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동네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던 3월 초, 아파트에서 텃밭을 분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어이쿠, 당첨이 됐다. 1평이 채 안 되는 작은 밭에 무엇을 심을까 가족회의를 열었다. 역시 텃밭엔 쌈채소가 기본이지, 그래도 몇 번 키워본 완두콩을 심자, 난 바질이랑 허브도 키우고 싶은데, 그건 좀 더 따뜻해지고 나서 심자. 그래서 일단은 무난하게 상추와 콩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겨우내 얼어 있던 흙을 뒤엎고, 어디서 굴러온 건지 한가득인 돌멩이도 골라냈다. 밭의 절반에 작은 이랑을 만들고, 미리 불려둔 완두콩과 강낭콩을 심고 상추씨를 솔솔 뿌려두니, 초보 농부의 마음속엔 이미 새싹이 돋아났다. 하지만 실제로 싹이 나기 전에는 텅 빈 흙더미로만 보여서일까, 누군가 밭을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아이는 속상했는지 ‘새싹이 자라고 있어요’ 간판을 만들어주었다.
날이 조금 풀리고 나자 이웃들은 모두 다양한 모종을 심기 시작했다. 우리는 식물의 한살이를 관찰해 보자는 나름의 뜻을 품고 씨앗부터 천천히 키워 나가고 있었는데, 옆에서 더 난리였다. 결국엔 보다 못한 엄마가 시장에 가서 기본적인 모종들을 사 오셨다. 내가 심으려고 계획했던 것들이 있어서 처음엔 달갑지 않았지만, 고맙게 받기로 했다. 이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상추와 콩들 옆으로, 상추랑 같이 쌈을 싸먹을 깻잎과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모종을 밭의 나머지 절반에 차곡차곡 심었다. 그래, 바질은 콩을 수확하고 나면 빈자리에 심으면 되지.
그동안 베란다 텃밭의 화분만 키워 봤던 터라, 노지 채소들이 이렇게나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지는 몰랐다. 아침마다 물통으로 몇 번씩이나 물을 날라 주었는데도, 얼마 안 가 깻잎이 시들시들 축 늘어졌다. 100평이 넘는 텃밭을 가꾸고 계신 우리 집 초록손 어머님께 여쭈었더니, 물을 홍수가 난 것처럼(!) 줘 보라고 하셨다. 그래서 매일 물을 흥건하게 주었더니, 정말 이파리들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그러던 어느 날, 경비 아저씨께서 우리 집만 빼고 다 알던 공용 호스의 존재를 알려주셨고, 그 뒤로 우리 밭의 물 부족은 해결되었다.
6월이 되며 비가 자주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식물의 위대함을 다시금 깨닫게 될 정도로, 모든 녀석들이 쑥쑥 자랐다. 상추와 깻잎은 돌아서면 잎이 새로 나 있어서 좋아하는 쌈을 마음껏 싸먹었다. 고추에는 하얀 꽃, 방울토마토에는 노란 꽃, 가지에는 보라색 꽃이 피며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먼저 심은 콩들은 주렁주렁 꼬투리가 달렸다. 특히 갓 딴 완두콩은 바로 쪄서 먹으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달았다. 그런데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물 주기 뿐, 나머지는 태양과 흙과 식물의 일이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 그래서일까, 요리는 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지 않는다. 원래 못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소꿉놀이처럼 하다 보니, 맛이 좀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 (미각이 둔한 편이라 웬만해선 다 맛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텃밭도 마찬가지다. 큰 기대 없이 자라나는 대로 먹는다는 마음으로 하다 보니, 매일이 예상치 못한 기쁨이었다. 어떤 날은 꽃이 피어서 기쁘고, 다른 날은 열매가 달려서 기쁘다. 벌레들과 잎을 나눠먹어도 그만큼 깨끗하고 건강한 거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텃밭은 철모르던 나에게 제철을 알려주었다. 초봄에 심은 상추와 완두콩은 한여름이 되기 전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것을, 빈자리에 다시 심은 바질과 줄콩은 여름 내내 줄줄이 자란다는 것을 배웠다. 8월 즈음 어머님이 보내신 택배 상자에는 우리 밭에는 없는 감자와 여주, 올해 처음 도전해 보셨다는 공심채가 한가득. 제철 채소가 자꾸 생기니 귀찮아도 집밥을 먹을 수밖에. 하루는 공심채와 줄콩을 볶아먹고, 다음 날은 여주와 버섯을 볶아먹고, 주말이면 감자전을 부치고 바질 파스타를 해먹었다. 신발도 기름에 볶으면 맛있다는데, 더욱이 제철에 갓 딴 채소로 만드는 음식은 맛이 없을 수 없었다.
지금이 제철이라며 어느 날은 살구를 한가득, 어느 날은 사과를 한가득 안겨주고 가시는 엄마의 마음도 이제야 알 것 같다. 지금 먹어야 맛도 좋고 영양도 좋으니, 자식들에게 마음껏 먹게 해주고 싶은 감사한 마음. 그런데도 철없는 나는, 뭐 하러 이렇게 많이 가져왔냐고 툴툴대기부터 했던 못난 딸이다. 엄마는 항상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닌 엄마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것을 내게 주셨고, 난 그게 싫었다. 언제나 나를 내버려두라고, 내 방식을 이해해달라고 외쳤는데, 나 또한 엄마의 방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들을 모시고 봄이면 도다리를 먹으러 가고, 가을이면 전어를 먹어야지.
봄여름에 우리 가족의 큰 즐거움이었던 텃밭도, 가을이 되자 좀 시들해졌다. 철이 바뀌며 깻잎은 억세지고 방울토마토는 열매를 더 이상 맺지 않은 채 줄기만 뻗어 나갔다. 물론 가지와 고추는 여전히 열리고 있지만, 예전만 못하다. 아니, 이건 당연한 계절의 흐름이다. 사실 내가 시들해진 이유는 가을맞이로 새로 심었던 시금치가 영문도 모른 채 비실비실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말로는 기대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결국 욕심을 부렸나 보다. 딱 즐거울 만큼만 하기로 했으면서, 뭘 또 잘하려고 한걸까.
어느덧 입동이 지났다. 아직은 머리만 들이밀고 있는 겨울을 맞으며, 탐하려는 마음은 조금 내려놓고 내년을 준비해야지. 이번 주말에는 다시 밭을 갈아엎어야겠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결국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하기로 되어 있는 흐름에 내 걸음을 맞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면, 불필요한 가지가 바람에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꼭 필요치도 않은 것을 이것저것 매달고 여태 그것을 풍성함이라 여기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이거구나, 나머지는 결국 다 부수적인 것들이구나. 살아온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선명해지면 좋을 텐데, 자주 잊고 새로 배우길 반복할 뿐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고침 해준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이번 봄은 다음 봄이 아니기에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뿐인 계절을 귀하게 여기면서, 한 번뿐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제철 행복, 김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