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그렇게 지옥 같진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인적이 드문 새벽 세 시. 전기 곤봉을 입에 물린다. 차라리 바로 죽어버리는 게 낫겠지만, 붙든 숨은 좀처럼 쉬이 꺼지지 않는다.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살해당한다. 하룻밤에 10에서 30명 정도 죽이니까, 30번째로 죽임을 당하는 그는 앞서 29번의 죽음을 목격하고 나서야 지옥 같은 이 생을 뜰 수 있다. 친구가 땅바닥에 패대기 쳐지고, 전기 곤봉을 물지 않기 위해 땅을 발톱에 피가 나도록 긁어대고, 난생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한 비명소리를 지르는 걸 29번은 들어야, 비로소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여주시는 당일 B 도살장에서 도살의 위험에 처했던 60명의 개들 중 단 15명만 ‘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에 따른 피학대 동물’로 판단, 긴급 격리했다.
여주의 한 도살장에서 구조된 '식용견'들을 만났다. '동물해방물결'과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CA)'은 불법 도살 당해 보신탕 가게로 넘겨질 뻔 한 15명의 강아지를 구했다. 6명은 구조 중에 끝내 사망했고, 2명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6명은 인천 '복순이네 보호소'에서 지내고 있다.
만개는 한쪽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다른 한쪽 발을 땅에서 굴렀다. 처음으로 잔디밭에 나와 한 걸음 한 걸음 뛰어보는 아이처럼, 뒤뚱뒤뚱 서툰 발걸음으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자신의 몸집을 미처 가늠하지도 않은 채 속도를 내다 사람들 정강이에 자꾸만 부딪쳤다. 뭐가 그리 궁금한지,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연신 들춰보기도 했다.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가서 인사도 건넸다. 그러다 가만 앉았다. 뜨겁게 내리쬐는 9월의 햇살 아래 만개의 눈동자는 더 까맣게 빛났고, 분홍빛 혓바닥엔 생기가 가득했다.
봉사 신청을 할 때 웹페이지에서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을 유심히 봤다. 이름이라도 익혀 가면 아이들과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몇 번을 봤다. 그런데 봉사를 다녀온 후에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화면 너머로 보지 못했던 게 보였다. 강아지 친구가 너무 좋은 앨라이는 사진이 찍히는 순간에도 별이 옆에 꼭 붙어 있었구나. 뛰어노는 게 너무 좋은 만개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다가 사진이 찍혔구나. 로리안이랑 반달, 치고받고 싸우다가도 또 잘 노는 게 영락없는 형제가 맞구나.
처음에는 사실 엄청나게 '노동'을 할 각오를 하고 보호소로 향했다. 그래, 온몸이 땀이 범벅이 되도록 '봉사'해야지. 하지만 민망하게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었다. 견사 청소를 할 때도, 목욕을 시킬 때도, 내가 해야 하는 유일한 중요한 일은 아이들에게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걸 스리슬쩍 알려주는 것이었다. 궁금하면 다가와서 마음껏 냄새를 맡아봐도 된다고, 반가우면 머리와 옆구리, 그리고 배도 내어줘도 된다고. 사람이 옆에 있어도 편히 잠들어도 된다고, 다가가는 손길이 폭력이 아닌 사랑일 수 있다고, 그럴 권리가 있는 존재라고, 알려주기만 하면 됐다.
아이들이랑 눈을 마주치고 얘기를 주고받으며 대부분 시간을 보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얘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한 세상이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했고, 만개는 '진짜 그렇네?'라고 답했다. 앨라이는 '잘 모르겠어'라고 답했다. 별이는 '알긴 알겠는데... 아직은 좀 무서워', 춘삼이는 '그렇기엔 이미 받은 상처가 너무 많아'라고 말했다.
묻고 싶다. 이렇게 다른 성격, 외모를 가진 아이들이 왜 한데 묶여 '식용견'이 되는 것인지. 나아가 묻고 싶다. 이런 신비로울 정도로 강력한 생명력을 가진 동물이 비단 강아지뿐인 건지. 도시를 살아가며 볼 수 없었던, 식탁 위에서 죽은 채로 만나던 돼지, 소, 닭, 오리에게는 저마다의 이야기, 고민, 기쁨과 슬픔, 생명이 없는 건지.
아래에는 개 도살 현장의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진 출처는 모두 '동물해방물결' 혹은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CA)'에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징그럽다고 느낄 수도, 마음이 힘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갇혀 이 고통을 몸으로 감내하고 있을 동물들을 기억하며 기꺼이 봐주면 좋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동물해방물결과 국제 동물권 단체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CA)’이 함께 진행한 2021 식용 개 도살 및 매매 실태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