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없이 줄무늬 티셔츠를 입는다

by so


이제 곧 열 살이 되는 아이는 아침마다 뭘 입으면 좋을지 고민하다 결국 나를 부른다. 엄마, 저 오늘 뭐 입을까요? 오늘은 어제보다 추우니까 회색 티셔츠 어때, 이거 두껍잖아. 아뇨, 오늘 이 회색 바지 입고 싶은데 색이 겹쳐요. 그럼 이 핑크 티셔츠는? 하나도 안 어울리잖아요. 그런가..(너 전에 그렇게 입고 갔는데..) 엄만 역시 센스가 없어, 그냥 제가 고를게요. ··· 대화는 주로 이렇게 흘러가는데 왜 맨날 나를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냥 학교 가기 전에 엄마랑 조금 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긍정 회로를 돌려보자.


반면 나는 큰 고민 없이 줄무늬 티셔츠를 입는다. 언제나 블랙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은 스티브 잡스나 회색 정장만 주구장창 입었다는 아인슈타인까지는 아니지만,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적당한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흰색 바탕에 남색 줄무늬가 좋을까, 남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가 좋을까), 거기에 공식처럼 세트로 입는 바지를 입으면 끝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패션에 큰 흥미가 없는 나로서는, 언제 입어도 무난한 줄무늬 티셔츠가 자잘한 선택과 고민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줄여준다.


그렇다고 잡스처럼 줄무늬 티셔츠만 입는 건 아니다. 무채색 또는 톤 다운된 컬러의 무지 티셔츠도 좋아한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지금도 슬랙스를 자주 입는데(허리에 고무밴드가 들어있어 청바지보다 편하다), 그때 같이 입는 스트라이프 셔츠(앗, 이것도 줄무늬..)나 그레이톤 니트도 좋아한다. 장식이 달려 있거나 무늬가 화려하거나 디자인이 언발란스한 옷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동안 물건을 비우면서 고르고 고르다 보니 나만의 기준이 확실해졌다. 20대 때는 내 취향을 잘 몰라서 유행에 흔들리기도 하고 매일 뭘 입을지가 고민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만의 스타일이 생기고 나니 지금은 아침마다 옷 고르는 게 어렵지 않다. (사실 워낙 단순한 옷들 뿐이라 어떻게 매치해도 무난하다.)


28평 아파트 침실 한켠에는 작은 옷방(옷장으로 치면 2.5개 정도)이 딸려있다. 나는 왼쪽, 남편은 오른쪽 옷장을 사용하고, 가운데 놓인 기다란 옷장에는 각자의 외투를 걸어둔다. 옷장에는 사계절 상의와 하의가 다 들어있지만 가진 옷이 적어 공간이 부족하지는 않다. 학부모 모임이나 결혼식 갈 때 입는 원피스 두벌을 제외하면 치마나 반바지는 없다. 액세서리류는 좋아하지 않아서 겨울용 머플러 하나와 장갑 한 켤레, 봄가을용 스카프 하나, 햇빛을 가려주는 린넨 모자 하나와 선글라스 하나. 가방은 어디든 메고 다니는 백팩 하나, 멀리 놀러 갈 때 드는 가벼운 숄더백 하나, 장 보러 다닐 때 애용하는 에코백 두 개면 충분하다.


그렇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다. 옷이 아니더라도, 꼭 필요한 물건만 찬찬히 살펴보고 고심하여 가장 마음에 드는 것으로 장만해 오랫동안 사용하고 싶다. 그 물건이 명품이든, 무인양품이든, 이름 모를 가게에서 우연히 마주한 것이든 중요하지 않다. 사용하기 편하고 내 마음에도 쏙 들어 자주 손이 가는 것, 그거면 된다.




대학생 때는 내 취향(이라고 믿었지만 자주 바뀌던 무언가)의 온라인 쇼핑몰을 즐겨찾기 해두고, 사지도 않을 거면서 매주 신상품을 체크하고 그리 필요도 없는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곤 했다. 그러다 물건을 하나 사면 택배가 도착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배송조회를 수시로 하고, 소비가 주는 짧은 기쁨이 끝나면 또 다른 소비로 마음을 채우던, 그런 시기는 많은 이들이 한 번쯤은 겪어보았으리라.


그러다 혼돈의 대학원생 시절,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을 했다. 학교에서 빌려주는 작은 집에서 신혼을 시작하다 보니, 원치 않게 많은 물건을 포기해야 했다. (애당초 돈도 없었다.) 그때 마침 북유럽 인테리어와 함께 당시 유행하던 ‘미니멀 라이프’를 접하며 물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가 소유한 것 중에는 필요 없는 게 더 많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다. 남들이 가졌다는 이유로 사들이는 물건은 또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그런 물건들을 필요해서 쓰는 게 아니라 그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도미니크 로로) 한때는 단지 내가 가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을 미니멀 라이프라는 명목 하에 억지로 밀어내는 것은 아닐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단순한 삶이 주는 행복이 컸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꿈꾼다. 물건은 꼭 필요한 것만 마음에 쏙 드는 것으로 갖추고, 집은 항상 잘 정리되어 있고, 매일 나 자신을 단정히 가꾸며 일도 관계도 단순하게, 무엇보다 사랑하는 이들과 나 자신에 집중하는 삶. 단지 집을 비우고 청소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위한 삶의 정리정돈이 필요하다. (육아와 일에 치이던 2019년의 일기 中)


일에 치이다 보면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살아갈 때가 있다. 충동적으로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거나 스트레스 때문에 늦은 밤 라면을 끓여 먹거나 멍하니 휴대폰 화면만 넘기며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거나. 가끔은 외부 자극에 흔들리기도 한다. 괜히 옆 사람 눈치를 보다 원래 먹으려던 메뉴가 아닌데 따라 주문하기도 하고, 분위기에 휩쓸려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할 때도 있다.


그래서 단순한 삶을 추구한다. 물건을 비우고 일을 줄이는 것을 넘어서 단순함은 일종의 정신 상태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존재방식에 가장 큰 관심을 기울일 때, 다시 말해서 아주 솔직하게 그저 한 인간이고 싶을 때 가장 단순하다.” (단순한 삶, 샤를 와그너) 평소에 나에 대해 많이 알아두면 흔들림 없는 가치관과 나만의 기준이 생긴다. 완벽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의식적으로,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것. 다만 시도 때도 없이 자기 자신을 살피고 분석하는 강박은 멀리해야 한다. 우리가 삶에 대해 떠올리는 그 어떤 생각보다도 삶 그 자체가 우선이다.


한때 나의 취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유행이었거나 주변 사람들의 기호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선택의 실패를 맛보며 모난 구석들이 다듬어진 뒤에 어찌 보면 평범하고 단순하지만, 나만의 둥근 조약돌 같은 취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나간 그 모든 선택들이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던 것도 같다. 이제는 그 조약돌을 손에 꼭 쥔 채, 소로의 『월든』을 바이블로 삼으며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는 삶을 추구하고, 언젠가는 니어링 부부처럼 ‘4시간의 노동, 4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조화로운 삶을 꿈꾼다.



심플하게 산다는 것은 모든 물질적 편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가볍고 좀 더 깊이 있는 삶을 산다는 뜻이다.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낭비하지 않으며 좋은 것들을 골라서 취하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삶이다.

(심플하게 산다, 도미니크 로로)


이전 10화쉬어 가기, 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