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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Nov 08. 2019

난 비릿한 우유가 싫었다.

유당불내증과 우유 급식, 왜 마셔야 했을까?


초등학교 시절, 일주일에 한 번씩 우유 급식 당번을 정했다. 당번은 둘이었는데, 마음속으로 좋아하던 친구랑 함께 당번이 되는 날에는 그 한 주가 그렇게도 기뻤다.


우유에 대한 좋은 기억은 딱 거기까지인 것 같다. 우유 창고 근처에는 항상 우유 썩은 내가 났다. 학년, 반, 인원수가 적힌 종이가 초록색 우유 박스는 웬만하면 반 인원 수대로 꼭 맞게 들어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빈 우유갑이 있는 박스를 다시 창고에 가져다 놓았는데, 우유는 꼭 몇 개씩 남아있었다. 가방에서도, 사물함에서도, 팽팽하게 터질 듯이 부어오른 우유팩도 몇 개씩 발견됐다. 


다행히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100원짜리 초콜릿 네티 가루를 팔았다. 초코맛이 맹탕이 되더라도, 제티를 안 가져온 친구들과 조금씩 나눠먹기도 했다. 초코맛 우유로 허기진 배는 채웠지만, 1,2교시가 지나면 역시나 배가 아파 화장실을 친구들 몰래 들락거려야 했다. 




 출처 친구 교사 A 

새 학년이 시작될 때마다, 회색 재생지 아래 부분을 자 대고 반듯하게 찢어 우유 급식 신청서를 내곤 했다. 안 마신다고 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들 마시니까, 그리고 선생님이 마시라고 하니까, 그리고 별생각 없이 주니까 마셨다. 


그렇다면 정말, 우유는 학생들의 성장에 반드시 필요한 것인가? "우유 좋아, 우유 좋아" 우유송까지 학교에서 함께 배우고 불렀는데, 우유는 정말 내 건강에 도움이 됐던 걸까? 몸에 좋기로 한다면야... 과일 급식? 홍삼 급식? 비타민 영양제 급식은 왜 없었던 걸까?


칼슘 섭취의 대명사로 여겨졌던 우유의 영양학적인 허상을 집은 글은 대충 찾아보아도 생각보다 많았다. "생각보다"에 대한 기준을 제공했던 건 언론을 비롯한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이었다. 맞벌이 부부로 내 건강에 신경을 많이 못 쓴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유난히 키가 작고 몸이 약한 나를 걱정하며 우유를 꼭 마시라고 몇 번이나 말하곤 했다. 부모님도, 선생님도, 그저 TV에서 말하는 대로 믿어오셨겠거니 싶다. 학교는 왜 나에게 우유를 마시라고 강요했을까? 

2018년, 어느 초등학교의 우유급식 신청 안내문. 우유의 효능에 대해 자세히 설명돼있다. 출처: 구글 검색


2018년, 초등학생들에게 나누어지는 우유급식 신청 안내문 중 한 예시다. 안내장에는 우유를 다소 기피하는 아동이 있더라도 꾸준히 먹고 섭취해야 하는 식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의아하다. 예를 들어 오이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오이에 있는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해서, 오이 알레르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오이를 먹이는 게 나을까, 아니면 오이에 들어있는 영양소를 섭취하기 위한 다른 식품을 소개하고 권장하는 게 나을까? 


1. 우유 급식, 많이 먹게 하면 상도 준다?


아주 재미있는 기사를 봤다. 우유급식 우수학교 선정에 관한 글이었다. 우유급식 우수학교? 우유를 아이들에게 많이 팔면, 상이라도 주겠다는 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싫으나 좋으나 학교 우유 급식을 신청했었는데, 그게 내 몸에 좋아서가 아니라 학교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였던 걸까? 


우유급식 우수학교 선정은 사천교육지원청에서 우수학교를 추천하고 낙농진흥회에서 최종 선정하며, 우유급식 최우수학교 2개교에는 교육부장관상, 우수학교 10개교에는 낙농진흥회장상이 각각 수여된다.

