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아직 새 일기장을 사지 않았다.
딱 떨어지는 완벽함을 좋아하는 나는, 대학생 때 매년 1월 1일이면 미리 장만해둔 새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월의 일기에는 오늘 있었던 일보다 내일 할 일이나 새해 다짐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던 계절을 지나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즘에는 일기에 여백이 늘어나고, 가을 즈음에는 이것이 주기인지 월기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그만큼 별일 없이 흘러간 하루들에 감사하지만.
그러다 언제부턴가 날짜가 적혀있는 다이어리 대신 그냥 줄만 그어있는 포켓 노트를 사서 일기를 쓰고 싶을 때만 썼다. 일기라기보다는 생각 노트에 가까웠던 그 노트를 가장 열심히 썼던 시절은, 박사 과정 중간에 슬럼프를 맞아 그만두려고 했을 때라던가 회사를 다니다 번아웃이 왔을 때처럼, 늘 방황하던 시기였다. 그때의 일기를 들추면 먹구름이 낀 것처럼 무거운 생각들이 꽉꽉 들어차있다. 그래도 답답함을 일기장에 쏟아내고 나면 잠시나마 머릿속을 비울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안 가 다시 시작한 포닥까지 그만두려던 작년 6월, 문득 일기가 쓰고 싶어졌다. 가끔 끄적이던 예의 그 생각 노트를 이어서 쓰려다, 오랜만에 만년 다이어리를 샀다. 처음에는 역시 고민만 풀어놓기 시작했지만, 고민이 없더라도 매일 뭐라도 써보자는 생각으로 꾸준히 뭐라도 썼더니, 벌써 절반이 넘어갔다. 어쩌다 빼먹은 날은 다음날에 배로 쓰며, 아직은 밀리지 않고 즐겁게 쓰는 중이다. 그래서 올해도 6월쯤에나 새 일기장을 장만할 것 같다.
수다보다는 일기, 내가 선명해진다.
엄마와 동생은 고민이 생기면 가까운 이에게 우선 털어놓는다. (여기서 고민은 ‘오늘 저녁에 뭐 먹지?’ 같은 고민은 아니다.) 어떤 때는 꼭 해결책을 찾으려고 고민을 나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을 말로 풀어내며 정리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고민에 붙어있던 불안을 함께 다독이는 듯하다.
반면 나는 고민이 생기면 일단 혼자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기보다는 차라리 일기를 쓴다. (물론 관계에 대한 고민이라면 생각을 1차로 정리한 뒤에 대화도 나눈다.)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즈음이면 이미 내 안에서는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난 뒤이다. 누가 물어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의 공유 차원. 이것이 F와 T의 차이일까?
어쨌든 고민 상담 류의 대화는 즐기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보이지 않을 때는 아직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다. 당장 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싶다. 그래서 일기장에 풀어놓는다. 그러다 보면 고민을 둘러싸고 있던 감정에 가려져 보지 못하고 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그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고, 비로소 감정을 내려놓고 문제를 이해하고 가고 싶은 방향을 찾을 수 있다.
동생은 이런 나에게 로봇 같다고 놀리기도 했지만, 나는 이런 내가 좋다. 참, 어떤 방식이 더 낫다고 주장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저마다 선호하는 방식이 있고, 그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일 뿐이지. 지금 보니 그냥 말로 풀어내느냐, 글로 풀어내느냐의 차이인 것도 같다. 사실 이야기를 나누며 잘 듣고 있다고 고개도 끄덕이며 생각까지 하는 건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수다보다는 일기를 좋아한다. 어쩌면 나는 그저 가까운 이에게도 미완성을 드러낼 용기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더 발전하고 싶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나의 가장 큰 고민은 ‘퇴사’였다. 포닥 때 아이를 낳고 아이가 돌이 되기 전 회사에 취직한 나는 8년간 주말부부 생활을 이어갔다. 그동안 졸업을 하고 포닥을 전전하다 자리를 잡은 남편은 다행히 원하던 꿈을 이루었다. 특별한 꿈이 없어 남편을 응원하며 회사를 다니던 나는, 많은 회사원들이 그러하듯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각오로 일하고 있진 않았기에, ‘결국 그만두긴 할 텐데 도대체 언제 그만두는 게 좋을까’가 당시 최대 고민이었다.
