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종교도 없는 내가 예수님 생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여전히 이상하지만, 매년 12월이 다가오면 산타 클로스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처럼 마음이 들뜬다. 어른이 되고도 급한 성미는 여전해서, 이미 지난달부터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A Charlie Brown Christmas>와 Eddie Higgins Trio의 <Christmas Songs>이 들어있었다.
어릴 적에는 이맘때쯤 도톰한 빨강 색지를 사다가 카드를 만들고는 했다. 색지를 반으로 접고 접은 선 위로 칼집을 내서 카드를 열었을 때 계단처럼 톡 튀어나오는 입체 카드. 그 계단에 삐뚤빼뚤한 트리, 어설픈 산타와 루돌프를 그려 붙이고 마지막엔 대망의 반짝이 풀로 ‘Merry Christmas’를 써넣으면 완성이다. Christmas를 쓸 땐 크리스‘트’마스라고 소리 내어 읽으며 ‘t’를 빠트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직접 만든 카드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크리스마스에 무언가를 주고받는 걸 좋아한다. 물건이 늘어나는 건 싫어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좋다. 내가 사기엔 왠지 아깝지만 받으면 기분 좋은 선물들. 가령 향이 좋은 크리스마스 기념 티(tea)라던가, 차랑 같이 먹을 슈톨렌이라던가, 겨우내 두고두고 쓰는 핸드크림 같은 것들. 올해는 단짝 친구 JY에게 좋아하는 그림책 ─ 얼마 전 후속작이 나온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와 말> 시리즈 ─ 을 선물로 보냈다. 작년에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회에서 산 커다란 엽서에 그동안의 소식을 꾹꾹 눌러 담고, 이제 곧 세 살이 되는 M이 좋아하는 피너츠 친구들이 그려진 멜로디 카드도 함께 넣어서.
크리스마스를 놓쳤다면 연말을 맞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카드를 보내보면 어떨까. 혹시 연말도 놓친다면 나중에 문자로 새해 인사라도 건네보자. 사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온다고 별반 달라지는 건 없다. 시계와 달력은 인간이 편의상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니까. 그래도 새로운 달력을 꺼내고 나이에 숫자를 더하고, 연말연시를 핑계로 연락이 뜸했던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일이 싫지만은 않다. 아니, 실은 참 좋다.
한때 아이가 푹 빠져 있었던 <겨울 왕국>의 후속으로 나온 단편 영화 중 <올라프의 겨울왕국 어드벤처>라는 영화가 있다. 아렌델 왕국의 성문이 다시 열리고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엘사와 안나는 국민들을 위한 깜짝 크리스마스 파티를 준비하지만, 사람들은 휴일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모두들 저마다의 가족 전통을 준비해야 된다며 집으로 돌아간다. 다른 가족들처럼 크리스마스 전통이 없어서 울적한 자매에게 최고의 전통을 만들어주기 위해, 올라프는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전통을 찾아다니며 작은 모험을 떠난다. (짧고 귀여운 이야기이니 엘사와 안나의 전통은 영화 속에서 확인해 보시길!)
우리집에도 소소한 크리스마스 전통이 세 가지 있다. 하나, 만냥이(만냥금, 12세)와 야자(아레카야자, 14세 추정) 꾸며주기. 외국 영화 속에 등장하는 멋진 전나무 트리는 아니지만, 언제나 우리집 거실 한켠을 지켜주는 두 나무들도 연말이면 예쁘게 옷을 차려입는다. 단, 오너먼트는 매년 1개만 새로 들여온다. 작년엔 반짝이 구슬을 새로 들여왔는데, 올해는 따로 사지 않고 아이가 도서관 수업에서 만들어온 무드등을 더해주었다.
둘, 이브날 저녁은 다 같이 요리하기. 우리집 메인 요리 담당은 남편이지만, 이날만큼은 나도 요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올해는 내가 자신 있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요리 중 하나인 가지 라자냐를 만들기로 했다. 남편은 요즘 제철인 굴을 가지고 곁들일 음식을 준비하고, 아이도 딸기를 잔뜩 올린 샐러드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케이크 먹을 배는 남겨둬야 하는데..)
셋, 크리스마스 오전에는 생강 쿠키 만들기. 사실 앞의 전통들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요것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크리스마스에는 생강 쿠키를 굽는다. 말랑해진 버터와 설탕, 박력분과 약간의 가루들(생강가루, 계피가루, 베이킹소다)을 골고루 섞어주고, 꿀이나 메이플 시럽을 취향껏 넣어준다. 진저 브레드맨은 단단한 쿠키다 보니 반죽을 냉장고에서 잠깐 휴지시켰다가, 밀대로 살살 밀어주고 귀여운 모양틀로 콕콕 쿠키를 찍어낸다. 마지막으로 오븐에서 구운 뒤 식혔다가 쵸코펜으로 마음껏 꾸며주면 완성! 그리고 갓 구운 쿠키를 먹으며 영화를 본다. 영화 속 올라프의 “이 집 전통은 뭔가요?”라는 질문에 아이는 “우리는 생강 쿠키를 만들어!”라고 외치곤 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는 아직까지 산타 클로스를 믿는다(고 나는 믿고 있다). 사실 학교에 들어가고부터는 주변에서 듣는 이야기가 있는지 혹은 자기가 생각해도 뭔가 이상한지, 아이가 자꾸 산타의 존재에 의문을 품으며 질문을 던져서 난감하다.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하루 만에 선물을 나눠주는 거죠? (산타 클로스는 한 명이 아니야. 핀란드에 산타 마을이 있어. 네가 쓴 편지도 거기로 보내는 거라구.) 그럼 우리집에는 어떻게 들어오는 거죠? 도어락이 걸려있는데. 엄마가 비밀번호 알려줬어요? (흠.. 당연히 마법 같은 일이겠지? 엄마도 사실 몰라. 엄마는 비밀번호 안 알려줬다구.)
결국 마지막에는, 엄마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열 살쯤부터 산타를 믿지 않았더니 더 이상 선물이 오지 않아 엄청 속상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에 아이는, “맞아, 내 친구 OO이는 작년에 아이폰 사달라고 편지 썼더니 선물이 없었대. 산타 할아버지는 나처럼 순수한 어린이한테만 선물을 주는 건가 봐.”라고 답한다. 흠.. 산타.. 정말 믿고 있는 거니..? 아무래도 올해도 산타 할머니의 선물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우리집 숨겨진 네 번째 전통이다.
이쯤해서 당신의 크리스마스 전통은 뭔지 궁금해진다. 산타 클로스의 선물처럼 대단할 필요는 없다. 다 같이 케이크를 나눠먹거나, 올해도 어김없이 <나 홀로 집에>를 본다거나, 문 앞에 크리스마스 리스를 걸어두거나, 혹은 캐롤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한다거나. 작고 소소한 전통을 매년 반복하는 일은 분명 언젠가 아이에게도, 당신에게도 힘이 되어줄 것이다. 수고했어 올해도, 메리 크리스마스!
“선물도 없는 크리스마스가 무슨 크리스마스야.” 조가 양탄자 위에 벌렁 드러누우며 불만을 터뜨렸다.
“가난한 건 정말 싫어!” 메그가 낡아빠진 옷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어떤 애들은 예쁜 물건을 많이 갖고 있는데 누구는 하나도 없다는 건 불공평해.” 막내 에이미가 마음이 상했는지 코를 훌쩍이며 거들었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아빠, 엄마 그리고 언니, 동생들이 있잖아?” 구석 자리에 앉아 있던 베스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작은 아씨들, 루이자 메이 올컷)
※ 다음 주에는 연말을 맞아 한주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