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좋아하세요?
만화책을 좋아한다. 아직 친해지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민 끝에 “독서를 좋아하는데.. 실은 만화책을 즐겨봐요ㅎㅎ” 라고 말한다(E의 페르소나를 쓴 채). 늘상 책을 들고 다니고 독서를 참말 좋아하지만, 취미는 독서라고 하면 왠지 고리타분한 인상일 것 같고(실제로 그러하지만), 곧이어 어떤 책을 좋아하냐는 질문이 나오는 게 난감하기 때문이다. 약간의 거리감이 있는 사이에서 갑자기 좋아하는 철학서를 얘기하면 괜히 잘난 척하는 것 같고, 소설 취향을 밝히기는 아직 부끄럽기도 하고. (아니 그렇다고 남부끄러운 취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학교나 회사에서 사귄 친구들은, 일반적으로 같은 곳에서 같은 시기를 보낸 것에서 오는 유대감으로 친해지다 보니, 의외로 관심사는 다른 경우도 많다. 한동안 회사와 집만 오가던 때에는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차라리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신나게 떠들 수 있는 만화책 이야기를 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물론 이 나이까지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별로 없긴 하지만.
어쨌든 만화책을 좋아한다. 일단 만화는 재미있다. 복잡한 사건이 펼쳐지거나 사뭇 진지할 때도 있고, 명대사 명장면에 눈물 콧물 흘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믹하다는 점이 좋다. 대체로 딱딱하고 재미없는 나와는 정반대라 끌리는 것도 같다. 놀 줄 모르는 범생이에게 그나마 유머 코드가 만들어진 건 중학생 때 주말마다 읽어대던 만화책 덕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농담스럽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날에는 언제나 만화책을 펼친다.
히마리 없는 음악을 듣는 나답게, 만화책도 드라마틱한 서사보다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물론 여전히 정 때문에 <원피스>를 모으고 있고, 소싯적에는 고전 명작들과 다양한 장르를 두루 섭렵하기도 했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내 곁을 지키고 있는 만화들은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가령 내가 좋아하는 아라카와 히로무의 작품 중에선 단연코 <강철의 연금술사>가 최고이지만, 요즘에도 자주 꺼내보는 건 농고 학생들의 일상과 성장을 그린 <은수저>라고 하면 그 느낌이 와닿을까. (앗, 이렇게 설명을 해도 만화책을 보지 않으신 분께는 전달이 되지 않겠네요. 죄송합니다.)
요즘의 최애 만화는 <매일, 휴일>이지만, 한동안 읽고 또 읽었던 건 동생이 추천해 준 <위국일기(違國日記)>라는 작품이다. (작년에 영화로도 나왔지만 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다.)
날 때부터의 천성 탓에 세상과 연결되는 게 쉽지 않은 마키오. 어느 날 언니네 부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고, 혼자 남게 된 열다섯 살의 조카를 집으로 데려온다. 하지만 자신은 언니를 싫어하기에 널 사랑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며 선을 긋는다. (이것은 마키오의 성격 때문으로, 마키오가 아사를 싫어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그녀에게 사랑과 호감은 다른 것일 뿐.)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고 외로운 사막에 있는 듯한 아사. 이게 다 엄마가 멋대로 죽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화내고 싶어도 더 이상 받아줄 이가 없다. 그렇게 무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과 무리에서 빠져나와 다시 무리가 필요한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다.
아사의 외로움을 마키오는 이해해 주진 못하지만 아사 곁에 함께 있어준다. 마키오는 자신의 말 한마디가 아직은 어린 아사의 인생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칠까 봐 늘 조심하고, 그 아이의 인생에 어디까지 개입해도 될지 고민한다. 사실 마키오는 아사를 사랑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언니, 내가 언니의 소중한 그 아이를 소중히 여겨도 될까.’
그렇다고 해도 맡기로 한 시점에서 이미 충분히 개입된 상황. 아사가 듣고 싶어 한 말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설령 임시방편에 불과할지라도 절대 해주지 않았던 마키오는, 사랑한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아사를 사랑하게 된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을 대로, 결국 마키오는 조금씩 변화하고 아사는 점점 어른이 되어간다. 섬세한 표현들이 멋진 만화이니, 자세한 이야기는 만화책을 보시길!
누가 봐도 대문자 T인 나는, 얼마 전 힘든 시기를 보내며 무조건적인 공감을 바랐던 동생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 못했다. T와 F의 흔한 스토리처럼 나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부터 찾으려고 했다. 멀리 바라보지 마, 앞이 보이지 않을 땐 바로 앞의 한 걸음만 내디디면 돼. 하지만 그 한 걸음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자꾸 부정적으로 가는 그 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수는 없어도 받아줄 수는 있었을 텐데, 받아주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는 마키오가 아사에게 선을 그었듯, 너와 내가 다르기 때문에 나는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는 단서를 달았다. 동생은 그런 나에게 너무 섭섭하다고 하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네가 내 숨막힘을 이해하지 못하듯 나도 네 외로움을 이해 못 해. 그건 너와 내가 별개의 인간이라서야.”
하지만 그 뒤에 따라오는 마키오의 말을 나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소홀했다고 느꼈으면 미안. 그러니까 서로 다가가자.”
“서로 이해할 수 없는데도?”
“응, 이해할 수 없으니까.”
그리고 나는, ‘다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다른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고, 틀린 것도 아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이 때로는 부담과 단절로 이어질 수 있음을, 네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과는 다른 의미로 닿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너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 대신, 나는 이랬는데 너는 그랬구나 ─ 그 다름을 이해할 수 있다. 가끔은 나의 방식이 누군가에겐 부담이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더 잘 이해하려 노력하지 못했던 순간들에 대해, 이제야 조심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우리는 모두 모순적이다. 아침에 좋았던 것이 점심엔 싫을 수도 있고, 어제는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늘은 위선이라 생각될 때도 있다. 사실 세상은 이분법적이지 않고 다양한 빛깔의 스펙트럼을 갖고 있듯이, 나 자신도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다. 그게 이상하지 않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어쩌면 그게 진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비염이 도졌다. 콧물이 줄줄 흐르고 몸살 기운도 있어서 우쿨렐레 수업은 하루 빠지기로 했다. 사실은 일주일에 한편 쓰는 글이 생각만큼 잘 써지지 않아서 기분이 꿀꿀한 것 같다. 아니, 그보다는 이제서야 나의 무심함에 미안함이 몰려와서다. 이럴 땐 볕 좋은 소파에 드러누워 포근한 담요 덮고 만화책을 봐야지. 절찬 슬럼프에는, 역시 만화책 보며 뒹구는 게 최고다.
P.S. 네 감정은 너만의 것이고, 네가 어디에 상처받는지는 내가 정하는 것이 아닌데, 미안해. 우리 서두르지 말고 다가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