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 가기, 하나 둘 셋

by so


1. 평소 식물 사진을 즐겨 찍는다.

예전부터 나이 듦에 대해 신기했던 두 가지가 있다. 왜 나이가 들수록 문자에 아련한 말줄임표(...)가 늘어나는가, 그리고 왜 사진첩에 꽃 사진이 많아지는가. 전자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후자는 알 것 같기도 하다. 내 자리를 찾느라 정신없던 시절을 보내고, 여유가 생긴 지금에서야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는 것 아닐까. 물론 나의 경우 이십 대 때부터 식물 수집*을 좋아했지만. (*길에서 만난 꽃과 나무의 사진을 찍고 이름을 알아가는 것에 대해 마음대로 이름 붙인 취미 활동)


지금보다 조금 어렸을 때는 길을 가다 멈춰 서서 꽃 사진을 찍는 게 왠지 눈치가 보였다. 다른 사람들이 못 지나가게 길을 막는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었는데, 단순히 ‘너무 아줌마 같아 보이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찍지 못하고 지나친 꽃들이 있었다. 어느 늦은 여름, 이름을 모르는 파란 꽃을 만나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가,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사진을 찍지 못했다. 정작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데 말이다. 주말이 지나고 같은 길을 걸어가다 다시 그 파란 꽃을 찾아보았을 땐, 이미 꽃이 져버린 다음이었다. 그렇게 수레국화의 이름은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풀꽃 특징, 신기하게도 그동안은 곁에 있는 줄도 모르다가 이름을 알게 되면 계속 눈에 띈다.)


누가 봐도 아줌마로 보이는 지금은 더 이상 꽃 사진을 찍을 때 눈치를 보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히 찍는다.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이것이 대한민국 아줌마의 패기인가, 아니면 지나 보면 별거 아니라는 경험에서 누적된 여유인가. 하지만 오늘도 동네에 새로 생긴 황톳길을 맨발로 걸어가 보려다,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서 괜히 눈치가 보여 그냥 바로 옆 가로수길을 걸었다. 아직은..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 듯하다. 아니 어쩌면, 타인이 아니라 나이를 의식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는 나이로) 마흔이 코앞으로 다가와서 그런가..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다가온 수레국화



2. 좋아하는 계절은 계속 바뀐다.

언제부턴가 여름이 좋아졌다. 생일에 큰 의미를 두던 어린 시절에는 단순하게도 내가 태어난 계절이라는 이유만으로 알록달록한 봄을 좋아했고, 그러다 더운 게 너무너무 싫어서 한동안 겨울을 제일 좋아했었다. 봄도 타고 가을도 타고 심지어 겨울도 타는데, 더위를 타느라 여름은 타지 않던 내가 여름을 좋아하다니! 아이를 낳고 나서 몸이 허해졌는지 나이가 들면서 체질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그냥 참을성이 조금 늘었을 뿐인지, 서른 즈음부터 더위를 거의 타지 않는다. 매년 연례행사처럼 첫 장마가 오면 팥을 삶는다. 직접 만든 팥조림을 그득하게 넣은 팥빙수, 면은 거의 남기지만 국물은 남김없이 먹는 콩국수, 여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복숭아와 포도, 여름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는 배롱나무와 수레국화,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고민하는 여름휴가.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또 가을이 오니 가을도 좋았다. 얼마 전 도서관 수업 시간에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을 함께 들으며 가을을 만끽했다. 바로크 시대의 고전 악기들로 연주한 음악을 듣다가, 막스 리히터가 새로이 편곡한 ‘가을’도 들어보며, 괜히 가을에 취했다. 유난히 길었던 여름 더위가 한풀 꺾이고, 무화과와 밤, 온갖 풍성한 열매들이 맛있는 계절. 특별한 일 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지만, 몇 번 못 입는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무들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특별한 날들. 손끝부터 빠알갛게 물드는 단풍과 불사조를 닮은 공작 단풍, 도토리를 떨어뜨리고 나서 올해 할 일은 다했다는 듯이 우아한 갈색을 뽐내는 참나무를 보며, 꽃만 예쁜 게 아니라 나무도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매일 아침 날씨를 체크하고 아이에게 더 두꺼운 외투를 입으라고 한다. 입술이 텄으니 립밤 바르자. 핸드크림 가방에 넣어뒀으니 손 씻고 나서 꼭 발라. 계절이 돌고 돌듯 엄마의 잔소리를 내가 되풀이한다. 이제 핫초코 타먹는 즐거움으로 겨울을 나야지. 올겨울엔 작년에 못 먹은 과메기도 먹어야겠다. 기나긴 겨울 방학이 조금 두렵기도 하지만 (아.. 점심 급식의 위대함이여!) 분명 겨울이 지나면 또 예쁜 봄이 찾아올 테니. 겨울이 오기 전부터 꽃을 피우기 위해 회색 털코트를 입고 있는 목련처럼, 나도 두꺼운 털코트를 꺼내 본다.




3.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사전적 정의만 놓고 보면 나는 어른인 것 같은데, 왜 ‘진짜 어른’이 되고 싶을까. 한동안 그게 고민 아닌 고민이었는데, (요즘 말하는 영포티 말고) 영식스티를 바라보는 멋쟁이 선생님께서도 자기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못내 안심했다. 나이가 들어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기쁨을 놓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남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너그러운, 언제 어디서나 여유가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러고 보면 나는 (망할) 책임감 때문에 집 밖에서는 참 성실했다. (집에서는 코알라로 불린다.) 자기 일만 책임지면 되는데, 남의 일까지 다 책임지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곤 했다. 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책임감보다는, 그저 할 일이 눈앞에 놓여있는 상태를 매우 싫어해서 일을 해치우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요즘도 운동은 아침에 해치운다.) 매일 해야 할 일을 하나씩 지워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야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텃밭을 가꾸고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하는 하루. 소속이 사라지면 나를 증명할 길이 없는 게 아니라, 오롯이 내가 나의 주인이 된다.


우리는 하면 좋은 일들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들, 주의해야 할 일들로 가득한 리스트를 가지고 살아간다. 집에서 학교로 나서는 아이에게 외투 여며라, 차 조심해라는 잔소리는 넣어두고, 즐겁게 보내고 오라며 웃어주는 매일 아침이 되기를.



마흔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투자금도 아니고 술친구도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어른이 된 우리보다 더 어른 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버지를 때로 아버지가 아닌 어른으로 생각하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산 어른이, 인생은 참 고달프지만 결국 미소로 끝날 수 있다고 말해주어 기쁩니다. 내가 가장 믿고 싶은 격려의 말이 이 책에 있습니다. 마지막에는 우리도 웃는 어른이 되길 바랍니다.

('마흔에게' 서문 中, 나태주 시인의 딸 나민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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