불과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한국에서도 10대의 환경운동은 힘 있게 흘러간다. 한국 10대들은 아시아 최초로 기후위기 헌법소원을 냈다. 정부가 소극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게 위헌이라며, 미래 세대의 생명권, 행복추구권, 환경권 등 기본권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한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고 거리에 나오는 결석시위도 이어가고 있다.


다만 국내 언론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해외 대부분 언론사는 환경을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주요 카테고리와 동등하게 분류한다. 심지어 ‘Climate 기후’나 ‘Green 녹색사업’으로 더 섬세하게 나누기도 한다. 한국 언론에서는 ‘환경’이나 ‘기후’ 등의 카테고리를 찾기는 힘들고, 환경에 관련한 기사는 사설 오피니언이나 기획 기사, 해외 보도자료를 옮기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미국, 유럽 언론사와 비교해 보면, 기사의 방향도 다양하지 않고 수도 압도적으로 적다.


코로나19를 보도하는 방식도 해외 언론과 국내 언론은 차이를 보인다. 해외 언론은 지금이야말로 환경 논의를 이어갈 수 있는 기회로 보고 기사를 쏟아낸다. 온라인으로 이어가는 기후위기 시위를 끈기 있게 보도하고, 기후위기와 코로나19를 같은 수준의 위기로 정의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큰 변화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국내 언론에서는 코로나19를 기후위기나 지구온난화와 연결지어 이야기하는 기사를 찾기 힘들다. 그나마 국내에서 주목받는 이슈인 ‘미세먼지’나 ‘플라스틱 폐기물’가 코로나19 덕분에 줄었다는 기사가 대부분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 창궐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디에 있으며, 해결의 열쇠는 누구에게 쥐어져 있는지 적극적으로 독자에게 전하지 않는다.


2020년, 코로나19로 세상이 멈췄다.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묻는다. 10대는 되돌아갈 필요가 없다고 답한다. 뒤로 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깨끗해진 공기, 줄어든 탄소 배출, 야생동물의 자유, 자연의 회복 같은, 전에 보지 못한 특이한 현상을 목격하지 않았던가.


전례 없는 순간을 경험하는 지금, 새로운 언론은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행동 촉구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담아낼 뿐만 아니라, 스스로 그 흐름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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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5syRyXYAUF_bU.jpeg 우리 지구가 티모시 샬라메보다 핫하다니. 이거 좀 문제 있는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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