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와 비둘기는 죄가 없는 걸요
알을 뽀각뽀각 지르밟는다. 세상 못볼꼴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그렇게 사라진다.
가을이 되면 은행나무 거리에는 동사무소 민원이 빗발친다고 한다. 길거리에 떨어지는 은행에서 악취가 나니, 은행들을 치워달라는 민원이라고 한다.
은행나무는 사실 서럽다. 자동차가 뿜어 내는 미세먼지와 고약한 매연 냄새를 견디고, 1년 365일 한 번도 같은 적 없던 하루의 햇살을 모두 마주하며 머금었다. 산들바람에도 여름의 파릇파릇한 잎들은 파도처럼 철썩였다. 끝끝내 피워낸 새 나뭇가지는 까만 고무패킹의 전깃줄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채 자라기도 전에 싹둑 잘리기도 했지만, 햇빛을 가려주는 그늘을 만들기에 은행나무의 품은 충분했다.
궁금하다. 은행 냄새나는 거 너무 '극혐'이라고 하지만,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 은행나무일까, 인간일까.
바닥에 짓이겨 눌러 터진 은행알을 살펴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무도 밟으려 하지 않는 나무 아래로 비둘기 한 마리가 터벅터벅 지나간다. 서러운 얘 옆에 서러운 얘다.
비둘기는 인도를 걷다, 사람들이 손짓 발짓에 쫓겨 도로 밖으로 살짝 내려갔다. 이번에는 맥도널드 마크를 단 오토바이가 부르릉 지나간다. 콜라를 넘치게 담은 종이컵과 비닐 랩으로 겹겹이 포장한 아이스크림 투명 컵이 아슬아슬하게 오토바이 바깥 방향으로 원을 그리다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속도를 내는 오토바이 뒤로,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이며 또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비둘기라고 음식물쓰레기와 토사물에 득달같이 달려들고 싶을까. 초점 없는 눈으로 땅에 머리를 박아대는 비둘기를 조금만 보고 있으면, 산에서 본 비둘기가 생각난다.
바위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산비둘기가 계곡물에 머리를 처 박고는 연신 어푸어푸했다. 목을 담갔다 빼는 모습이, 오리가 하는 세수법과는 또 달랐다. 터프한 그의 샤워를 보고 있노라니, 도시 비둘기들은 어디서 샤워하나 싶은 걱정까지 들었다.
지금 우리에게 '닭둘기', '병균 덩어리', '으, 진짜 극혐' 등으로 불리는 도시 비둘기를 낳은 건 우리 자신이다. 1985년 이후, 한국은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하며 '평화의 상징'이라는 이름의 비둘기를 천적이 없는 도시에 마구 풀었다. 그리고 이제 와서 유해동물로 지정하여 조준 사격하는 꼴이라니. 누가 누구한테 '극혐'이라는 건지. 변덕스러움에 누군가는 죽어간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이 대한민국 도시에 산다면 이 글의 주인공 둘을 5분, 아니 1분 내에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만나면 오늘 하루쯤은 이렇게 생각해주시길.
그동안 고생 많았어. 너네는 죄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