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와 펭수의 '펭숙소', 광고모델로서 펭수와 교육방송 EBS의 행보
대한민국을 뒤집어놓은 EBS 연습생 펭귄 펭수에게 새 집이 생겼다. "따라 다라 따-라라라 라라-" 러브하우스 BGM을 가끔도 흥얼거리는 현재의 2,30대 '어른이'들 취향 저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철강회사 포스코는 EBS 소품실에서 쪽잠 자던 펭수를 위해 집(펭숙소)을 만들어줬다.
하지만 "참치길만 걸어라"하고 펭수를 응원하던 어른이 1인 나는, 어쩐지 이번 펭수와 포스코의 만남을 마냥 응원할 수가 없다. 사랑받던 '펭수'라는 캐릭터가 붕괴하는 것이었으니까. 고향에 있는 엄마와 울며 통화하던 펭수, 남극 유치원 친구들과 환경 보호를 위해 캠페인을 하던 펭수와 포스코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다.
"신이 나 신이 나, 엣헴 엣헴 신이 나." 남극 펭, 빼어날 수, 10살 펭수, EBS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자이언트 펭TV》에 등장하는 펭귄 캐릭터는 이미 캐릭터 그 이상이 됐다. 《EBS 육상대회》를 계기로 펭수는 2018년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사로잡았다. 남녀노소 어린아이 대학생 직장인 중년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펭수에 환호했고, 연예인들의 연예인이 되며 여러 방송국과 프로그램의 러브콜을 받았다.
펭수는 그 누구도 아닌, 펭수 그 자체가 됐다.
인터넷에는 펭수에게 위로를 받았다는 뒷 이야기가 쏟아졌고, 펭수와 팬 미팅에서 눈물을 올리는 팬의 모습이 영상에 담겨 떠돌기도 했다. 펭수는 유재석에게도, 강경화 장관에게도, 윌리엄에게도 대스타였다. 펭수의 팬덤 '펭클럽'은 그렇게 단단해져 갔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전연령을 위한 캐릭터 사업을 하는 EBS 수신료를 올려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펭수 소속사인 EBS는 참치길만 걸으라는 팬들의 염원을 적극 수용했다. 보건복지부, 외교부 등 정부부처와 협업을 시작하며, 정부 청사에 출입하는 펭수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JTBC 팩트 체크까지 나서는 해프닝이 있었다.
이후 정부부처뿐만 아니라 기업과도 협업했다. 화장품 회사 네이처리퍼블릭(Nature Republic), 스포츠 브랜드 뉴발란스(New Balance), 의류 브랜드 스파오(SPAO)와 줄줄이 협업하며 귀엽고 깜찍한 펭수 굿즈를 내놓았다. 그리고 그 협업 중 하나가 철강회사 포스코(POSCO)와 협업이었다. 펭수의 유튜브 채널《자이언트 펭TV》에는 뚝딱뚝딱 '펭숙소'를 지어주는 포스코와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는 콘텐츠가 올라왔다. 그리고 곧 포스코 유튜브 채널에도 자랑스럽게 펭수의 영상이 올라왔다.
포스코는 펭수가 아무리 귀여웠어도, 선물은 참았어야 했다. 공영방송인 EBS 캐릭터 펭수가 상업광고를 찍고, 기업과 협업하는 것을 두고도 왈가왈부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포스코는 또 다른 차원이다. 지난날 펭수가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생각하며 '남극을 지켜달라'라고 호소한 걸 돌이켜보면, '펭숙소' 프로젝트는 사실상 기만이나 다름없다. 포스코는 환경오염물 배출 대한민국 1위 기업이다.
철강업은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으로 불렸지만, 24시간 내내 고로를 돌려야 하는 특성상 환경오염에 기여하는 바도 커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철강업계는 이 흐름에 맞게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공장 주변 먼지를 빨아들이는 집진기와 같은 시설은 미치는 악영향에 비해 한참 부족한 처사다. 더욱이 포스코는 부산물을 허가 없이 시멘트 원료로 내다 팔며 토양을 오염시켰다는 의혹도 받고 있고, 2018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했다.
2019년 3월 환경부가 발표한 <사업장별 오염물질 배출량 조사 결과>에 따르면, 3,4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3위인 포스코(광양)와 4위인 포스코(포항)가 배출한 오염물질량을 합해보면 1위인 현대제철(당진)이 배출한 2만 3291톤을 훌쩍 넘는, 3만 7009톤으로 당당히 1위다.
• 1위는 2만 3291톤 현대제철
• 2위는 1만 9931톤 남동발전 삼천포 본부
• 3위는 1만 9668톤 포스코(광양)
• 4위는 1만 7341톤 포스코(포항)
팬덤은 진화했다. 질서를 지키는 건 기본, 기부 문화에 앞장서고,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낸다. 개인이라면 하지 못했을 일도 '팬'의 이름으로 용감하고 진취적으로 해낸다.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시대는 진작에 지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펭수를 기만한 건 포스코뿐만이 아니다. 펭수 소속사라고 불리는 EBS의 행보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EBS는 펭수를 데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기후위기는 더 이상 '몇몇 진보적인 환경단체'의 논의가 아니다. 영국 언론사 <가디언 The Guardian>은 기후위기에 기여하는 오일, 가스 회사의 광고는 일절 싣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Blackrock> 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는 기업에는 손해를 보는 한이 있어도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래미 어워드 2019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호아킨 피닉스 등 호주 산불을 걱정하는 것을 넘어, 채식주의의 중요성,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말하는 헐리우드 스타가 줄을 이었다.
2019년, 2020년 대한민국에 혜성 같이 나타난 고마운 펭수. 하지만 남극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걱정하는 펭수의 '참치길'은 적어도 빙하를 녹이고,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기업과의 협업은 아니길 바라며,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EBS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