일은 매일 재미있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잘나가고 있었고, 근데 가족 대통합을 위해서는 빨리 그만두고 싶고. 결국 또 일기를 쓰며 고민을 거듭했다. 어떤 날은 내가 이뤄낸 성과에 도취되어 좀만 더 다니자 싶다가도, 어느 날은 아무리 잘나가던 임원이라도 한 번의 실수에 갑자기 루저가 되는 이런 정글 같은 곳에서 빨리 벗어나야지 싶었다. 그러다 또 돈이 들어오면 아직 그만두기는 아깝고.. 하지만 올라갈수록 한 개인으로서는 내리지 않았을 결정을 팀을 위해 선택하고, 점점 내가 아닌 회사가 바라는 역할에 맞춰져야 하는 것이 싫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굳이 나까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퇴사를 결심한 2년 전, 내가 더 발전하려면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밟으면 좋겠냐는 팀장님의 질문에, 나는 이미 충분해서 더 발전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사회가, 다른 사람들이 정해둔 길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발전할 필요도, 성공할 필요도 없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내가 회사에서는 혼자서 3인분을 한다고 칭찬을 들었지만, 돌아보니 요즘 트렌드와 반대로 3배로 빠르게 늙고 있었다. 그래, 그만큼 빠르게 일했으니 또 빨리 은퇴하는 거지. (그러고도 실제 그만두기까진 1년이 더 걸렸다.)
나는 직업으로서의 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지 성인으로서 경제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일 뿐인데, 거기서 운명 같은 천직을, 로망을 찾고 있는 것이다. 천직이라는 게 있을까? 오히려 그런 걸 찾는 사람이 엄청난 행운인 거고, 사람마다 자신이 가진 최대한의 끈기와 꾸준함을 발휘할 수 있는 일, 견딜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인데. 일을 잃거나 수입이 줄었다고 해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다. 직업이 나는 아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것을 언제 놓을 것인가. (퇴사를 고민하던 날들의 일기 中)
신년 목표, 지루해서 일이 다시 하고 싶어질 때까지 실컷 놀기. 그런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로망(꿈과는 좀 다르다), 선비. 이건 얼추 이룬 것 같다. 나의 장점, 금방 반성한다. 나의 장점이자 단점, 잘 미루지 않는다. 마음먹은 건 일단 하고 본다. 덕분에 글을 쓰고 싶어서 다시 쓰기 시작한 일기엔 고민 아니면 반성으로 가득차곤 하지만, 매일 뭐라도 꾸준히 쓰고 있기는 하다.
아직은 나의 꿈이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혼자 끄적이던 일기가 소싯적 미니홈피와 여러 블로그를 거쳐 이제는 브런치에서 에세이가 되기도 하듯이, 나중엔 여기서 뻗어 나가 새로운 이야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내가 쓴 단 하나의 문장이라도 누군가의 삶에 작은 위로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글을 쓰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몰라도 누군가 그려놓은 선에서 벗어나, 내가 스스로 그려가는 나의 궤적이 좋다.
글쓰기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일기 쓰기를 권하고 싶다. 누구도 읽지 않을 테니 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써라. 대신에 날마다 쓰고, 적어도 이십 분은 계속 써라. 다 쓰고 나면 찢어버려도 좋다. 중요한 건 쓰는 행위 자체이지, 남기는 게 아니니까. 이것이 바로 ‘일기, 나를 찾아가는 첫걸음’에 나오는 일기 쓰기 지침이다. 이렇게 하면 글을 자주 쓰게 되는 것만은 틀림없다. 자주 쓰면 많이 쓸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잘 쓰게 된다. 그런데 일기 쓰기의 이 두 가지 지침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기의 목적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앞에서 말했는데, 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것은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캐서린 맨스필드의 말처럼, 자기이해다. 자기이해라는 말을 통해 우리는 마법과도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
(시절 일기, 김연수)