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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연 Oct 04. 2019

새벽배송이 변했다

마켓컬리 포장재 올페이퍼챌린지, 변화하는 유통업계? 

'아나바다' 들어본 동년배들 모여라! 초등학교 때 지구가 울거나 불타는 포스터를 그려본 친구들도 모여라! 그렇게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지금은 새벽배송에 빠져있다. 


새벽배송은 편하다. 그런데 때론 불편하다. 쌓여있는 포장재 쓰레기를 분리수거 날마다 분리할 때는 이게 진짜 편한건지 싶다. 마음도 편치 않다. 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종이 박스를 대충 버릴 땐 그 정신적 피로감도 커진다. 새벽배송은 이러한 소비자들의 찝찝함을 덜기 위해 어떻게 변하고 있을까? 




이제는 꽤나 익숙한 환경부 포스터


  정말 간만에 큰 맘 먹고 방 청소 좀 하려는 순간, 엄마가 들어온다. 

  "아야, 방 꼴이 이게 뭐냐. 청소 좀 해라."

  아. 갑자기 청소가 너무 하기 싫어지고 심술만 난다.


어쩌면 환경 정책이나 캠페인도 그렇다.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해라, 하지마라,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게 싫어 심술이 날 수 있다. 특히 힘 있는 정부가 그러면 더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2018년 환경부가 1회용 플라스틱 컵 금지령을 내렸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불만을 가졌다. 하지만 나는 정부 주도의 강경한 정책이 반가웠다. 1년 간 사용되는 25,700,000,000개의 일회용컵을 줄일 수 있다면, 소비자가 조금 불편해 하더라도 정부 주도의 강제성 있는 변화 유도도 좋다고 생각했다. 중국 주석 시진핑은 극단적이고 강압적인 환경보호주의 정책으로 베이징 미세먼지를 1년 만에 잡는 기적적인 변화를 보여주지지 않았던가. 환경 분야만큼은 강경한 탑다운(Top-down) 방식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정책은 한계에 부딪혔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따르지 않으니, 그 실효성도 의심됐다. 테이크아웃 잔에 당당히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많다. 


스스로 변하는 소비자? 더 변하는 기업!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소비자가 스스로 주체가 되어 '환경'을 요구하고 있다. 환경 보호를 외치는 주체가 정부에서 소비자로, 소수 단체에서 다수 개인으로 변했다. 기업은 이런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구매와 소비 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소비자가 늘어났고, 이러한 윤리적 가치 소비를 사로잡는 게 관건이 됐다. 환경뿐만 아니라 기아, 빈곤, 보건 등 기업의 사회적 가치 추구를 통해 이익 추구를 하는 이러한 기업의 마케팅은 코즈 마케팅(Cause Marketing)이라 불린다. 동물 실험 없이 친환경적 소재로 화장품을 만드는 러쉬LUSH는 광고 없이 연 평군 26% 성장했고, 신발을 구매하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신발을 한 켤레 선물하겠다는 1+1 마케팅을 한 탐스TOMS는 3년 만에 매출을 4,000% 올렸다.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기부를 받는다는 '빈곤 포르노'보다도 높은 효과를 거뒀다는 긍정적 평가도 내릴 수 있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당위성 강조보다는, 소비를 통해 자연스러운 가치 추구. 소비자와 기업, 사회 모두에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 선순환이다.


    

TOMS ONE FOR ONE Campaign / Lush Still Against Animal Testing


날 불편하게 만들지 마!

   

 소비자의 친환경 요구는 제품의 성격 자체에 국한하지 않는다. 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 수단, 유통 과정에까지 관여한다. 현재 대한민국 유통업계가 비상인 이유다. 기업의 친환경 정책은 '착한' 이미지 구축을 넘어선 생존 전략이 됐다. 새벽 배송 온라인 쇼핑몰 마켓컬리 CEO 김슬아는 당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요즘 고객들은 친환경 소재의 포장재를 원한다. 마켓컬리가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비난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프로세스 기획팀 담당자 이정언게시판에도 "한 번 주문했는데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피드백이 많다고 밝혔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환경 보호' 때문만은 아니다. 작년 여름, 중국에 비닐 쓰레기 수입 거무로 인한 쓰레기 대란의 몸살을 겪은 시민들은 쓰레기 배출로 인해 큰 피로감을 겪어왔다. 쉽게 말해 '음식을 편하게 먹기 위해 배송을 했는데, 포장재를 분리해 버리는 과정이 더 불편하다'는 것이다. "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피곤하게 만들지마"라고 요구하는 소비자들의 입장은 신세계닷컴의 '쓱세권 친환경 배송' 캠페인 영상에도 나온다. 