2019년 5월 13일 자 한남일보 기사 중 일부다. 우수학교 선정에 어떤 기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추해보건대 가장 많은 아이들에게 우유 급식을 권유하고 실제 많이 먹인 학교가 아닐까 싶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낙농진흥회에서 더 많은 우유를 팔게끔 유도하는 상까지 주고 있었다.


출처 https://www.dairy.or.kr/establish/

낙농진흥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2005년부터 학교우유급식 확대 방안에 대해 고민했고, 2006년부터는 본격적인 홍보사업을 실시했다. 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세계 학교 우유 급식의 날'도 있다. 세계 식량 기구(FAO)에서 학교 우유급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모으고 국가별 기념행사를 권장하기 위해 지난 2000년부터 매년 9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세계 학교 우유급식의 날'로 지정했다. '세계 우유의 날'도 있다. 2001년 UN 식량 농업 기구에 의해 제정된 우유의 날로, 매년 6월 1일이다. 2000년대, 세계 식량 기구가 왜 우유 산업을 적극 장려했는지 궁금해진다.

출처 http://www.mafra.go.kr/mafra/1370/subview.do 농림축산식품부 학교우유급식사업


학교 우유 급식 사업에 대해 더 뜯어보니, 추진배경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81년부터 교육부와 협조하여 청소년 건강증진 및 우유 소비기반 확대로 낙농산업의 안정적인 발전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게, 학교 우유 급식 사업이 시작하게 된 배경이었다. 



2. 우유의 영양성분, 꼭 필요한가?


우유로는 부족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고, 특히 칼슘이 많이 들어있어 뼈가 튼튼해지고 키가 큰다고 믿고 있었다. 우유를 마시고 배가 아프고 설사를 해도, 키가 크겠지 하는 믿음으로 꿀꺽꿀꺽 마시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우유의 영양성분은 실제로 내 건강에 도움이 많이 됐을까?

 

출처 베지닥터 https://www.youtube.com/watch?v=5I68YWBEl4g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더 이상 우유 섭취를 권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한해야 할 음료로 분류하고 있는데, 2011년 하버드 의대가 내놓은 식이 가이드를 보면, 우유 대신 물을 추천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언급한 ‘칼슘의 역설’도 우유에 대한 맹신을 저격한 연구 결과도 있다. 우유를 많이 섭취한 국가에서 오히려 고관절 골절률이 높다는 연구다. 


이러한 주장의 인과관계에 대해 반론을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식습관의 특성 외에도 인종적 특성, 전반적인 식습관, 신체 활동량 등 여러 가지 특성상의 차이도 가지고 있어, 우유와 골절의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타당하다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유와 건강 사이의 절대적인 인과관계도 밝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절대적인 인과관계를 근거로, 유당을 소화하기 힘들어하는 학생을 포함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우유 급식을 권고할 수 있는 걸까?  


3. 유당불내증, 극복하면 된다고?



출처 Lactaid https://www.lactaid.ca/whos-affected.html 유당불내증을 민족별로 나누어보았을 때, 아시안이 90%로 가장 높다. 

당불내증이라는 단어는 어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어렸을 때는, '우유 먹으면 자꾸 설사해.'라는 표현이 다였다. 유당불내증, 유당을 분해, 소화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간단히 말해 유당이 많은 음식, 예를 들어 우유를 마시면 배가 아프고 소화하지 못해 가스가 차거나 설사를 하는 소화장애다. 


소화장애를 넘어서, 우유나 유제품 섭취가 암 발생률과 관련이 있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보고되고 있다. 자세한 임상 실험 결과는, 전문가의 글을 참고하도록 하자.


나라에 따라서도 다른데, 한국인의 75%가 유당불내증을 앓고 있다. 특히 성인형 유당불내증이 많은데, 성인이 되며 유당을 소화시킬 수 있는 락타아제가 자연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고 나서 이 단어를 접한 게 그럴싸하기도 하다. 하지만 유당불내증을 검색해보면, 극복 방법에 대한 기사나 포스팅, 방송은 너무나 넘쳐난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어른이 되며 자연스럽게 우유 소화 능력이 줄어드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누군가'는 우리에게 꾸준히 우유를 섭취하라고 설득하는 걸까?


