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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용!잔!에!달!라!구!욧!!!!

코로나19와 카페 내 일회용품 규제 완화, 정말 필요한가요?

by 이소연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픽업대에 가보니, 플라스틱 컵에 볼록한 돔 뚜껑, 빨대, 홀더까지 두르고 잔뜩 무장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분명 다회용 잔에 달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두 번... 말씀드렸어요."

"아, 저희가 코로나19 방침 때문에 일회용 잔에 드리고 있어요."


파트타임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닌 나도 직원 분에게 다짜고짜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대로 제품이 나오지 않은 것에는 소비자로서 무척 화가 났다.


사실 최근 들어 이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은 척하며 물컹한 플라스틱 컵을 들고 나섰다. 더 화가 났던 것은, 내 가방에는 텀블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회용잔'으로 달라고 요청했기에, 텀블러에 들어있던 다른 음료를 버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주문했던 게 실수였다.


본사 고객센터에 전화해 "저 쓰레기 안 쓰고 커피 마시고 싶은데, 이 직원 분이 제게 쓰레기를 줬어요!" 라고 목소리 높여 따지는 상상을 하다 이내 포기했다. 이 쓰레기들이 내 잘못된 주문으로 인해 고작 10분 정도 이용되다 버려질 운명이라는 것, 잘 분리수거되어 재활용되면 좋겠지만 그럴 확률은 1/30, 1/100도 안 될 거라는 것, 재활용되지 않고 태워지거나 땅에 묻혀, 혹은 그 모습 그대로 바다나 육지를 떠돌게 된다면 수백 년 동안 이 지구에 남아있을 것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가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고객센터에 전화까지 할 용기는 없었지만, 내 꼭 한 마디 하리라! 불같은 마음은 여전했다. 소심하게 2초 정도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이렇게 주실 줄 알았으면 안 시켰어요. 다회용잔에 못 주시면 미리 안내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 쓰레기를 좀 안 만들고 싶어서요..."

"아, 그러세요. 저희는 정부 방침에 따르는 거라... 아무래도 코로나19 상황이 심하니까요."


하고 싶은 말이 울멍지게 가득했지만, 찬 커피로 눌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내 커피에 꽂혀 있던 물건-이었으나 10여 초 만에 쓰레기가 된(빨대, 돔 뚜껑, 홀더)-들을 모두 트레이에 내려둔 채, 투명한 플라스틱 잔에 찰랑이는 아메리카노를 아슬아슬하게 가져다 가방에 들어있던 텀블러에 옮겨 담았다. 이 컵은 10분 정도 쓰인 후, 500여 년을 지구에 남을 것이다.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던 그 '물건'들은 그렇게 순식간에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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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품 사용하면, 코로나19 확산 막는데 도움이 될까?

직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먼저 정부 방침인 건 맞다.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자, 2018년 어렵사리 통과됐던 '카페 내 일회용품 규제'를 완화했다. 카페 안에서도 일회용품을 사용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한 것이다. 이런 정부 방침 흐름에 따라, 개인 텀블러나 머그컵 사용을 장려했던 스타벅스와 던킨 등 대기업도 직원과 다른 고객의 안전을 위해 일회용 컵만 사용할 것이라고 공지하기도 했다. 개인 카페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음료를 일회용 잔에 내주기 시작했다. 그러니 정부가 '일회용품을 사용해도 된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이 마치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는 듯한 말은 완전히 틀렸다. 2020년 8월,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많은 확진자가 나온 적 있다. 때문에 방역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고, 그래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언론에서 수천번 보도된 것처럼, 카페 등 실내에서 코로나19가 퍼지는 것은 대기 중에 바이러스, 혹은 비말에 붙어 있는 바이러스가 퍼지는 식(에어로졸)이 대부분이다.


일회용 컵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물건의 표면에 붙어 있는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 때문에 카페 내 일회용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질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모두 같은 지하철 손잡이를 잡고 출퇴근하고, 같은 옷과 화장품을 만지며 쇼핑하며, 다회용기 식판에 다회용기 식기로 밥을 먹는다. 주기적으로 물건을 소독하는 게 사실 방역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손 씻기와 마스크 쓰기가 그저 제일가는 예방책임을 언론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질병통제센터(CDC)에 따라도, 표면 접촉을 통해 코로나19에 감염될 확률은 1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 작은 위험 또한 규칙적인 손 씻기로 예방할 수 있다고 밝힌 적 있다.


이쯤 되면, 가장 만만한 카페 내 컵만 보란 듯이 규제를 완화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영 '음모론적인' 생각은 아니다. 참, 내가 뭐 세상을 구하고 그러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다회용 잔에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 소비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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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커피 컵이나 빨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좀 억울할 것 같기도 하다. 왜 환경운동가들이 내 멱살만 잡는지 억울해할 수도 있겠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 폐기물 증가의 규모와 심각성을 살펴보면, 카페 내 플라스틱만 문제 삼을 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가 너무 많다고 해서, 잘못된 게 옳은 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가까운 일상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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