[SSG.COM] 쓱세권의 친환경배송 (30s) 영상 중 



변화하는 유통업계

 

 마켓컬리는 <올페이퍼챌린지 All Paper Challenge>라는 거창한 프로젝트를 내놓으며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플라스틱과 스티로폼 포장재를 모두 종이 포장재로 바꾸겠다는 도전이다. 103번의 테스트와 1,550번의 온도 모니터링을 통해 친환경뿐 아니라 보냉과 발수력 등 내구성까지 신경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종이 포장재가 정답일지는 의문이다. 다른 유통업계의 변화를 보면 가히 혁신적이기 때문이다. 


신세계 닷컴 새벽배송 친환경 '알비백' 

이마트 쓱배송(SSG)에서 내놓은 '알비백 I'll be back bag'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됐다. 환경 보호도, 쓰레기 처리 부담을 던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가방이 귀엽고 예쁘다는 평이다. 신세계닷컴은 2019년동안 첫 구매자들에게 보냉 가방을 무료로 제공한다. 다음 주문 때는 이 '알비백' 가방을 밖에 내 놓을 때마다 500원씩 머니가 적립된다. 혹시 내놓지 않으면 2000원 보증금이 결제되지만, 반납하고 싶을 때 반납하면 보증금이 다시 회수된다. 예쁜 가방도 얻을 수 있고, 분리수거 날마다 넘쳐나는 택배 쓰레기를 버리러 갈 귀찮음도 없다. 

신세계닷컴 이벤트 페이지


헬로네이처, 더그린배송 

'처리 곤란한 포장재도, 환경에 대한 부담도 없이 매일의 더 신선한 음식만 담아 전할게요.'라고 헬로네이처는 말한다. 명확하다. 더그린배송을 신청하면 신세계 닷컴의 알비백의 원리와 같이 순환된다. 회수 시 500원씩 적립금이 생기고, 보증금은 5000원이다. 

헬로네이처
더그린배송

소비자들은 생생한 후기로 입소문을 내고, 기업은 사회공헌 활동과 마케팅 성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기쁘지 아니한가!

  

 종이포장재든, 다회용 보냉 장바구니든, 장단점은 끊임없이 소비자에 의해 피드백 되고 개선될 것이다. 사실 마켓컬리가 이번에 야심차게 내 놓은 <올페이퍼챌린지>는 벌써부터 소비자들의 반응이 갈린다. 친환경 움직임이 좋지만, 종이 포장지라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냐는 본질적인 물음도 있다. 

 이 모든 부담을 유통업계가 온전히 떠 맡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말하고 싶은 점은 설립 목적 자체가 '이익 추구'인 단체, 기업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철저한 이익 추구라는 시장 논리에 맞춰 환경 보호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사생대회와 표어짓기 대회만이 지구 온난화 해결책의 전부 같았던 내 어린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소비자의 인식 수준과 가치 추구 기준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예리해지고 있다. 



Photo: Shutterstock / 차이나데일리


 식품 배송이 급격한 인기를 끌며 택배 시장은 갈수록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은 멀다. 택배 과정에서 드는 탄소 배출과 어마어마한 양의 포장 쓰레기 문제를 생각하면, 사실 소비자가 직접 재래 시장에 가서 필요한만큼 바구니에 담아 사오는 게 가장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인터넷 쇼핑과 전자상거래 시장이 급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이 현상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택배 포장 쓰레기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며,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더욱 아니다. 넘쳐나는 택배 물류와 쓰레기에 전 세계가 끙끙 앓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범국가적 차원의 시도가 있었다. 


 때문에 더욱 확실한 것은, 소비자가 변하는 것이다. 많은 쓰레기를 배출해 귀찮게 만드는 기업의 제품을 소비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가치 소비를 즐겨 하는 것. 그러면 친환경 소재를 구하기 위한 유통업계 기업의 수요가 높아질 것이고, 그를 공급하기 위한 친환경 기술 개발도 빠르게 이어질 수 있다. 


 소비를 줄일 수 없다면, 윤리적 소비를 통해 소비자의 힘을 보여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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