우유만 마시면 배가 살살~ '유당 불내증' 극복 방법은 
포털 사이트에는 유당불내증 극복 방법이 아주 친절하게 나와있다.


3. 우유를 마시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들


이 글을 쓰며,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막 근무를 시작한 옛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봤다. 초등학교 교사인 친구 A는 25명의 아이들 중 20명의 아이들이 마시고 있다고 답했다. 전교생 1200여 명 중에서는 850 여 명이 우유 급식을 신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70-80%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고 있는 것. 고학년 아이들은 그래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우유를 잘 마시지만,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내 어린 시절 기억처럼 우유가 빵빵하게 불어 터지기 직전까지 가방에 넣어놨다가 혼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이름과 번호를 적고 우유를 일부러 강제 배급하는 식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유튜브에는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려는 선생님의 고군분투를 재미있게 담은 영상(우유 가져가, 수요일밴드)까지 있었다. 


중앙뉴스 김주경 기자의 기사(2017)에 따르면, A교육청에 학교급별 우유를 마시는 비율을 파악해봤더니 전체 초등학교 중 96%, 중학교 6.9%, 고등학교 5.9%였다. 우유 급식 신청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알레르기, 소화장애, 설사. 아주 단순하게, 우유가 잘 소화가 안 되기 때문에 안 마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발달이 워낙 빠르다 보니 굳이 우유를 마시지 않아도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영양섭취가 가능하다는 점도 우유 섭취가 점점 주는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크게 관심은 없는 것 같다. 학교 우유급식 확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했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올해 우유급식 대상자를 1만 9000명 확대했지만, 급식률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우유급식의 책임 부처가 확실하지 않고, 선생님들의 행정 업무 부담이 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단 아이들이 우유를 많이 안 마시기 때문이다우유 급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계속 있어왔지만, 농림식품부는 “우유는 성장기 학생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영양소가 가득하고 학계에서도 매일 섭취를 권장하는 식품"이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다.





4. '누군가'는 누구인가. 낙농업계의 힘

International Diary Federation에서 내놓은 우유 소비량 증가

국제낙농연맹 (IDF, International Diary Federation)에서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우유 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다. 우유 소비를 촉진하려는 '누군가'의 캠페인은 대대적으로 꽤나 성공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서울우유', '매일우유', '건국우유' 등의 우유 회사가 학교 우유 급식으로 인해 큰 이익을 얻었을까? 더 깊은 이야기가 숨어있겠지만, 우유 급식 업체의 사정도 편안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이익을 취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와 공급업체 간 뒷거래나 비리 등의 소지가 있었다는 의혹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최근에는 그 문제점이 지적되며 '최저가 입찰제'가 도입됐다. 그 이후로는 공개입찰을 통해 무조건 싼 가격을 적어내는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이 때문에 업체 간 출혈경쟁이 커졌고, 우유 업체가 이익을 낼 수 없다며 우유 급식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우유 공급 업체의 위로, 더 위로, 계속 올라가다 보면 결국 누가 이익을 얻고 있을까? 


우유의 영양학적 성분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도 할 수 있는 정도인데, 도대체 어떤 근거와 경로로 교육부와 협조하게 됐는지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다. 몸에 좋기로 한다면야... 과일, 홍삼, 비타민 영양제 급식은 왜 없었는가? 왜 하필 우리는 우유 급식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해 왔으며, 우유에 대한 맹신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낙농업계는 '지속 가능한 낙농업', '다음 세대를 위한 낙농(Dairy for the Next Generation)'에 대한 세계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우유에 대해 맹신이 깨지고, 낙농업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드러나면서, 우직하게 사업을 지켜왔던 그들의 입지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 때문에 당신이, 혹은 당신의 아이에게 먹기 싫은 우유를 억지로 먹었거나 먹여왔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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